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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 저축은행 ‘공동계정 해법’ 명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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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속한 구조조정 비용 마련 정부안, 원인규명·부실책임 빠져

지난 2월 17일 영업정지가 내려진 부산2저축은행에 예금을 인출하기 위한 고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 연합뉴스

지난 2월 17일 영업정지가 내려진 부산2저축은행에 예금을 인출하기 위한 고객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 연합뉴스

일부 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여파로 인한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뱅크런)가 진정됐지만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다. 구조조정 재원마련 등 부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한 해결책이 제대로 마련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에는 105개의 저축은행이 있으며, 이 중 삼화저축은행 등 8개가 영업정지된 상태다. 정부는 영업정지된 8개 저축은행 구조조정과 후속작업에 5조원 정도의 재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 추가로 부실화된 저축은행이 나올 수 있다는 전망도 있어, 구조조정 재원이 정부 예측치보다 훨씬 많아질 수도 있다. 저축은행 부실의 주범은 PF(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 부실채권 때문이다. 저축은행 PF 부실채권의 정확한 규모는 아직도 파악되지 않고 있다.

예보기금 2조8천억 적자 공동부담
문제의 핵심은 저축은행 구조조정 자금을 어떤 방법으로 마련하느냐다. 이에 따라 이에 대한 문제가 2월 임시국회에서 여야간에 가장 첨예한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국회 관련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각 다른 해법을 제시하고 있어, 이 문제 처리를 놓고 물리적인 충돌까지 우려된다. 정부와 여당인 한나라당은 저축은행 구조조정 비용 마련을 위해 공동계정 도입을 골자로 하는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이번 국회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이지만, 민주당은 “이는 금융당국의 감독 실패 책임을 모면하려는 처사”라며 예금자보호법 개정안 처리를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 2월 23일 한나라당 간사인 이사철 의원이 대표발의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을 전체 회의에 상정해 논의에 들어갔다. 이 의원은 법안 제안서에서 “현행 예금보호기금의 경우 지나치게 엄격한 권역간 계정구분으로 인해 특정 업권에서 대규모 부실이 발생할 경우 금융권 공동으로 신속하게 대응하기 어렵다”며 “이를 개선하고자 예금보험기금 내에 공동계정을 신설하고자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의원이 국회에 제출한 예금자보호법 개정안은 사실상 정부안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들처럼 예금보험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예금보험제도란 금융기관이 경영부실이나 파산 등으로 예금을 지급할 수 없을 때 제3자인 예금보험기관이 대신해 예금을 지급해주는 제도다. 즉 은행·보험사 등 모든 금융기관은 예금보험에 가입해 있으며,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보험금을 정기적으로 예금보험기금에 납입하고 있다. 이 보험료는 예금자의 수익인 이자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예금자는 예금을 찾을 때 자기도 모르게 이자에서 예금 보험료를 뗀 금액을 받는 것이다.

예금보험기금은 업권별로 따로 따로 기금을 보유하고 있다. 현재는 ▲은행 ▲금투(투자매매업자·투자중개업자) ▲생보(생명보험) ▲손보(손해보험) ▲종금(종합금융) ▲저축(상호저축은행) 등 6개 계정으로 분리해서 운영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은행은 4조7000억원, 금투는 2200억원, 생보는 3조1000억원, 손보는 6900억원, 종금은 230억원이 적립돼 있으며, 저축은행은 2조8000억원 적자상태다. 이같이 각 계정을 별도로 분리해서 예금보험기금을 운영해오는 것은 업권별로 칸막이를 확실히 쳐둠으로써 한 쪽의 부실로 인해 다른 업권의 보험기금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대주주 책임회피·정책실패 ‘모르쇠’
하지만 정부·여당안은 저축은행 구조조정을 위해 이 칸막이를 허물려 하고 있다. 즉 정부·여당안은 예보기금에 있는 기존의 업권별 계정과는 별도로 공동계정을 설치하고, 공동계정의 기금을 저축은행처럼 업권별 계정에서 부담 능력을 초과한 부실이 발생할 경우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각 업권에서는 예금보험료를 절반은 자기 계정에, 나머지 50%는 공동계정에 적립해 이 재원으로 이번 저축은행 사태의 부실을 해결하는 것이다. 저축은행 계정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2조8000여억원 적자상태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2월 23일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김정근기자

현재 저축은행을 관리·감독하는 금융위는 공동계정을 만들기 위해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와 관련,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국회에서 “이번에 공동계정을 마련하면 저축은행 구조조정이라는 확실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다”며 “현재까지의 부실 문제는 공동계정이 도입되면 충분히 정리할 수 있는 범위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공동계정 운영기간에 대해 “돈을 모으는 것은 한시적으로 하더라도 공동계정 운영은 항구적으로 하길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금융위는 지난 2월 9일 한나라당과의 당정협의에서도 공동계정 신설의 당위성을 의원들에게 설명했다. 금융위의 논거는 우선 금융권 부실은 납세자 부담 이전에 금융권에서 자체적으로 해소해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금융위는 이 같은 예로 지난 G20서울 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국제적으로도 정리비용 손실의 납세자 전가를 금지하는 원칙을 확립했다는 ‘G20 합의’ 사항을 들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위기 시에는 예금보험제도가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했지만 지금은 예보기금이 충분해 기금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논리도 덧붙였다.

