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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호처럼 소통하고 이승엽처럼 훈련하고 오릭스처럼 관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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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프로야구, 중하위팀 버펄로스 올 시즌 돌풍 기대

박찬호(38)와 이승엽(35)이 일본프로야구 오릭스 버펄로스에서 훈련을 시작한 지 3주가 흘렀다. 오릭스는 퍼시픽리그 6팀 중 2009년 꼴찌, 지난해 5위에 그친 중하위권 팀이다. 작년 퍼시픽리그 홈런왕 T-오카다와 다승왕 가네코 치히로가 각각 23살, 28살일 만큼 젊은 팀이기도 하다.

그런 오릭스에 메이저리그 아시아 최다승(124승) 경력을 갖고 있는 박찬호와 단일 시즌 아시아 홈런 신기록(56개)을 보유한 이승엽 등 한국의 두 베테랑이 합류했다.

도약을 다짐하는 중견기업에 미국 명문 MBA를 졸업하고 글로벌 기업에서 다양한 경력을 갖춘 인재 두 명이 입사했다고 상상해보자.

한국 거물스타 2인 구단과 찰떡호흡
기업 입장에선 유능한 사원들을 확보해 기대가 크지만 과제도 만만치 않다. 특별한 이들이 젊고 평범한 동료 사원들과 어떻게 어울릴 것인가 하는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영자 입장에선 이들이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투·타에서 큰 차이로 팀내 연봉 1위를 차지한 박찬호(약 25억원)와 이승엽(약 19억원)의 오릭스행이 이와 비슷한 그림이다.
오릭스 코칭스태프와 선수들도 이런 걱정을 안고 2월 1일 스프링캠프부터 박찬호, 이승엽과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3주가 지나면서 이런 생각은 기우였다는 게 드러나고 있다. 박찬호는 자신을 낮추는 소통법으로 선수단에 감동을 선사했다. 이승엽은 철저한 준비와 혹독한 연습량으로 다른 선수들의 모범이 되고 있다. 구단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야구에 전념하도록 배려하는 중이다. 박찬호와 이승엽, 그리고 오릭스의 궁합은 일단 잘 들어맞고 있다.

2월 2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오릭스 버펄로스 전지훈련 둘째날 박찬호가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2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오릭스 버펄로스 전지훈련 둘째날 박찬호가 불펜 피칭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7일 오릭스 스프링캠프 장소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 시민구장. 불펜 피칭을 위해 박찬호가 문을 열고 입장했다. 그는 투수판을 고른 뒤 자신의 볼을 받을 포수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리고는 볼 70개를 던지고 포수에게 다시 허리를 굽혔다.

1994년 21살의 박찬호가 LA다저스 마운드에 처음 섰을 때 했던 인사 그대로다. 그의 예절 앞에 노련한 메이저리거의 콧대는 찾을 수 없다. 일본 무대 데뷔를 앞둔 박찬호만 있다. 오릭스에서 한국 관련 일을 담당하고 있는 나카무라 준 과장은 “예의가 바르고 자신을 낮출 줄 아는 사람이다. 대선수라 까다로울 것 같다는 선입견은 그가 고개 숙이는 모습을 본 순간 사라졌다”고 말했다.

겸손 솔선 박찬호·준비 철저 이승엽
그는 “내 명성이 오히려 팀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특별 대우는 사양한다. 오릭스에서의 첫 과제는 동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아닌 ‘오릭스 투수 박찬호’를 강조하며 문턱을 낮춘 것이다.

단순히 인사로 끝나지 않는다. 오릭스 투수들은 매일 수비 연습을 하는데 연습 뒤 가장 먼저 밀대를 잡고 지저분해진 마운드 주변을 정리하는 이가 바로 박찬호다. 그는 스트레칭 시간에 일본인 선수들이나 다른 용병 옆에 누워 대화의 시간을 늘린다. 포크볼이나 너클커브를 배우기 위해 나이 어린 일본 투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것 역시 소통을 위한 박찬호의 방법이다.

오릭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은 “박찬호가 밀대 잡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은 젊은 선수들에게 팀워크의 의미를 가르쳐준다”며 감동을 표시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표현하는 박찬호식 소통법이 오릭스를 바꾸고 있다는 뜻이다.

