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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찬 정치력, 아직은 글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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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과이익공유제’ ‘재·보선 출마’ 당 안팎서 견제

정치판에 학자 출신 정치인은 많다. 어떤 학자는 안착하지만 어떤 이는 살아남지 못하고 쓸쓸하게 퇴장하는 경우도 있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의 정치적 미래는 어떨까. 현재까지 정 위원장의 정치적 평가는 낮다. 논란이 되는 사회적 의제를 제기하는 능력은 있지만, 결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3월 2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초과이익공유제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3월 2일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이 기자간담회를 갖고 초과이익공유제 발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해명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내에서 정 위원장의 정치적인 공간은 별로 없다. 도와주는 계파도 없다. 친박계는 정 위원장의 행보에 거부감을 보인다. 당 중진들은 견제하는 모양새다. 그를 정치무대로 불러낸 청와대조차 힘을 실어주지 않는다. 남은 것은 자신의 정치력이지만, 이에 대한 의구심도 늘어나고 있다.

정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국무총리로 정치권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하지만 ‘세종시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퇴진했다. 이후 동반성장위원장으로 컴백했지만, 작심하고 내놓은 ‘초과이익공유제’는 재계와 정계 양쪽으로부터 공격받고 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과 정 위원장은 이익공유제를 두고 날선 언어를 주고받았다. 홍 최고위원이 “급진 좌파적 주장이다” “현행법에 맞지 않는다” 등으로 비판하자, 정 위원장은 “홍 최고위원이 뭘 아느냐” “민간 차원의 자율적인 문제”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들 사이에서 정 위원장의 이익공유제는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평가다.

‘세종시 총리’ 불명예 안고 물러나
재계는 아예 등을 돌린 모습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총대를 멨다. 3월 10일 열린 전경련 회장단 회의에 4년 만에 참석한 이 회장은 ‘초과이익공유제’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사회주의 용어인지 공산주의 용어인지 도무지 들어본 적이 없다” “(이익공유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긍정적이다를 떠나서 도대체가 경제학 책에서 배우지도 못했고 누가 만들어낸 말인지, 사회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자본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공산주의 국가에서 쓰는 말인지 모르겠다는 뜻이다”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청와대와 행정부도 정 위원장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은 “이익공유제를 기업과 기업 간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반대했고, 김동수 공정거래위원장 역시 “모든 것은 시장경제라는 틀 안에서 작동돼야 한다”면서 부정적인 뜻을 내비쳤다. 청와대는 “동반성장위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계의 인사로 구성된 민간기구로서 여기서 충분히 논의될 것”이라고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줬다.

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동반성장위원회를 방문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11일 오후 서울 여의도 동반성장위원회를 방문한 최중경 지식경제부 장관이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익공유제 과실은 오히려 홍준표 최고위원이 가져갔다는 말이 나온다. 3월 10일 홍 최고위원은 최고위원회에서 “한나라당 서민특위에서 제출한 대·중소기업 상생 법안을 통과시키기로 정부 당국자, 청와대와 어젯밤 늦게 정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워했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제 임태희 청와대 비서실장과 이 문제를 도입하기로 협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홍 최고위원 측은 “(3월) 9일 김동수 위원장이 홍 최고위원을 찾아왔다. (홍 최고위원이 위원장인) 서민특위안 중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법안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면서 “홍 최고위원은 정(운찬) 위원장의 이익공유제를 세게 비판하면서 ‘성동격서’(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에서 적을 친다는 뜻으로, 적을 유인하여 이쪽을 공격하는 체하다가 그 반대쪽을 치는 전술)격으로 서민정책특별위원회 안을 관철시킨 것이다. 정치판을 읽는 능력에서 정 위원장이 못 따라온 것”이라고 말했다.

분당 을 불출마 발언은 ‘몸값 높이기’
정운찬 위원장은 4·27 재·보궐 국회의원 선거 분당을 지역 출마에 대해 “(동반성장위원회 일 때문에) 보궐선거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 등 출마설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을 여러 번 내비쳤다. 하지만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분당을에 출마하게 될 것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다.

강원도지사 후보 엄기영 전 문화방송 사장과 김해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할 김태호 전 경남지사에 ‘정운찬 카드’까지 합쳐지면 한나라당은 재·보궐선거에서 강력한 후보군을 형성하게 된다. 분당을 출마를 선언한 강재섭 전 한나라당 대표는 한나라당 지도부의 거부감이 강하다.

한나라당 내의 상황이 이런데도 정 위원장이 불출마 발언을 하는 것은 ‘몸값’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출마하지 않겠다는 것은 자신의 값어치를 올리기 위한 것 아니겠나. 당 지도부도 강 전 대표와 정 위원장이 경선을 하도록 하겠지만, 정 위원장에게 어느 정도 유리하게 끌고 갈 가능성이 있다”면서 “강 전 대표에 대해서는 비토가 높다. 남은 카드는 정 위원장과 조(윤선) 의원인데, 한나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분당을을 초선 비례대표 의원에게 넘기겠나. 정 위원장이 출마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지도부가 분당을 후보 경선룰을 정 위원장에게 유리하게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정 위원장의 선택이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정 위원장이 분당을에 출마해서 당선되면 당내 입지는 180도 달라진다. 미래권력 박근혜 카드에 맞붙을 수 있는 친이계의 유력한 카드가 될 수 있다. 당내 지지세력이 별로 없는 정 위원장으로서는 분당을 출마를 통해 정치적 변곡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의 한 교수는 “정 위원장이 정치판에서 별다른 성과를 못내는 것이 학자 출신의 한계는 아니다. 교수가 정치권에 가서 성공한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 위원장의 개인적인 한계라는 생각을 한다”면서 “참여정부 시절 3불정책 폐지를 놓고 정부와 대립할 때 인지도를 높였는데, 당시 서울대 총장이라는 신분 때문에 그랬던 것 같다. 정치권에 들어간 이후 행보를 보면 정치력이 높은 사람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평가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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