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세상 최북단 곰마을 ‘인간이 주인행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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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해외방랑기 ‘스발바르 롱이어비엔’

나는 왜 스발바르 제도를 다녀왔을까. 자랑하려고 갔다 왔다. 아아,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스발바르는 사람이 마을을 이뤄 사는 곳 가운데 가장 북극에 가깝다. 북극점까지 1338㎞밖에 안 된다. “그린란드 알지? 거기서 동북쪽으로 가면 섬 5개가 있어. 왜, 다산기지 알지? 남극 세종기지 말고 북극 다산기지 있잖아. 그게 그 섬에 있는데….” 가기 전부터 자랑질은 지치지도 않았다. 관광객이 갈 수 있는 세계 최북단 아니던가. 스발바르를 다녀온 한국 사람이 100명이 안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으쓱했다. 스발바르라는 이름을 들어나 봤다는 사람은 며칠 전 북극 ‘노아의 방주’ 기사를 썼다는 국제부 기자뿐이었다.

순록이 이끼를 뜯고 있는 롱이어비엔 전경.

순록이 이끼를 뜯고 있는 롱이어비엔 전경.

한국 다산기지와 1개 도시 마을 2곳뿐
비행기가 롱이어비엔 공항에 도착한 것은 새벽 1시 20분. 활주로 끝의 바다 위로 해가 떠 있었다. 백야였다. 4월 19일부터 8월 21일까지 4개월은 해가 지지 않고, 10월 말부터 4개월은 해가 뜨지 않는다. 꼭 오후 5시쯤의 빛 속에서 공항버스 3대가 승객들을 실었다. 공항과 시내를 연결하는, 롱이어비엔 유일의 대중교통 수단이다. 1개의 도시와 2개의 마을, 1개의 과학기지가 전부인 스발바르에서 1800명이 사는 롱이어비엔은 그 1개의 도시다. 숙소인 ‘게스트하우스 102’는 피요르드 골짜기 끝에 있었다. 1960년까지 광부 기숙사로 쓰던 건물을 호스텔로 개조했다. 커튼 틈으로 숙소를 찾아 곰처럼 어슬렁거리는 어르신 관광객 커플이 보였다. 순록 두 마리도 덩달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기묘한 빛 속에서 잠이 들자니, 계속 가위에 눌렸다.

다음날 아침엔 산책 삼아 다운타운으로 내려갔다. 뒷산이겠거니 여겼던 것이 아침에 보니 뒷빙하였다. ‘배(背)빙하 임(臨)피요르드’의 지세라 하겠다. 만들다 만 것 같은 낯선 풍경이었다.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산이 낯설었다. 산자락에는 컨테이너를 옮겨다 놓은 것 같은 집들이 있었다. 지하철 커피자판기에 가끔 걸려 있는, 빨갛고 노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진처럼 딱 그렇게 생긴 집들이었다. 집들은 원두막처럼 땅 위에서 1m 정도씩 띄워져 있었다. 눈이 쌓여도 문을 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순록 뿔이 문패처럼 걸려 있고, 자동차 대신 모터스키가 주차돼 있었다. 큰길(포장 같은 건 돼 있지 않다)을 따라 파이프 2개가 나란히 흘렀다. 상수도와 하수도다. 여름이 되어도 땅 표면만 겨우 녹는 영구동토층이기 때문에 상·하수도를 땅 속에 묻을 수가 없었단다. 순록들은 똥개처럼 한낮에도 마을을 어슬렁거렸다. 썰매 끄는 아르바이트도 없는데 쟤들은 어떻게 먹고 살지. 여름 한철 이끼를 뜯어 먹고 10㎏까지 지방을 축적해 겨울을 난단다. 겨울엔 눈을 뜯어 먹는다. “눈에도 약간의 양분이 있기 때문”이다. 정말 힘든 인생 선택했다.

다운타운 한가운데 있는 건물은 여행자 안내센터 겸 스발바르의 유일한 박물관 ‘스발바르 뮤지엄’ 겸 롱이어비엔 대학이었다. 북극 연구소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어서 빙하학, 동물학, 지질학 같은 걸 연구한다는데, 눈을 씻고 찾아봐도 대학스러운 건물은 찾을 수가 없었다.