하지만 민주당은 정부·여당의 공동계정 설립 추진에 대해 “기존 금융권에서 조성한 예보기금으로 저축은행에 돌려막기하고 있다”며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민주당이 반대하는 이유는 첫째, 공동계정이 ‘마이너스 통장화’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동계정을 도입하면 10조원 정도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공동계정으로 들어오는 연간 보험료 수입은 8000여억원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정부가 결국 8000여억원이 외부 차입 또는 예금보험채권 발행을 위한 이자로 쓰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정부가 주장한 10조원은 공동계정 기금이 아니라 외부 차입금이 되는 것이다. 즉 정부는 10조원을 외부에서 조달하기 위해 공동계정으로 들어오는 8000억원을 이자로 지불할 것으로 민주당은 보고 있다.

둘째, 공동계정 설립이 자칫 금융권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위는 공동계정 도입을 놓고 협의하는 과정에서 공동계정이 도입되면 각 계정의 목표 규모(목표 기금제)를 절반으로 줄여주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표 기금제는 사전에 기금 적립 목표를 설정하고, 적립수준이 목표 규모에 도달할 경우 보험료를 감면해주는 제도다. 이는 현재 저축은행 부실로 인해 공동계정 신설을 통해 자금을 가져다 쓸 수 있지만 다른 업권에서도 동시다발적으로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속수무책이 될 수밖에 없다. 이미 곳간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즉 금융권의 리스크를 줄이겠다고 도입한 공동계정이 오히려 리스크를 확대시킬 수도 있다는 것.

[정치]부실 저축은행 ‘공동계정 해법’ 명암

셋째, 부실 업권의 도덕적 해이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특정 업권의 부실에 대해 금융권 전체가 공동으로 책임진다는 것은 도덕적 해이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정무위 우제창 의원은 “공동계정이 도입되면 금융사들은 리스크는 관리하지 않고 경영성과에만 집착할 것”이라며 “이럴 경우 당연히 도덕적으로 해이되면서 거기서 오는 손실은 모두 예금자의 몫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넷째, 공동계정의 부실은 결국 예금자의 부담으로 갈 수밖에 없다. 여권 일각에서는 “서민 보호를 위해 공동계정 도입이 시급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적자금이 국민 혈세로 조성되듯이, 예금보험기금도 예금자 부담인 것은 마찬가지다. 예금자의 이자에서 예금보험료가 나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려면 국회 승인과정에서 금융당국에 대한 책임문제가 제기되는 등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이 쏟아질 수 있으니까 손쉬운 공동계정 카드를 꺼내들지 않았나 하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민주당 “공적자금 투입 공론화 처리”
민주당 정무위 이성남 의원은 “공동계정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나라 금융시장 안정의 근간인 예금보험제도를 송두리째 뒤흔드는 것”이라며 “이런 문제일수록 국회가 충실히 논의해야 하는데, 무턱대고 정부·여당이 이 법안을 2월 국회에서 통과시키려 하면 지난해 12월 예산안 날치기 때처럼 후폭풍이 거셀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정부가 부실 저축은행에 공적자금을 투입하기보다는 예보기금의 공동계정 제도를 신설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김효연 입법조사관(변호사)은 “공동계정 기금을 저축은행의 경영개선 자금으로 사용하는 것은 다른 업권과의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며 “그리고 업권간 상품의 리스크가 차이가 큰 상태에서 예금보험료 중 일부가 공동계정으로 유입되는 것 자체만으로 시스템 리스크에 노출된다는 맹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민주당에서는 공동계정보다는 공적자금 투입이 저축은행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와 같은 저축은행 부실 문제를 겪고 있는 스페인의 경우도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민주당은 공적자금을 투입할 경우 반드시 금융당국은 이번 사태의 원인에 대해 소상히 밝히고, 감독관청인 금융당국의 책임을 물어야 하며, 관련 저축은행 대주주의 책임도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공적자금 투입에 반대하고 있다. 김석동 위원장은 이에 대해 “지금 단계에서는 금융권 내에서 감당할 수 있는 것을 왜 국민에게 전가시켜야 하느냐는 게 제 생각”이라며 “현 단계에서는 불안을 종식시키는 것이 선결 과제”라고 부정적 견해를 피력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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