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정규직 공론화 “싸움은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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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일 농성 홍익대 청소노동자 고용승계·임금인상 그 후…

2주가 지났다. 홍익대학교 문헌관에서 있었던 ‘49일간의 농성’의 흔적은 이제 없다. 1층 로비 게시판 한 구석에 “어머님들 힘내세요”란 낙서만이 남았다. 2월 19일 용역업체 측은 비정규직 노동조합 측과 고용승계 및 임금인상을 약속했고, 49일에 걸친 파업투쟁은 마무리됐다. 3월 2일 신입생들이 첫 등교한 홍익대의 풍경은 여느 대학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2월 20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49일 만에 용역업체와의 노사협상안에 합의하고 농성장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20일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이 49일 만에 용역업체와의 노사협상안에 합의하고 농성장을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학생들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을 알고 있었다. 캠퍼스를 오가는 학생들 중 이 사건을 아예 모르는 사람은 만나지 못했다. 하지만 이 일을 통해 대학 내의 비정규직 문제, 나아가 사회문제를 고민해보는 분위기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다. 총학생회 등 학내 단체가 붙인 대자보 한 장 없었다. 문헌관 앞에서 만난 새내기 여학생들은 “뉴스를 통해 사건은 알고 있지만, 막상 입학하니까 별 이야기 없더라”는 반응을 전했다. 진정으로 49일간의 투쟁이 남긴 것은 없는 걸까.

대학측 청소용역비 25.8% 인상
<주간경향> 914호 표지모델 청소노동자 노문희씨(62)를 다시 만났다. 노씨는 인문사회관 B동 경비 휴게실에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쉬고 있었다. 그는 싱글벙글 웃으며 기자를 반갑게 맞아줬다. “마침 기사가 나가자마자 문제가 잘 해결되어 다행이다”라며 그는 “나를 통해 비정규직 문제가 알려져서 기쁘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난 2주간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가 있었느냐는 질문에는 “일에 있어서는 크게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답했다. 5층짜리 건물을 2명이 모두 청소해야 하는 현실엔 변함이 없다. 신입생들이 오면서 오히려 일은 더 많아졌다고 했다.

물론 변화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항상 뻣뻣하게만 대하던 교직원들, 소장들의 태도가 확실히 부드러워졌다”는 노씨는 “무게만 잡던 소장들이 요새는 가끔 쓰레기 치우는 것도 도와준다”며 미소를 지었다. 많은 수는 아니지만, 예전엔 인사를 해도 본체만체했던 교수들과도 인사를 주고받는다고도 전했다.

퇴근시간도 1시간 빨라지고 임금이 올라서 좋지 않으냐고 물었다. “기분이 좋은 건 당연하죠. 하지만 지금의 근무시간이나 월급이 원래 법에 나온 것 아닌가요? 당연한 것을 좋아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픕니다. 그래도 결국엔 겨우내 희생한 보람이 있겠죠?” 홍익대 노동자들과 용역업체들의 합의사항에 의하면, 청소노동자들의 시급은 최저임금보다 약 100원이 높은 4450원이다. 

홍익대 측에 따르면, 학교 당국은 올해 새롭게 계약한 청소 용역회사에 전년 대비 25.8% 인상된 용역비를 지불했다. 그동안 홍익대가 지불한 용역비가 청소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데 턱없이 못미치는 수준이었다는 얘기다.

이번 사건에 대한 홍대 측의 입장은 두 달 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홍익대 사무처의 한 관계자는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에 상처를 많이 입었다”며 “용역회사가 협상 도중에 철수해버려 우리도 피해를 입었는데, 이런 말은 안 나오고 순전히 가해자인 것처럼 이야기됐다”는 입장을 전했다. 학교 측은 기존 성명서의 입장에서 변한 게 없었다. “노동조합 문제는 용역회사 측과 근로자 측이 알아서 하는 거죠. 우리가 탄압을 해서 좋을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우리가 법적 책임을 지는 사람들도 아닌데 가타부타 말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죠. 다만 학교 이미지 훼손, 업무방해 등에 대한 소송은 계속할 생각입니다.”