주점엔 순록·물범고기에 곰 요리도
대신 ‘보디숍’만 보였다. 그렇다, 백화점 지하에도 있는 그 영국 자연주의 화장품 브랜드 보디숍이었다. 노르웨이 사람들은 북풍에 살이 트는 것을 막기 위해 국기가 그려진 뉴트로지나 화장품만 쓰는 줄 알았는데, 이런 꽃냄새 나는 화장품도 좋아하실 줄이야. 그나저나 보디숍이 이 정도로 대단한 다국적 브랜드일 줄은 미처 몰랐다. 맥도날드도, 스타벅스도, 버거킹도 모두 반성해야 한다. 가게라고 해봐야 장르별로 하나씩 있는 북극의 작은 마을까지 보디숍이 진출하는 동안 뭘 했단 말인가. 쓰나미의 속도로 지역 경제를 붕괴시킨다는 공격적 다국적 자본이란 이름이 부끄럽지도 않나. 여행자 안내센터에는 ‘문 여는 시간’이라고 적힌 A4 용지가 비치돼 있었는데, 그게 전화번호부였다. 모든 상업시설의 영업시간과 전화번호가 다 적혀 있다. 요일별 영업시간까지 별도로 표기해서다.

스발바르의 북극곰 출몰 안내 표지판.

스발바르의 북극곰 출몰 안내 표지판.

뭐, 그래도 없는 건 없었다. 우체국, 슈퍼마켓, 여행사, 심지어 신문사도 있었다. 부정기 간행되긴 하지만 스발바르를 대표하는 자유 언론 ‘스발바르 포스텐’이다. 세계 최북단에서 발행되는 신문사 옆에는 세계 최북단의 슈퍼마켓 스발바르부티켄이 있었다. 외국인에겐 술이 면세된다. 점원이 내 여권 사이에 끼여 있던 항공 탑승권을 꺼내더니 뒷면에 연필로 ‘2, 1, 17’ 이라고 썼다. 면세 한도가 앞으로 보드카 2병, 와인 1병, 맥주 17캔 남았단다. 인심도 후하다. 세계 최북단 우체국에도 갔다. 한국에 보낼 우표 2장을 사는데, 우체국 직원이 “나 한국에 가본 적 있다”며 반가워했다. 1997년에 어린이 캠프 활동가로 한 달 동안 가 있었단다.

우체국 문에는 ‘총을 소지하고 들어올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다. 슈퍼 입구에도, 여행사 입구에도, 여행자 안내센터도 마찬가지다. 스발바르엔 총이 천지다. 그게 다 북극곰 때문이다. 스발바르 전체에 5000~7000마리의 북극곰이 산다. 사람보다 북극곰이 3배는 더 많이 사는 셈이다. 곰이 다운타운까지 내려오는 일은 좀처럼 없지만, 사람이 다운타운 밖으로 나갈 일은 있다. 그럴 땐 반드시 총을 메고 가야 한다. 북극곰을 쏘라는 게 아니다. 허공에 총을 쏘아 북극곰이 도망가게 하라는 거다. 북극곰은 멸종위기 동물이기 때문에 쏘았다간 비행기가 스발바르를 떠나는 시간까지 경찰서에 앉아 조서를 쓰는 신세가 될 확률이 몹시 높다.

관광객도 혼자서 다운타운에서 3㎞ 이상 벗어나려면 총을 빌려야 한다. 쇼핑몰에 총 빌려주는 가게도 있는데, 총 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대여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사람 북극곰(여행 동행자)은 대한민국 남아치고 사격 안 해본 사람이 있겠느냐며 가슴을 땅땅 쳤다. 그러나 볼펜으로 과녁에 총구멍을 냈다는 북극곰의 과거가 잊으려 애써도 자꾸만 생각났다.

총 없이 롱이어비엔을 어슬렁거리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스발바르 유일의 갤러리에 가서 오로라 영상도 보고, 스발바르 유일의 교회에도 갔다. 교회 옆은 묘지였다. 20세기 초 유럽을 휩쓴 스페인 인플루엔자로 여기서도 6명이 죽었단다. 우리 말고도 할 일 없는 관광객들이 하얀 십자가와 묘지를 사진 찍고 있었다. 해는 여전히 중천이었다. 해는 질 생각 같은 건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저녁이라고, 스발바르 유일의 바에서는 광부와 관광객과 과학자들이 삼삼오오 저녁을 먹고 있었다. 순록, 물범에 북극곰 고기도 판다. 메뉴판의 ‘북극곰 고기’ 옆에는 조그마한 글씨로 “소송 걸지 않겠다고 서약하면 팝니다”라고 적혀 있다. 광부들은 맥주 한 잔에 땀을 식히고, 연구자들은 와인잔을 부딪치며 무지개 너머의 과학적 진실을 토로하는 밤. 여기서 저녁을 먹고 숙소까지 걸어가볼까. 해가 밤새 따라올 테니 쓸쓸하지는 않을 것이다.

<글·사진 최명애 경향신문 사회부 기자 glauk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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