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전 속 서울과 시골의 양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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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령 중심이냐, 춘향 중심이냐’에 따라 미묘한 차이

어느 나라든 서울과 시골의 격차는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그 격차가 심각하게 느껴지는 나라는 많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의 서울이 조선시대 이후 오랫동안 한 나라의 중심지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유득공 같은 학자가 지은 <이십일도회고시>에서 보듯 우리나라에는 경주, 부여, 평양, 철원, 개성, 김해, 고령 등등 여러 나라의 도읍이 있었지만, 중앙집권제가 구현된 조선시대 이후 왕년의 어떤 도읍도 서울에 필적할 수는 없었고, 정치의 으뜸인 서울을 벗어난 모든 곳은 서울의 풍향을 바라보는 시골이 되었다.

동경학생예술좌가 일본 쓰기지소극장에서 공연 했던 ‘춘향전’(1937). 왼쪽부터 김동원.박노경.주경은.

동경학생예술좌가 일본 쓰기지소극장에서 공연 했던 ‘춘향전’(1937). 왼쪽부터 김동원.박노경.주경은.

시골판은 성춘향에 대한 일관성
조선 팔도는 간단히 말해 중외(中外) 또는 경향(京鄕)이라 일컬어질 정도로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 서울과 시골의 두 극점으로 구성되어 버렸다. 더욱이 조선후기 이래 우리 역사의 흐름에서 서울과 시골 사이의 양극화는 점차 문명적인 이질감을 띠게 되었다. 서울은 세상 물정에 밝은 서울 깍쟁이가 사는 곳이 되었고, 시골은 세상 물정 어두운 시골뜨기가 사는 곳이 되었다. 서울은 중절모에 개화장을 하고 있는 서울 신사가 사는 곳이 되었고, 시골은 상투를 틀고 장죽을 물고 있는 시골 양반이 사는 곳이 되었다. 오늘날의 경·향 풍경은 이와 또 다르지만 양극화 문제는 더욱 깊어만 가고 있다.

이처럼 서울과 시골의 양극화 문제에서 역사를 돌아볼 때 흥미있는 존재가 춘향전이다. 춘향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이고, 판소리는 물론 소설, 드라마, 영화로 계속해서 향유되고 있는 우리나라 최고의 국민문학이다. 

춘향전은 방각본, 즉 상업적 출판물이었다. 서울, 안성, 전주 등을 중심으로 방각이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경판(서울판)과 완판(전주판)을 중심으로 많은 이본이 있지만, 춘향이 사랑을 맹세한 이도령과의 언약을 굳게 지켜 고을 사또로 부임한 변학도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고 옥에 갇혔다가 이도령이 어사 출두하여 춘향을 구해낸다는 줄거리에는 변함이 없다. 이러한 줄거리에 기초하여 춘향전의 역사적 성격에 대해서는 봉건사회 해체의 시각에서 이도령이 상징하는 양심적인 신흥 양반과 춘향이 상징하는 민중이 계급적으로 연대하여 변학도가 대표하는 봉건적인 보수 양반을 물리친다는 해석도 제기된 바 있다.

동명영화사의 ‘춘향전’ |경향신문

동명영화사의 ‘춘향전’ |경향신문

그런데, 춘향전은 줄거리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시선을 중심으로 읽을 수도 있다. 줄거리야 춘향전이 독자에게 던지는 기본적인 메시지이고 이본마다 별 차이가 없는 것이지만, 디테일한 장면에서 감지되는 시선은 이본마다 미묘한 차이가 드러나고 있다. 특히 경판과 완판 사이에는 춘향전을 이도령 중심으로 읽느냐 또는 춘향 중심으로 읽느냐는 미묘한 시선 차이가 느껴진다. 이도령 중심으로 춘향전을 읽는 서울의 마음과 춘향 중심으로 춘향전을 읽는 시골의 마음 차이다. 서울과 시골의 정치사회적인 양극화 문제가 똑같이 고전문학을 향유하는 방식에 있어서 서울의 마음과 시골의 마음으로 문화적으로 갈라지는 양상을 초래하고 있었던 것이다.