개강을 맞이한 홍익대생들이 캠퍼스를 걷고 있다. |백철 기자

개강을 맞이한 홍익대생들이 캠퍼스를 걷고 있다. |백철 기자

학교의 입장이 아닌 교직원으로서의 생각을 물어봤다. 이 관계자는 “교직원도 노조가 있다”며 개인생각임을 전제한 뒤 “그동안 서로의 입장이 달라 생긴 오해의 앙금이 없어지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회가 되면 청소원분들과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오해를 푸는 자리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근무지는 점거농성 당시 노동자들에게 점거됐던 문헌관 1층이다. 그래서인지 “고용승계는 관행적으로 보장되어 왔던 것”이라면서도 “사무처를 점거하는 건 좀 심했다”는 입장을 표했다.

비운동권을 표방하는 홍익대 총학생회에는 그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홍대 총학은 대자보에서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에 동참한 사람들을 ‘외부세력’으로 지칭, 논란을 빚은 바 있었다. 논란 당시 기자와 만났던 김용하 총학생회장은 “대자보의 주요 내용은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라며 억울함을 표하기도 했었다. 학교 당국보다 더 많은 비판의 말을 들어서일까. 총학에서 활동 중인 박성현씨는 새내기들이 이번 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견을 듣고 싶었다고 했다. “사실 이번 사건이 끝난 이후 새내기들의 반응을 듣고 싶어 지난 한 달간의 일을 요약한 팸플릿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눠줬습니다.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은 대체로 알고 있다는 반응이었지만, 특별한 의견을 들을 수 없어 아쉬웠죠.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다른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비운동권 학생 진보현안 관심 유도
총학보다 앞장서서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적극 지지해온 ‘홍대 서포터즈’ 사람들을 만났다. 서포터즈에서 활동하던 서희강씨(22)는 “서포터즈 사람들이 미대, 사범대 등 단과대학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이번 투쟁 관련 영상도 틀고 발언도 했다”면서도 “이 일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 등 진보적 현안에 관심을 갖는 학생들이 많이 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의 농성이 끝난 지 2주. 사회적인 큰 관심을 모은 사건이었지만, 아직까진 내부 학생사회의 분위기에는 큰 변화가 없어 보인다. 물론 당사자들은 상당히 변했다. 처음 ‘서포터즈’ 학생들이 노동조합 설립을 권유했을 당시의 청소노동자들은 하루 1시간의 휴식시간을 마음 편히 보내지도, 최저임금을 받지도 못했지만 큰 불만을 표하진 않았다. 투쟁을 통해 그들은 현실에 만족하기보다 스스로의 목소리로 자신들의 정당한 권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서포터즈’ 활동가 박상현씨는 서포터즈 활동을 통해 비운동권 분위기가 강한 홍익대 내에서 사회문제에 관심있는 학우들을 만난 것도 성과로 꼽았다. “투쟁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근무환경, 고소·고발건 등 문제점이 많죠. 3월 8일에 있을 고려대·연세대·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에도 참여하고, 이 투쟁을 계기로 비정규직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 생각입니다. 학우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고 싶어요.”

박상현씨와 ‘홍대 다락방’ 동아리실에 머물며 노동조합 전임자 일을 하고 있는 이숙희 분회장 역시 “농성은 끝났지만 투쟁은 이제 시작이다”라는 뜻을 밝혔다. “비조합원들도 조합에 대부분 가입했고, 인사하는 학생들도 늘어났어요. 학생들이 좀 더 비정규직 문제를 내 문제처럼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투쟁기금이 5000만원가량 되는데, 우리가 쓰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다른 청소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한 일에 모두 쓸 생각입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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