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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하늘길 행차 막은 ‘나사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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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초유 전용기 ‘코드원’ 회항 사태 막전막후

지난 12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으로 향하던 대통령 전용기(공군 1호기·일명 ‘코드원’)의 사상 초유 회항 사태와 관련해 결함의 원인과 책임 소재에 대한 공방전이 가열되면서 대통령 전용기에 대한 관심 또한 뜨겁다. 대통령 전용기는 정부가 대한항공으로부터 보잉사의 B747-400 기종을 5년 임차한 것으로, 지난 2010년 4월 이명박 대통령의 미국 순방 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12일 오후(현지시간) UAE아부다비 왕실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 ‘코드원. 초유의 대통령 전용기 회항 이후 대통령 전용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12일 오후(현지시간) UAE아부다비 왕실공항에 도착한 대통령 전용기 ‘코드원. 초유의 대통령 전용기 회항 이후 대통령 전용기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연합뉴스

관리감독 경호처, 실무정비 대한항공
대통령 전용기의 소재지는 서울공항(옛 성남비행장) VIP 전용 계류장이다. 서울공항은 공군이 관할하는 수도권 공군전용기지로, 경호상 안전성과 편의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활주로 또한 김포공항보다 길어 대형항공기의 이착륙도 충분히 가능하다.

대통령 전용기는 청와대 경호처의 총괄책임 하에 공군 제35전대가 정비감독을 하고 대한항공이 실제 정비를 담당하고 있다. 그러나 공군의 역할은 격납고나 활주로 등 시설을 빌려주는 수준으로, 건설업으로 치자면 경호처가 시행사, 대한항공이 시공사가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이번 회항사태의 실무책임은 대한항공이, 관리·감독의 책임은 경호처에 있다는 것이 항공업계의 중론이다.

서울공항에는 대한항공 직원으로 구성된 정비팀이 별도로 상주해 있다. 평균 2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정비사들과 숙련된 정비인력 등이 매일 점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군 장교 출신의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 팀이 평소 정비를 하다가 대통령 해외순방 계획이 잡히면 전용기를 김포공항의 격납고로 옮겨 최종 정밀점검을 실시한다”며 “정밀점검이 끝나면 출발 하루이틀 전에 서울공항으로 다시 옮긴다”고 말했다. 이동시간이나 동선 등은 철저히 보안에 부쳐진다고. 이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전용헬기를 타고 곧바로 서울공항으로 가 전용기로 갈아타고 출국한다.

정비사와 달리 조종사와 승무원은 해외순방 때마다 탑승자가 달라진다.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일류급 승무원을 대상으로 경호처에서 신원조회를 하고, 이들 중 2배수를 선정한다”며 “이들에 대한 신원조회와 보안유지 교육은 상당히 까다로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탑승인원은 기장과 부기장, 정비인원, 승무원 등 15명 안팎. “B747-400의 승무원 풀 탑승인원은 18명이지만 대통령 전용기의 경우 실내 인테리어를 개조해 상대적으로 공간이 좁은 데다 탑승객도 많지 않아 풀로 타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이 소식통의 말이다.

이번 대통령 전용기 회항의 원인은 일단 기체 아래쪽 외부 공기 흡입구 덮개(에어 커버)를 고정하는 나사가 제대로 조여지지 않은 정비 불량 탓으로 알려지고 있다. 나사가 풀리면서 ‘덜덜덜’ 거리는 소음과 진동이 발생했던 것. 항공업계 관계자는 “언뜻 보면 작은 문제 같지만 그로 인한 ‘후폭풍’은 엄청나다”고 말했다. 항공기는 보통 3만7000~3만9000피트 상공(11㎞ 이상)을 시속 980~990㎞의 고속으로 운항하는데, 이때 바깥의 기온은 영하 50도 정도. 자칫 결함 지점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고도와 속도, 기온 탓에 사태가 커질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대통령 전용기는 인천공항으로 회항하는 과정에서 연료탱크에 가득차 있던 항공유를 공중에 버려야 했다. 이를 ‘퓨얼 덤핑’(Fuel Dumping)이라고 하는데, 착륙시 항공기 무게가 일정 중량을 초과할 경우 랜딩기어 등에 무리가 오는 것은 물론 사고가 났을 때 화재나 폭발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항공기의 기종과 서울~아부다비 운항거리(약 7000㎞) 등을 감안하면 공중에 날려버린 항공유는 약 6만리터로 추산된다. 현재 유가로 계산시 5600만원 정도. 해당 비용은 대한항공이 부담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대통령 전용기 회항은 ‘Sel-Vor’에서 유도했다. 경기도 안양시 관악산에 위치한 이곳은 서울(Sel) 주변 항공기 운항을 지시하는 곳으로, 항공업계에선 ‘안양 Vor’라고 부른다. 퓨얼 덤핑 지역은 ‘Sel로부터 272도, 40노티컬마일’ 지점이다. ‘Sel로부터 272도’는 관악산 서쪽이며, ‘40노티컬마일’은 74㎞ 정도이므로 바로 서해안 상공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이번 회항사태를 다룬 언론 일부에서 퓨얼 덤핑 지점을 군산 근처 바다라고 보도했는데 정확히 인천 먼 바다”라며 “이 지점에서 고도 4000~7000피트(1.2~2.1㎞)를 유지한 채 선회하면서 최소 연료를 남기고 모두 쏟아붓는다”고 말했다.

