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를 보았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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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흥미로운 심리실험이 진행됐습니다. 프로농구 인천 전자랜드와 서울 SK전의 하프 타임 때 이벤트 사회자가 관중들에게 문제를 냈습니다. 흰옷을 입은 사람 3명과 검은옷을 입은 사람 3명이 뒤섞여 패스를 주고 받는데 흰옷을 입은 사람들끼리 몇 번 패스를 하는지 세어보라는 것입니다. 6명이 패스를 하는 동안 고릴라 복장을 한 사람이 어슬렁어슬렁 경기장을 지나갔습니다. 관중들은 과연 이 고릴라를 볼 수 있었을까요?

조선일보가 진행한 이 심리실험에서 주최 측에 문자를 보낸 전체 580명 중 ‘고릴라를 못 봤다’는 사람이 315명이나 됐습니다. 절반 이상이 패스를 헤아리다가 고릴라를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뭔가를 봤다’는 265명 중 고릴라라고 정확하게 맞힌 사람은 205명에 불과했습니다.

이 실험은 인지심리학자인 크리스토퍼 차브리스 유니언칼리지대 교수와 대니얼 사이먼스 일노이대 교수가 하버드대 심리학과 건물에서 1999년 했던 실험을 그대로 한 것입니다. 두 교수는 각각 3명의 흰옷·검은옷 복장 학생들이 뒤섞여 농구공을 패스하는 동영상을 학생들에게 보여줬습니다. 마찬가지로 흰옷 학생들의 패스 횟수만 세도록 했습니다. 동영상에서는 고릴라 의상을 입은 학생이 9초에 걸쳐 지나갑니다. 심지어 카메라를 향해 가슴을 두드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동영상을 본 학생의 절반은 고릴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고 믿습니다. 엉뚱한 장소에 고릴라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농구공 패스에 열중한 나머지 고릴라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원전은 인류의 축복으로 여겨졌습니다. 저탄소에다 경제성도 높습니다. 안전성 또한 높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대지진과 쓰나미로 원전의 안전신화가 무너지면서 더 이상 축복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본 원전 사고가 벌어진 이후에도 우리나라 정부와 원전 개발론자들의 목소리는 한결 같습니다. 일본과 다르다, 안전하고 문제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원전 수출에 나서고, 원전을 마치 녹색 에너지인 양 부각시키며 전체 에너지 생산에서 원전의 비율을 높이려 하고 있습니다. 환경론자들의 반대 목소리는 공허하게 울렸습니다.

정부와 원전 개발론자들은 농구공의 패스만 볼 뿐이지 고릴라를 보지 못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려 했기 때문에 고릴라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경제성만 보지, 혹여 있을지도 모를 안전사고는 남의 나라 이야기입니다. 어쩌면 그들은 고릴라를 보고 싶지 않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고릴라가 눈 앞에 등장했습니다. 여러분은 고릴라를 보셨습니까?

<윤호우 편집장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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