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방사능 공포에 비통할 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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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현지 리포트, 강진·쓰나미 위력에 ‘일본의 안전’ 흔들려

‘안전한 원전’의 신화가 깨지고 있다. 동시에 ‘안전한 일본’의 신화도 무너지고 있다. 지진과 쓰나미에 강타당한 일본이 불안하다. 일본 국민은 물론 전세계인의 ‘믿음’이 한순간에 내려앉고 있다.

원전 폭발사고 현장인 후쿠시마(福島) 일대에서는 현지 주민들이 정든 터전을 버리고 외지로 탈출하고 있고, 일본에서 생활하던 외국인들은 귀국길을 서두르고 있다.

후쿠시마 탈출을 시도하는 이노우에 가족.

후쿠시마 탈출을 시도하는 이노우에 가족.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라던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불안한 나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지진과 쓰나미에 이은 원전 폭발이라는 초유의 사태로 ‘패닉상태’에 빠져 있는 일본 현지를 지난 3월 12일부터 18일까지 다녀왔다.

불안한 후쿠시마
“밖에는 절대로 나가지 마세요. 발전기가 또 폭발했어요. 북풍이 불면 우리가 위험해요.” 지난 17일 오전 10시 일본 후쿠시마현 소마(相馬)시 중심부에 설치된 피난소. 이번 지진 이후 폭발사고가 이어지고 있는 후쿠시마 원전 북쪽지방에 있는 피난소다. 원전 사고현장과는 30~40㎞ 정도 떨어져 있다.

원전 폭발로 유출된 방사성 물질이 북풍을 타고 확산되고 있다는 보도가 이어지면서 피난소에는 극도의 불안감이 번졌다. 여기저기서 “밖으로 나가지 마라. 빨리 문을 닫아라”는 고함소리가 터져나왔다. 피난소에 몰려 있는 1000여명의 피난민들 중 상당수는 상황이 긴박해지자 그동안 유지해오던 침착성을 잃어갔다.

후쿠시마는 물론 미야기(宮城)와 이바라키(茨城) 등 인근 지역의 피난민들도 극도의 불안감을 표시하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방사능 피폭 위험에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무조건 후쿠시마를 빠져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간단한 짐을 챙겨서 집을 나왔어요. 가능한 한 후쿠시마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갈 생각입니다만….”

지난 13일 오후 3시 일본 후쿠시마 공항. 이노우에 다카시(井上貴·44·프리랜서)와 부인, 딸 2명 등 일가족 4명의 얼굴에는 극도의 불안감이 번졌다. 이들은 6시간을 기다려도 비행기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되자 자동차를 이용해 후쿠시마 탈출에 나섰다.

오사카(大阪)로 떠나는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후쿠시마를 탈출할 계획이었지만 피난객이 한꺼번에 몰리면서 표를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지속됐기 때문이다. 이노우에 가족은 지난 12일 오후 3시 30분 후쿠시마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1호기에서 폭발사고가 났다는 TV뉴스를 보고 바로 짐을 쌌다.

이노우에는 “일단 니가타(新潟)로 가서 페리로 오사카까지 가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막힌 하늘길을 땅길과 바닷길로 뚫어보겠다는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폭발사고가 잇따르면서 ‘후쿠시마 엑소더스’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주민들이 끊긴 철도와 고속도로를 피해 공항과 국도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곳곳에서 극심한 혼잡이 빚어지고 있다.

일본 엑소더스
“일단 여기를 떠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진이나 쓰나미와는 또 다른 상황이니까요. 원전이 하나 둘 폭발하면서 센다이 탈출에 나선 한국 교민이 급격히 늘고 있습니다.”

지난 15일 오후 1시 30분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仙臺)시 아오바(靑葉)구 센다이 총영사관. 부인의 손을 잡고 영사관을 찾은 유학생 이병수씨(32·도호쿠대학 금속공학부 박사과정)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가시지 않았다.

어렵게 표를 구한 비행기는 16일 니가타를 떠나는 오사카행. 이씨 부부는 오사카에서 인천으로 가는 비행기로 갈아 탈 예정이다.

부인 김승희씨(31)는 “지진에 이은 쓰나미 피해가 알려졌을 때만 해도 가만히 있던 유학생과 교민 등이 원전 폭발사고 이후 너도나도 한국이나 도쿄·오사카 등 외지로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평상시 왕복 70만원이면 오가던 길을 편도만 140만원을 주고 가게 됐다”며 “그나마 운이 좋아서 표를 구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씨 부부는 이날 하루 총영사관 다목적실에 마련된 피난소에서 생활하다가 총영사관이 제공하는 버스를 타고 16일 아침 일찍 니가타로 가 귀국길에 올랐다. 후쿠시마 원전의 잇단 폭발사고 이후 외국인들이 너도나도 귀국길에 오르고 있다. ‘일본 엑소더스’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한 방사선 피폭을 막기 위해 일본 내 미국인들에게 대피령을 내렸다. 미 국무부는 반경 80㎞ 내에 체류하는 자국민들에게 다른 지역으로 떠나거나 대피시설로 가라고 권고했다. 영국 정부도 도호쿠 지역은 물론이고 도쿄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철수를 권고했다. 프랑스는 출국자들을 도울 항공기 2대를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오스트리아는 도쿄의 대사관을 오사카로 옮겼다. 러시아는 일본 내 자국 외교관·공관 직원들과 가족들을 일시 철수시키기로 했다. 중국·방글라데시·스위스·네덜란드 등도 후쿠시마에서 먼 지역으로의 대피를 권고하거나 출국을 지원하고 있다.

