⑬ 북극 광산촌 전쟁 상흔 감싼 ‘적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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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스발바르 바렌츠버그’

스발바르와 한국 사이에 공통점이 하나 있다. 신발을 벗어야 한다. 남의 집에 들어갈 때에도, 교회에 갈 때에도, 심지어 박물관에 들어갈 때에도 신발을 벗는다. 광부 기숙사를 개조해서 만든 롱이어비엔의 초저렴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102도 마찬가지다. 커다란 시베리안 허스키를 푸들처럼 쓰다듬던 주인 아주머니는 허스키한 목소리로 “신발 털어라”며 현관 옆 발털개를 가리키곤 했다. 왜? 그게 다 여기가 광산지대여서다.

북극 광산마을 바렌츠버그 전경.

북극 광산마을 바렌츠버그 전경.

그렇다. 1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모두 북극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었거나, 빙하와 북극곰과 지구 온난화를 연구하러 스발바르를 찾아온 것이 아니다. 먹고 살자고 왔다. 어쩐지 북극에 달라붙은 이 조그만 마을까지 비행기가 다닌다 싶었더니, 광부들에게 가족과 물자를 실어 나르기 위해 생긴 것이었다.

옛 영화의 추억 생생한 러시아 타운
2차대전 때만 해도 독일군의 집중폭격 대상이 될 만큼 대단한 석탄 단지였다. 1941년 불붙은 2호 광산은 14년 내리 활활 탔다. 한때는 광부와 그들의 가족들로 흥성거렸겠으나 스발바르의 광산업은 1960년대 석유가 발견되면서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제는 롱이어비엔의 7호 광산과 광산 마을인 바렌츠버그와 스베아그루바의 군소 광산만 남았다. 한해 7만톤의 석탄을 캐어 핀란드, 독일, 덴마크로 수출한다.

스발바르 관광 프로그램 중에는 그래서 ‘폐광 탐험’ ‘헤드랜턴 두르고 광산 내려가기’ ‘이웃 광산 다녀오기’ 같은 광부 체험 프로그램이 많다. 꽤 인기다. 할 게 그것밖에 없기 때문이다. 스발바르는 여행사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고는 도저히 여행할 수가 없게 돼 있다. 첫째, 북극곰이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이고, 둘째, 차를 빌려봐야 도로 총 길이가 50㎞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물론 경비행기를 빌려 빙하에 덮인 스발바르의 광활한 대자연을 굽어보거나, 스키를 타고 북극점까지 다녀올 수도 있다. ‘아문센, 난센의 이야기를 듣고 자란 당신이라면 도전할 수 있다!’는 광고 문구도 있었다. 아문센, 난센의 이야기를 듣고 자라긴 했지만 돈도 시간도 체력도 없었다. 우리가 고른 것은 이웃 광산 마을 바렌츠버그까지 다녀오는 당일치기 보트 트립이었다.

우리를 실어 나를 ‘폴라걸’에는 어제 저녁 숙소에서 본 ‘지성인 형제’도 타고 있었다. 전날 밤 호텔 라운지에서 두 사람은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책을 들고 대각선 자리에 앉아 펴 들었다. 늦은 오후 같은 은은한 빛에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등이 반짝이던 나른한 저녁이었다. 잠시 후 책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에 화들짝 깼다. 사람 북극곰(여행 동행자)이 문간에 서서 침을 닦으라는 시늉을 했다. 두 사람은 눈도 떼지 않고 조용히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모자를 쓴 지성인 형제는 뱃전에서 차가운 북극의 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멀리 빙하들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렇게 4시간쯤 달렸을까. 배는 천천히 선체를 기울여 바렌츠버그를 향해 접근하고 있었다.

밟으면 찌그러질 것 같은 낡은 나무계단 뒤가 마을이었다. 야구모자를 눌러 쓴 청년이 싹싹하게 관광객들을 모았다. “바렌츠버그에 잘 오셨습니다! 스발바르의 유일한 러시아 타운이죠. 저기 벽의 스발바르 지도가 보이시….” 청년이 가리키는 건물 뒤로 ‘별’이 보였다. 검은 산에 흰 돌을 박아서 만든 것이다. 그 아래 알파벳을 떨어뜨렸다 황급히 주워 붙여놓은 것 같은 키릴 문자도 보였다. 멀고 먼 러시아에서 온 광산 노동자들이 만들어놓은 ‘대지 예술’이었다. 힘들게 만들었는데 딱 한 가지 단점이, 흰 돌이어서 눈이 오면 보이지 않는 거다. 그리고 스발바르는 1년 내내 아무 때나 눈이 온다. 광장 격인 마을 입구에는 먼 바다를 응시하는 레닌의 동상도 있었다. 레닌을 한번 보고 청년을 다시 보니 저 청년이 바렌츠버그 공산주의청년동맹 간부쯤 되지 않겠나 싶었다. 카메라를 움켜쥐고 우물쭈물하던 관광객들은 줄을 지어 청년의 뒤를 따랐다.

