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을 만든 과학자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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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의 아버지’라는 무시무시한 별명을 가진 물리학자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 프로그램인 ‘맨해튼 프로젝트’의 총지휘자였습니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에서 원자폭탄을 만든다는 첩보를 얻고 과학자들에게 원자폭탄을 만들게 했습니다. 유태인 물리학자인 오펜하이머가 원자폭탄을 개발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 결과 수만명이 원자폭탄 투하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뒤 미국은 소련에서 수소폭탄을 개발한다는 구실로 과학자에게 수소폭탄 개발의 임무를 부여합니다. 죄책감을 느낀 나머지 오펜하이머는 수소폭탄 개발을 거부합니다. 권력자들은 그를 공산주의자로 내몰아 법정에 서게 합니다. 매카시 선풍이 불 때입니다. 

1954년 열린 이 재판은 훗날 독일 작가인 키파르트에 의해 <오펜하이머 사건에서>라는 연극으로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무대에서 오펜하이머는 말합니다. “우리는 전문인으로서 우리에게 요구되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폭탄을 실제로 투하하라는 결정을 내리지는 않았지요. (…) 결과로 드러난 것처럼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으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습니다. (…) 원자탄 투하 이후 끔찍한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았을 사람은 내가 아는 한 한 명도 없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정신분열증세입니다. 몇 해 전부터 우리 물리학자들은 그 증세를 앓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원자폭탄을 만들었으나 원자폭탄 투하에 대해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해서 과학자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원자력 발전을 위한 시설이 방사능 공포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일본의 상황을 보며 과학자의 철학을 다시금 떠올립니다. 어떤 과학자는 재앙 위기 앞에서 침묵했고, 어떤 과학자는 왜곡했고, 어떤 과학자는 자본에 눈을 감고 관료에 고개를 숙이면서 진실을 외면했을지도 모릅니다. 이 사이에 핵 재앙의 싹은 자랐습니다. 아직도 어디에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 없습니다.  

과학 속에 철학이 죽고 경제성이 최우선의 가치로 떠오르면 재앙이 됩니다. 거기에 이데올로기가 개입되면 더 큰 재앙이 됩니다. 오펜하이머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다시 키파르트의 연극을 보면 재판의 최후 진술에서 오펜하이머가 말합니다. 

“나는 자문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과를 생각지 않고 연구작업을 군대에 떠맡겼을 때, 그때 이미 우리는 진정으로 과학의 정신을 배반했던 게 아닐까 하고…. 지금껏 우리는 악마의 일을 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본연의 과제로 돌아가겠습니다.”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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