항공사 오너 탑승여부 다시 설왕설래
국내 대통령 전용기의 역사는 5공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에 B737-300 기종을 도입해 대통령 전용기로 운용한 것. B737-300 기종은 현재 국내선 저가항공 기종으로 쓰이는 수준이다. 당시 공군 비행사가 직접 조종을 하고, 공군 소속 여군이 공군정복 차림으로 안내와 간단한 음료 서빙을 했다. 탑승인원은 대통령과 참모 20∼30명 정도. 장거리 비행이 불가능해 도쿄나 베이징 등 인근 나라의 순방만 가능했다. 대신 장거리 외국 순방엔 민간항공기를 매번 임대해 사용했다. 이때에 민간항공기에 ‘코드원’의 자격이 부여됐다.

대통령 전용기가 출입문 하단부 에어커버 장치 이상으로 인천공항으로 긴급 회항한 가운데 소방차와 구급차가 전용기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청와대공동사진단

대통령 전용기가 출입문 하단부 에어커버 장치 이상으로 인천공항으로 긴급 회항한 가운데 소방차와 구급차가 전용기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청와대공동사진단

장거리 외국 순방엔 주로 대한항공 소속의 항공기가 사용됐다. 그러다 김대중 정부 들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을 번갈아 임차하는 식으로 변경했다. 호남기업에 대한 고려와 국적기 두 기업에 대한 배려 차원이었다. 그러다 지난해 2월 청와대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치열한 경합 끝에 대한항공의 보잉 747-400을 5년간 임차 조건으로 전용기로 채택했다. 2001년식으로 운항한 지 8년 4개월 된 항공기였다. 항공대 모 교수는 “아시아나항공에는 대통령 전용기로 사용이 가능한 패신저 기종(여객용)이 적어 대한항공을 선택했을 것”이라며 “대통령 전용기로 선정된 항공사는 이를 대외 홍보용으로 상당히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회항사태에 따른 대한항공의 ‘고충’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회항사태가 일어나자 일각에서는 “오너가 탑승하지 않자 안전 기강이 헤이해진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동승하는 관례를 부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은 이전까지는 번갈아 대통령 특별기(전세기)를 운항하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박찬법 금호아시아나 전 회장이 동승해 운항을 점검했다. 안전을 보장한다는 의미였지만 대통령 예우에 오너가 나서던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 때문에 “항공사 CEO가 타면 안전이 보장되고, 대통령만 타면 보장 되지 않느냐?” “권위주의적 태도를 벗어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양정철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 역시 자신의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이번 사태는 그 과정에서 어떤 비효율 내지는 체계적이지 못한 정비관리에서 발생한 문제가 아닌지를 따져봐야 할 것”이라며 “삼원(三元)적 관리와 정비 운용과정에서 어떤 결함이나 허점이 생긴 게 아닌지 조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전용기 획득사업 물건너간 까닭은?
새로운 대통령 전용기 도입사업은 노무현 대통령 때 처음 추진됐다. “본인은 타볼 기회가 없겠지만 다음 대통령의 글로벌 외교를 위해 필요하다”는 게 노 대통령의 입장이었지만 당시 한나라당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쳐 결국 무산됐다. “경제가 파탄이 났는데 뭔놈의 전용기냐”는 주장이었다. 그리고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관련 예산을 국회에 요청했으나 이번엔 민주당이 발목을 잡았다. 역시 경제위기가 이유였다. 우여곡절 끝에 정부는 지난해 다시 대통령 전용기 구매 예산을 국회에 요청했고, 민주당의 동의하에 착수금으로 140억원의 예산이 배정됐다.

그러나 정부가 2014년까지 도입하기로 한 대통령 전용기 획득사업을 사실상 포기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해 하반기 방위사업청과 대통령 전용기 사업에 단독 입찰한 미국 보잉사 간에 진행되던 가격 협상이 결렬됐기 때문. 항공업계 관계자는 “정부 관계자들은 최초 5000억원 정도를 예상했지만 보잉사 측에서 특수장비가 많이 들어간다며 터무니없는 가격을 제시한 것으로 안다”며 “유일한 협상자와 틀어졌으니 대통령 전용기 도입은 물건너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면도 보인다. <월간항공> 보도에 따르면 대통령 전용기 획득사업 포기는 이미 오래전에 결정된 일이며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협상이 결렬된 이후 정부 관계자는 “현 정부에서는 더 이상 대통령 전용기 구매사업을 추진하지 않을 것이다. 전용기 구매는 다음 정부의 몫이 됐다”고 말했다. 현 정부에서 새로운 대통령 전용기 도입을 결정한다고 해도 실제 전용기가 도입되는 시점은 2014년 정도. 이유도 명분도 없는 데다 막대한 예산이 집행되는 만큼 정부의 부담이 큰 사업이기 때문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임차비 등을 감안하면 오히려 경제적일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직 대통령들로서는 욕먹으면서까지 도입에 나설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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