“T-오카다보다 더 많은 홈런이 예상된다.” 오카다 감독은 한국 취재진을 볼 때마다 이승엽을 이렇게 칭찬했다. T-오카다는 작년 홈런 33개로 퍼시픽리그 홈런왕을 거머쥔 오릭스 붙박이 4번 타자. 그러나 오카다 감독은 6번 타자로 점찍은 이승엽의 홈런왕 가능성을 내심 더 높게 보고 있다.

덕장 오카다 감독·지한파 코치 배려
오카다 감독은 2004년부터 5년간 센트럴리그 한신의 사령탑으로 일했다. 2005년 일본시리즈와 2008년 센트럴리그 1위 쟁탈을 위한 막판 경쟁에서 이승엽은 맹활약하며 오카다 감독을 울렸다. 그때의 스윙과 컨디션을 알고 있는 오카다 감독은 현재의 이승엽이 제2의 전성기를 열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부활을 위한 이승엽의 철저한 준비와 혹독한 훈련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2월 1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오릭스 버펄로스 전지훈련 첫날 이승엽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월 1일 일본 오키나와현 미야코지마시 시민구장에서 열린 오릭스 버펄로스 전지훈련 첫날 이승엽이 타격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3년간 요미우리 2군을 맴돈 이승엽은 지난해 12월 오릭스 입단을 확정지은 뒤 곧바로 국내에서 연습에 돌입, 일찌감치 몸을 만들었다. 그리고 2월 미야코지마 캠프에서 하루 7시간에 가까운 단내나는 강훈을 소화하고 있다. 프로 17년차인 이승엽 스스로 “이렇게 많은 훈련은 처음”이라고 고백할 정도다.

그렇다고 볼을 많이 치는 데만 집중하는 것은 아니다. 이승엽은 잘 치기 위한 자세 교정에도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는 캠프 초반에 상체를 뒤로 젖히고 하체를 앞으로 내밀어 볼을 끝까지 보고 밀어치는 연습에 주력했다. 또 예년보다 가벼운 900g짜리 배트로 시즌에 임할 계획이다. 전성기 실력을 찾기 위한 이승엽의 연구와 몸부림인 셈이다.

오카다 감독은 그런 이승엽을 12살 아래 T-오카다와 같은 타격조에 붙여 선의의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오카다 감독은 “효과가 좋다. T-오카다가 이승엽에게 무언의 자극을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찬호가 소통으로 오릭스에 변화를 가져왔다면 이승엽은 훈련을 통해 오릭스를 신선하게 바꾸고 있다.
우수한 사원의 노력이 전부는 아니다. 영입한 기업에서도 이들을 세심하게 관리하고 편하게 일하도록 만들어줘야 한다.

이승엽은 오릭스에서 훈련을 시작한 뒤 “몇 년 머무른 것처럼 편안하다. 고된 훈련도 즐겁다”고 말했다. 박찬호도 “부담보다 일본에서 어떤 야구를 할까라는 기대가 앞선다”고 했다.

일본에서 ‘덕장’으로 유명한 오카다 감독은 미야코지마로 들어가기 직전 박찬호와 이승엽을 함께 불러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가벼운 얘기로 자신의 지도 스타일에 낯선 두 한국인의 마음을 편하게 유도했다. 오릭스는 올해 박찬호에게 10승과 180이닝 이상, 이승엽에게 30홈런과 90타점 이상을 기대하고 있다. 몇 년간 부진했던 이들에겐 만만한 목표가 아니다. 그런 상황을 아는 오카다 감독은 부담을 주기보다 이들과 친밀함을 쌓고 신뢰를 보낸 것이다.

여기에 오릭스 내 ‘지한파’의 존재도 두 한국인에게 힘이 되고 있다. 오릭스는 한화와 SK에서 각각 코치로 재직했던 다카시로 노부히로 수석코치와 쇼다 고조 타격코치를 두고 있다. 한국을 경험한 두 코치만큼 박찬호와 이승엽의 생각과 행동을 이해하는 이들도 없다. 두 코치는 “사적인 문제도 좋다. 어려울 때면 언제든 찾아오라”며 박찬호와 이승엽을 격려했다. 차갑기 그지 없는 일본프로야구 분위기를 잊게 하고 한국에서 야구하듯 편안한 환경을 만드는 데 오릭스는 전력을 쏟고 있다.

<일본 미야코지마│김현기 스포츠칸 기자 hyun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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