작품의 주인공인 춘향에 대해 경판과 완판의 마음이 서로 어떻게 달랐는지 보도록 하자. 춘향의 성씨는 경판에서는 김씨, 안씨, 성씨 등 일관성이 없지만 완판에서는 일관성 있게 성춘향의 통일성을 부여하고 있다. 어차피 춘향은 기생이기 때문에 성씨가 어찌됐든 큰 관심이 없다는 것이 경판의 감각이라면 완판은 춘향을 중시하는 입장에서 춘향의 성씨에 일관성을 부여하고 경우에 따라 춘향을 성천총의 서녀 또는 성참판의 서녀로까지 신분을 격상시켜 주었다.

경판과 완판은 춘향의 신분에 대한 감각이 서로 다를 뿐만 아니라 춘향의 열녀됨에 대한 감각도 서로 달랐다. 이도령이 어사 출두하여 춘향을 구출한 다음 서울에 돌아와 임금에게 복명하는 자리에서 자초지종을 말하자 거의 모든 경판에서는 임금이 이도령의 말을 듣고 천한 기생인데 수절하였다고 춘향을 칭찬한 다음 정렬부인으로 봉하였다는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반면, 완판에서는 단지 임금이 기뻐해서 정렬부인으로 봉하였다고 하거나 아예 상황 설정 자체를 빠뜨렸고, 경판과 같이 임금의 입을 통해 천한 기생으로 수절 운운하는 법이 없었다.

완판은 경판에 비해 춘향의 열녀됨이 민중적으로 알려져 있음을 보이려 했다. 춘향이 옥중에 갇혀 꿈을 꾼 다음 지나가는 허판수에게 해몽을 청하자 허판수가 해몽에 앞서 산통을 흔들고 축문을 외우는 장면이 있는데, 여기서 완판은 춘향을 열녀 춘향이 또는 열녀 성춘향이라고 호칭하였다. 반면 경판에는 이런 호칭이 없었다. 허판수와 같은 하층의 입을 통해 춘향의 열녀됨을 구현하는 데에는 무관심했던 것이다.

서울판은 이도령 의욕 부각시켜

고전 '춘향전' 의 배경지인 전북남원 광한루. |경향신문

고전 '춘향전' 의 배경지인 전북남원 광한루. |경향신문

한편 춘향과 더불어 춘향전의 두 주인공의 하나인 이도령에 대해서도 경판과 완판은 미묘한 시각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완판이 이도령을 민중적인 해학으로 희화화하고 있음은 유명한 사실이지만 이도령이 과거에 급제한 뒤 암행어사가 되기 위해 임금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적극적으로 암행어사가 되기를 자청하는 경판의 설정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였다. 경판은 왕화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탐관오리가 많아 백성의 원망이 하늘에 올랐다는 식으로 이도령의 의욕을 묘사하였다. 반면, 완판은 이도령의 발언 수위를 낮추거나 삭제함으로써 임금의 권위가 손상되지 않도록 주의하였다.

춘향전의 작중 인물인 춘향과 이도령은 각각 시골과 서울의 마음에서 보았을 때 더 잘 몰입할 수 있는 인물, 어떻게 보면 시골과 서울의 상징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경판은 춘향의 신분을 기생으로 설정하였고 춘향의 열녀됨의 실제 내용이 천한 기생의 수절이라 보았다. 모든 경판은 작품의 시작을 춘향이 아니라 이도령의 소개에서 시작하였다. 이것은 춘향전에 대한 전통적인 감각이었으며 서울의 마음이었다. 반면, 완판은 춘향전의 전통적인 감각에 수정을 가한 시골의 마음이었다. 완판의 문학적 상상력은 이도령의 독주를 선호하지 않았으며 춘향의 승리를 기원하였다. 완판에서 이도령이 희화화되고 춘향의 열녀됨이 강조되는 것은 이도령과 춘향, 곧 서울과 시골의 격차를 줄이고 양자의 대등한 관계를 정립하려는 문학적 감수성의 발로였다.

춘향전의 시대는 민란의 시대였다. 서울과 시골의 정치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새로운 정의가 수립되기를 열망하는 시골 사람들의 감수성이 타오르던 시대였다. 이 시대에 시골 사람들은 어떻게 춘향에게 몰입하고 있었을까? 민란의 시대에 시골의 마음으로 읽는 춘향은 시대의 불의와 맞싸워 정의를 쟁취한 시골 영웅이었으리라.

노관범<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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