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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도 ‘재스민혁명 향기’ 솔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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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정부 시위 막혔지만 “사회 불평등 해소” 민중의 소리 커져

중국에서도 혁명이 가능할까. 북아프리카 튀니지에서 촉발된 혁명의 열기가 중국 대륙까지 전달됐다. 2월 20일과 27일, 3월 6일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의 주요 도시에서 ‘재스민 시위’가 계획됐다. 중국 정부의 강력한 사전 차단으로 대규모로 시위가 퍼지진 못했지만 치솟는 물가, 커지는 빈부격차 등과 맞물려 ‘혁명’까지는 아니라도 ‘개혁’을 요구하는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꽃다발을 들고 가던 한 여성이 3월 6일 베이징 시단 쇼핑가에서 순찰하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꽃다발을 들고 가던 한 여성이 3월 6일 베이징 시단 쇼핑가에서 순찰하던 경찰의 불심검문을 받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72세의 리우밍시우는 농부였다. 어느날 지방 정부에서 보낸 수십명이 트럭을 몰고 찾아 왔다. 무장경찰도 상당수 포함됐다. 그들은 삽과 바리케이드를 들고 리우밍시우를 몰아내고 리우의 집을 헐어버렸다. 6개월이 지난 지금도 보상을 받지 못한 그는 아내와 아들, 일곱살 난 손녀와 함께 버려진 동네 의료원에서 식수도 없이 살고 있다. 이런 사례는 대도시인 베이징과 상하이 근처에서 최근 10년 동안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조사에 따르면 지방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시위의 65%가량이 바로 이런 강제철거와 그에 따른 보상이 부재하기 때문에 일어나고 있다.

인터넷 검열 등 시위 원천봉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월 7일 도농간의 격차를 보여주는 이런 갈등이 중국의 불평등 구조를 대표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택 구매 규제 등 강력한 대책에도 불구하고 집값은 지난해 13.6%의 상승률을 기록하며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5%에 가까운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서민의 생활을 옭죄고 있다. 10%를 넘는 경제성장률에도 불구하고 빈부격차는 점차 커지고 있고, 지도층 인사의 부정부패 사건은 연이어 터져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의 혁명을 본떠 소집된 ‘재스민 집회’는 중국 지도층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에 서버를 두고 운영되는 중국어 사이트 보쉰(博訊)에서 시작된 시위는 베이징 중심가인 왕푸징(王府井)을 시작으로 상하이, 광저우 등 주요 도시로 퍼져 나갔다. 1차 시위 당시 왕푸징 맥도널드 앞에는 한 젊은 남성이 모리화(茉莉花·재스민)를 상징하는 흰 꽃을 바닥에 내려놓다 연행됐고 산시, 랴오닝 등으로까지 퍼져 나간 2차 시위와 이어진 3차 시위도 공안당국의 원천봉쇄로 무산됐다.

하지만 원천봉쇄만으로는 이들을 막을 수 없었다. 누리꾼들은 인터넷에 지정된 거리를 산책하며 미소를 지어 보이는 이른바 ‘산보 시위’를 하자고 제안했고, 중국의 실리콘밸리라 불리는 베이징 중관춘에서는 학생들이 실제 산보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시위 전략도 진화하고 있다. ‘재스민’ ‘모리화’ 등 관련 검색어 검색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삼개대표(三個代表·공산당 창당이념 가운데 하나)’나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처럼 중국 공산당과 관련돼 있어 검열에 쉽게 노출되지 않는 단어를 암호로 정해 이를 피하는 전략도 구사됐다.

중국의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중동과 북아프리카에서처럼 혁명으로 이어지는 것은 현재로서는 쉽지 않아 보인다. 중동과 중국의 정치·경제 사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경제성장의 과실이 중동에 비해 일반 국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는 점이 큰 차이다. 빈부격차의 문제는 여전히 크지만 한 사람의 독재자가 수십년 동안 국가의 모든 것을 틀어쥐고 분배를 하지 않는 상황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높은 경제성장률을 바탕으로 중산층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컨설팅업체인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은 향후 10년 안에 연간 가계 소득이 6만 위안(약 1000만원) 이상인 소비자가 2020년까지 약 2억7000만명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수기동대 소속 경찰들이 3월 6일 베이징의 3차 시위장소로 지목된 왕푸징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특수기동대 소속 경찰들이 3월 6일 베이징의 3차 시위장소로 지목된 왕푸징 근처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베이징/AFP연합뉴스

중동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와 같은 소셜네트워킹 사이트가 시위의 구심점 역할을 해온 것과는 달리 중국에서는 이런 서비스의 접속이 불가능한 상태라는 점도 차이가 있다. 중동에서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이 아랍 각국의 청년들이 시위를 조직하는 방법 등을 공유하고 시위 상황을 실시간으로 퍼트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많은 회원을 보유하고 막대한 파급력을 가진 페이스북, 트위터는 중국에서 접속 자체가 불가능하다.

누리꾼들 ‘산보시위’ 제안
물론 중국판 트위터 시나닷컴 웨이보(微博)와 큐큐(QQ)의 미니 블로그 등 마이크로 블로깅 사이트와 외국에 서버를 둔 웹사이트 등을 통해 시위가 조직되고 시위 소식이 퍼져나가고 있지만 검열 등이 쉽기 때문에 통제가 가능하다. 실제 2차 시위가 소집된 2월 27일 중국 공안당국은 인터넷과 휴대폰 등을 통제했다. ‘재스민 혁명’ ‘시위’ 등의 단어를 비롯해 지난 1차 집회 때 현장에 나타났던 존 헌츠만 전 주중 미국 대사의 중국 이름 ‘훙보페이(洪博培)’도 검색이 안됐다. 최초 재스민 혁명을 촉구했던 인터넷 사이트 보쉰의 운영자인 웨이스(韋石)도 자신이 거대한 압력을 받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모리화라는 노래를 부르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인터넷에서 삭제됐다. 후 주석이 2006년 케냐를 방문했을 당시 나이로비의 공자학원을 방문했을 때 중국어를 배우는 학생들과 함께 모리화를 부르는 이 장면은 재스민 혁명을 연상시킨다는 이유로 삭제된 것이다.

외신기자에 대한 통제 역시 철저했다. 상당수는 3차 시위가 예정된 지난 6일 상하이의 집회 예정지인 평화극장 주변에서 중국 공안에 의해 연행돼 지하 벙커에 억류돼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중국 외교부와 공안부는 시위 현장 취재를 위해서는 사전 허가를 받으라고 요구하는 한편, 시위를 취재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각서에 서명하라고 요구받거나 이메일 계정을 해킹당하는 외국 기자들도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전했다.

사실 채찍과 진압만이 능사가 아니란 것은 중국 당국이 더 잘 알고 있는 듯하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지난 전인대에서 13년 동안 고수한 8% 성장 유지정책인 바오바(保八) 정책을 접고 목표 성장률을 낮췄다. 뿐만 아니라 원 총리는 도시실업률을 낮추고 물가통제 대책을 발표하는 등 민생생활 개선 방안도 보고했다. 5년 동안 4500만명에게 일자리를 마련하고, 도시 주민과 농촌 거주자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고성장 대신 부를 재분배하는 데 방점을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된 이번 결정은 중국 경제정책의 방향이 전환된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중동발 재스민 혁명과 직접적으로 연관을 짓는 것은 무리가 있겠지만 중국 지도부 입장에서는 성난 민심을 다독이고 사회 불평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억지로 꽃을 꺾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은근하게 퍼지는 향기까지 막을 수는 없다.

<이지선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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