건물들은 예뻤다. 레이스를 붙인 듯 섬세하게 조각이 되어 있는 창틀도, 소비에트 풍의 규모로 압도하는 학교와 병원도 이국적이었다. 창틀에는 갈매기가 둥지를 틀고 있었다. 제비들은 처마 밑에 둥지를 틀던데, 쟤들은 외향적인 모양이었다. ‘폴라 스타’라는 건물에는 여성 노동자 3명의 결의에 찬 옆모습이 그려져 있었는데, 실망스럽게도 그냥 선물가게였다. 창문엔 창문형 에어컨처럼 박스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게 뭔지 아시는 분?” “에어컨요!” ‘저요 저요!’ 번쩍 손을 들고 외쳤으나, 아, 여기는 북극. 에어컨이 아니라 냉장고다. 여름 한철 제외하면 어차피 1년 내내 추우니까, 창 밖 박스에 음식을 넣어 두면 상하지 않는단다.

잇따른 폐광에 이민 광산노동자 한숨
광부 식당이라는 건물 벽에는 휘장 모양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광부 한 명이 뻘쭘한 표정으로 서 있고 북극곰 두 마리가 ‘자기 너무 멋져요’ 하는 표정으로 월계관을 씌워주는 모습이다. 북극 광산 마을을 독려하는 사회주의식 선전물이라 하겠다. 바렌츠버그 광산은 ‘아르티쿨’이란 업체가 운영한다. 시내 한가운데에 회사가 있는데, 지하에서 갱도로 통하는 문이 있다고 한다. 광부들은 지하 500m까지 내려가 매년 1만2000톤의 석탄을 캐낸다. 지금은 주춤하지만 한때는 35만톤을 캤다.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은 이 막대한 자원이 나치의 손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며 바렌츠버그를 폭격해 반쯤 폐허로 만들었다. 이어 독일군이 이 막대한 자원을 군수용으로 이용하게 할 수는 없다며 나머지 반을 폭격했다. 그래서 바렌츠버그는 폐허가 됐다. 지금 건물들은 대부분 1950년대 이후 새로 세운 것들이다.

배가 떠나려면 시간도 남았고, 우체국 옆 호텔 식당으로 갔다. 낡은 피아노 위에 순록 뿔이 걸려 있는 바에는 아무도 없었다. 낡은 레이스 커튼이 걸려 있는 창가에서 커피를 마시며 부지런히 엽서를 썼다. 우체국에 가면 북극곰 소인을 찍어준다고 해서다. 낮게 틀어놓은 라디오에서는 알 수 없는 러시아말이 흘러나왔다. 예전엔 러시아인이 대부분이었지만, 요즘은 우크라이나인도 절반이나 된다. 광산 노동자로 2년 계약을 맺고 오지만, 그냥 눌러앉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고향에 돌아가도 춥고 고달프고 불편하기는 여기 북극과 마찬가지여서다.

그러나 그런 일자리도 자꾸만 줄어들고 있다. 광산이 언제 문을 닫을지 모른다. 근처 피라메덴 광산도 1998년 문을 닫았다. 바렌츠버그처럼 러시아 정착촌이어서 두 마을의 광부들은 종종 친선 농구 경기를 하곤 했단다. 이제는 헬기를 타고 날아가 롱이어비엔 광부들과 경기를 해야 한다. 바렌츠버그의 인구도 지난 10년새 800명에서 300명으로 줄어들었다. 레이스 창문에 뚫린 구멍 틈으로 머리에 수건을 쓰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들이 보였다. 문득 체육관 벽에 그려져 있던 그림이 생각났다. 크리스마스 트리 같은 전나무숲 사이로 강물이 흐르고 있는 그림이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북극 사막에서 이들은 떠나온 고향 마을의 바람 같은 겨울숲을 이따금씩 떠올리고 있는 것일까. 어느 건물인가엔 자작나무 숲도 그려져 있었던 것 같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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