피난소에서 친구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이시이 레이코.

피난소에서 친구들의 생존 여부를 확인하는 이시이 레이코.

절망의 피난소
“아무도 웃지 않습니다. 아니 웃을 수가 없습니다. 언제나 다시 이 거리에 웃음이 되돌아올는지…. 모든 것이 사라졌으니까요. 사람도, 집도, 웃음도 말입니다.” (미나미산리쿠초 지역의 60대 생존자)

지난 16일 미야기 지역의 거리는 어둡고 추웠다. 게다가 비까지 내렸다. 사람들의 마음도 어둡고 추웠다. 쓰나미가 삼켜버린 미야기에는 거대한 슬픔만 남아있다. 하루에 1000명의 시체를 토해낸 바다를 바라보면서도 사람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울지도 않았다.

미야기현 동북부의 미나미산리쿠초(南三陸町) 주민 1만7300여명 가운데 현재 살아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람은 7000여명. 이들 중 ‘살아남았다’고 기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행방이 확인되지 않고 있는 1만명, 아니 이미 저 세상에 가 있을 가능성이 높은 그들을 생각하면 잠도 이루지 못한다. 모든 죽은 사람은 모든 산 사람의 가족이거나 친지이거나 이웃이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장례식입니다. 당장은 화장도 걱정이지만 말입니다.”(이노마타 가츠미·49)

대부분의 희생자들이 가족은 물론 이웃·친지 등과 함께 참변을 당해 장례식조차 엄두를 낼 수 없게 되면서 각 피난소는 무거운 슬픔에 잠겨 있다. 또 지진 피해지역의 수도·전기·가스 등 라이프라인이 거의 끊겼다. 상당수 피난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주먹밥 한 개로 식사를 대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자동차 연료가 없어 외부 지원물자를 피난소 등에 보급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구조견과 함께 생존자 구조활동에 나선 스위스 구조대.

구조견과 함께 생존자 구조활동에 나선 스위스 구조대.

특히 각 지역의 병원에서는 부상자들에 대한 응급치료 활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턱없이 부족한 약과 의료기구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센누마 시립병원의 한 관계자는 “인공투석기의 튜브와 필터가 부족해 응급환자를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며 “모든 것이 부족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 병원에서는 200장 정도 담요가 모자라 일부 환자는 종이박스 위에 누워 진료를 받기도 했다.

특히 상당수 병원은 전기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암흑 속 진료가 이어지고 있다. 게센누마 시립병원의 경우 전기 부족으로 수술실 등 꼭 필요한 일부 공간만 불을 밝히고 있다. 한 환자는 “어두운 병원 안을 걸어다니다 넘어져서 2차 부상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국경 없는 의사단 일본’의 구로사키 노부코 회장은 “새벽 6시부터 밤 12시까지 피해지역과 병·의원을 돌고 있지만 손이 모자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물 부족도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센다이 시내에서는 일부 주민들이 하수구 뚜껑을 열고 물을 길어다 화장실 물로 사용하는 모습이 목격되기도 했다.

지난 16일 오전 11시 일본 미야기현 센다이시 와카바야시(若林)구 시치고(七鄕)초등학교에 마련된 피난소. 피난소를 짓누르고 있는 거대한 쓰나미의 공포 위로 아침부터 차가운 함박눈이 내렸다. 피난소는 더욱 춥게 느껴졌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이 세상에 딱 혼자만 남겨진 기분이야. 아픈 무릎을 이끌고 하루에 3곳씩 돌아다녀. 벌써 15곳을 돌아다녔어. 그동안 함께 지내던 노인회 친구 6~7명의 연락이 모두 끊겼거든.”

초등학교의 대피소 연락판 한쪽에 “이시이는 잘 있어. 시치고초등학교 피난소로 연락해”라는 짤막한 글을 적어놓고 자리를 뜨는 이시이 레이코(82)는 주르르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쳐냈다. 그는 울음을 들이삼키고 있었다.

가족을 찾습니다. 친구를 찾습니다.
이시이는 지난 11일 지진 당일 옆집 주민이 제공한 자동차를 이용해 쓰나미가 닥치기 5분 전에 11살짜리 애견 보브와 극적으로 탈출했다. 그러나 이 세상에 남은 것은 자신의 몸과 애견 보브뿐.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매일같이 함께 어울리던 친구는 연락이 닿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시이는 “매일 저녁 보브를 껴안고 잠자리에 들지만 지진의 충격과 꿈에 나타나는 친구들의 모습 때문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있다”며 “친구들의 생존 여부가 확인될 때까지 피난소를 돌며 찾아보고 글을 남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희일 특파원

윤희일 특파원

이번 지진에 따른 대피자 수가 60만명에 육박하고 있는 가운데 각 피난소마다 가족이나 친지를 찾기 위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또 이들이 남긴 사연이 하나둘 쌓여가면서 연락판이 꽉꽉 차고 있다.

센다이의 한 지방방송 라디오에서는 가족이나 친지를 찾는 주민들의 사연만을 하루 종일 내보내는 등 끊긴 사람들의 소식을 이어보려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지진 현장에서는 ‘살아있다’는 소식 보다는 ‘숨졌다’는 소식이 몇 십배, 몇 백배 많아지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피난민들은 가족과 집을 모두 삼켜버린 바다를 바라보면서, 이미 방사성 물질을 뿜어내고 있는 원자력발전소를 바라보면서 깊은 절망에 빠져들고 있다. 하늘은 이런 피난민들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16, 17일 차가운 눈만 연방 퍼부어댔다.

<일본 후쿠시마·센다이 글·사진 윤희일 특파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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