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현대차 비정규직 해결 ‘지지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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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기환송심 판결에도 사측 변화 없어 사태진전 기미 안 보여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또 다시 파업에 돌입할 수 있을 것인가.

지난 2월 25일 울산 현대차 공장 사내하청 노동자 80여명이 상경했다. 서초구 양재동 현대차 본사 앞에서 상경투쟁을 하기 위해서다. 이번 상경투쟁에는 울산공장만이 아니라 아산공장과 전주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참여했다. 이웅화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비상대책위원장은 “3월 5일까지 노숙투쟁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8월 12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 보고대회에 참석, 조합원 가입 동의서를 쓰고 있다. 이보다 앞서 같은해 7월 대법원은 ‘사용기간 2년이 지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금속노조 제공

지난해 8월 12일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대법원 판결 보고대회에 참석, 조합원 가입 동의서를 쓰고 있다. 이보다 앞서 같은해 7월 대법원은 ‘사용기간 2년이 지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다. |금속노조 제공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지난해 11월 1공장을 점거해 25일 동안 농성을 벌인 바 있다. 이들이 다시 투쟁 각오를 다진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지난 2월 10일 서울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 판결이다.

서울고법 행정3부(이대경 부장판사)는 판결에서 원고 최병승씨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 2002년 3월 13일 현대차 사내하청 기업에 입사해 울산공장에서 2년 넘게 일한 최씨는 현대차가 직접 고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판결 요지다.

노동자 상경 노숙투쟁 선언
이 재판의 이력은 꽤 길다. 최씨는 2005년 2월 2일 해고됐다. 그는 중앙노동위원회(중노위)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했지만 중노위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최씨는 법정 소송으로 대응했다. 최씨는 연달아 졌다. 2007년 1심 소송에서는 서울행정법원이 소송을 기각했다. 2008년 서울고등법원 항소심 재판정도 항소를 기각했다. 그러나 지난해 7월 대법원에서 상황이 반전됐다. 

대법원은 “2년 이상 근무한 현대자동차 하도급업체 근로자들은 파견근로자로 봐야 하며, 파견법에 따라 현대차 정규직 근로자로 봐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리고, 고등법원에서 다시 판단하도록 되돌려보냈다.

2월 10일 고등법원 판결은 지난해 7월 대법원 판결과 같았다. 결국 고법 판결은 2년 이상 일한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파견노동자로 간주하고 파견법에 따라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고법 판결은 사실상 이같은 결과가 예견됐던 것이다. 권영국 변호사(민변 노동위원장)는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공장 점거농성을 할 당시 <주간경향>과의 전화 통화에서 “파기환송은 하급심에서 대법원 판단을 존중해 다시 판단하라는 뜻”이라며 “하급심 재판부는 당해 사건에서는 상고심 판결에 구속된다. 대법원과 다른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구조”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차의 대응은 지난해 대법원 판결이 나온 이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해 11월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한 것은 대법원 판결이 나왔음에도 사측이 대화나 협상에 적극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사측의 논리는 법적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으므로 하청노동자들의 노사협상 당사자는 여전히 해당 하청기업이지 현대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 24일 현대차 관계자는 전화 통화에서 “농성자들은 사내하청 근로자들로 현대차는 근로계약 당사자가 아니다”라며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고는 하지만 파기환송되어 판결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와야만 협상을 하든 대화를 하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대차는 고법 판결 직후 대법원에 상고하고 헌법소원도 내겠다고 밝혔다. 현대차는 “이번 판결은 원고 1인에 대한 판결이므로 울산·아산·전주 등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동자 전부에게 일괄적으로 적용할 수 없다”는 입장도 덧붙였다. 정작 소송 당사자인 최병승씨는 점거농성을 주도했다는 혐의로 경찰 수배자 명단에 올라 쫓기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이 진행되던 지난해 11월 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족들이 농성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려다 가로막히자 절규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차 울산공장 점거농성이 진행되던 지난해 11월 22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농성 중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가족들이 농성자들에게 음식물을 제공하려다 가로막히자 절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경투쟁의 두 번째 이유는 노동자들이 점거농성을 푼 이후 현대차와의 협상에 아무런 진전이 없었기 때문이다.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 지회는 지난해 12월 9일 점거농성을 중단한 후 민노총 금속노조 및 현대차지부와 함께 현대차와 사내하청 대표들을 상대로 6차례 협상을 벌였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었다. 송성훈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 지회장은 “사측은 울산은 물론이고 아산공장 노조원들에게도 징계를 내릴 방침”이라며 “이번 상경투쟁은 이에 항의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공식적으로 2차 파업을 준비한다고 선언한 상태다. 상경투쟁이 지난해 점거농성과 같은 전면 파업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 될 수 있을까. 현대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노조 소속의 한 노조원은 “전면 파업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점거농성 해제 후 사측과 교섭 과정을 거치면서 노조원들의 조직력이 떨어졌고, 철조망을 설치하거나 각 공장의 시건장치를 강화하는 등 사측의 준비도 만만치 않다는 게 그 이유다.

노조는 ‘조합비 유용’으로 내홍
실제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최근 심각한 내홍을 겪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2월 7일 대의원대회에서 2차 파업을 결의했다. 2차 파업 결의 직후 이상수 현대차 비정규직지회장은 2월 9일, 조계사에서 단식농성을 시작하면서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즈음 울산공장 비정규직지회 지도부가 공금을 유용하고 농성 중에는 사측 차량을 타고 공장 밖으로 나갔다 왔다는 의혹을 제기하는 글이 금속노조 및 비정규직지회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노조가 들썩이기 시작했다. 결국 2월 21일 현대차 비정규직지회는 게시판을 통해 “금속노조에 특별회계 감사를 요청하고 (23일)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해 ‘조합비 유용건에 대한 후속대책’을 논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당장은 도덕적인 지탄을 받을 수 있지만 “2차 파업의 정당성과 승리를 위해서는 썩은 부위를 자르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2월 23일 열린 임시대의원대회에서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지도부는 모두 사퇴하고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다. 이번 상경투쟁을 끌고나가는 동력은 비대위다.

현대차 내부에서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답보상태다. 그러나 현대차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한 대법원과 고등법원의 판결은 사내하청을 통한 간접고용 방식을 취하고 있는 다른 사업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포스코 광양공장이 이런 경우다. 현재 포스코 광양공장에는 1만여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일하고 있다. 그러나 포스코의 경우 정규직 노조원의 숫자가 20명도 되지 않아, 현대차처럼 정규직 노조와의 연대는 기대하기 어렵다. 이들은 그래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김재진 민노총 전남본부 조직국장은 “포스코 광양공장은 파업을 조직할 힘이 없다. 현대차 판결에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판결이 나온 만큼 소송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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