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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오너 3세들 ‘전진 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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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연말인사 특징, 차기총수 보좌 위해 임원진 세대교체

2011년엔 그동안 그룹 총수인 아버지의 우산 밑에 있던 재벌 2·3세의 성적표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연말 각 그룹의 인사에서 오너 일가가 대표이사 등 경영 일선에 전진배치됐기 때문이다. 각 그룹은 이를 위해 임원진의 세대교체도 단행했다. 30·40대 재벌 2·3세를 위한 40·50대 임원 발탁이다. ‘총수 형제·자녀 전진배치’와 ‘세대교체’가 2010년 그룹 연말 인사의 특징인 셈이다.

지난 연말 인사에서 경영 전면에 나선 재벌 2·3세들. 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 아래 왼쪽부터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부회장,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

지난 연말 인사에서 경영 전면에 나선 재벌 2·3세들. 위 왼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사장,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부사장. 아래 왼쪽부터 최재원 SK그룹 수석 부회장,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부회장, 장세욱 유니온스틸 사장.

재계 안팎에서는 재벌 2·3세의 책임경영체제에 대한 평가가 엇갈린다. 글로벌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기 위한 인사라는 평가와 오너 일가의 경영권 세습이라는 비판적 시각이 그것이다. 2011년 시험대에 오른 그들의 활동이 주목되는 이유다.

총수 형제·자녀들 경영 일선 전면에
지난 연말 인사의 가장 큰 화제는 3세 경영체제 개막이다. 삼성의 경우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장남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전무가 각각 사장으로 승진했고 차녀인 이서현 제일모직·제일기획 전무도 부사장으로 승진했다. 대림그룹도 오너 3세인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 부사장을 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대한전선은 고 설원량 회장의 장남인 설윤석 부사장(30)을 부회장으로 승진시키면서 재계 최연소 부회장 타이틀을 달았다.

올 연말 재계 인사의 주인공은 단연 삼성그룹의 3세들이다. 이들은 그룹 경영의 전면에 나서면서 3세 경영의 본격적인 출범을 알렸다. 1년 만에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한 이재용 사장의 표면상 역할은 부사장 때와 동일하게 COO(최고운영책임자)지만, 보폭은 삼성전자뿐 아니라 그룹 전체로 크게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부진 사장의 승진은 연말 재계 인사 중 가장 파격적이다. 2009년 1월 전무로 승진한 뒤, 2년이 채 못 돼서 두 단계를 건너뛴 것. 게다가 호텔신라의 대표이사직까지 자리가 올라갔고, 삼성에버랜드 경영전략담당 사장과 삼성물산 상사부문 고문 등도 함께 맡아 그룹 내 역할이 상당히 커졌다. 재계 안팎에서는 이재용 사장이 향후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을 것이란 데 이견이 없지만 이부진 사장의 ‘몫’ 또한 커질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은 이재용 사장이 25.1%로, 8.37%인 이부진 사장보다 높다.

패션과 디자인에 감각이 높다는 평을 듣는 이서현 부사장도 존재감을 높였다. 재계에서는 향후 이재용 사장이 전자와 금융 계열사, 이부진 사장이 서비스와 유통·건설 계열사, 이서현 부사장이 패션과 광고 계열사 등을 맡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대림그룹도 3세 경영을 표방했다. 고 이재준 대림산업 창업주의 손자인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부사장을 5년 만에 부회장으로 승진시킨 것. 이 부사장은 이준용 명예회장의 3남2녀 중 장남으로, 전문경영인인 이용구 회장에 이은 그룹 최고위직에 올랐다.

삼성 등이 ‘3세 경영’ 체제를 구축했다면 SK와 LG 등은 ‘형제 경영’ 체제로 정비했다. SK그룹은 연말 정기 임원인사를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동생인 최재원 SK 부회장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시켰다. 최 부회장은 지난 2004년 SK글로벌 사태로 오너 일가의 경영퇴진과 함께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바 있다. 향후 최 수석부회장은 그룹 의사결정협의체인 부회장단을 이끌게 되면서 차세대 에너지 발굴 사업 등 기업의 핵심역할을 수행하게 됐다. 다만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그룹 계열사들에 대한 지분을 거의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룹 경영보다는 보좌 역할을 주로 맡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특집]그룹오너 3세들 ‘전진 배치’

앞서 LG는 스마트폰 경쟁에서 수세에 몰린 LG전자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지난 10월 구본무 LG그룹 회장의 동생 구본준 부회장을 새 사령탑으로 투입한 바 있다. 실적 부진에 빠진 LG전자를 구해내기 위해선 전문경영진 체제가 아닌 오너경영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 재계 안팎에선 구본준 부회장이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LG가 4세인 구광모 LG전자 과장이 경영권을 물려받기 전 단계라는 것이다.

동국제강그룹의 승진인사 역시 눈에 띈다. 동국제강그룹은 장세주 동국제강그룹 회장의 막내동생인 장세욱 전략경영실장(부사장)을 계열사인 유니온스틸 사장직에 기용했다. 그동안 유니온스틸 출신 임원 중에서 선출해 온 전례를 엎고 오너 일가가 전면적으로 나선 것이다. LS그룹 역시 구자홍 LS그룹 회장의 사촌동생인 구자용 LS네트웍스 회장을 E1 회장직까지 겸임하게 하면서 오너경영의 기반을 공고히하고 있는 분위기다.

‘경영권 승계’ 부담, 삼성이 풀었다?
재계의 연말 인사는 삼성이 앞서가고 타 그룹들이 뒤따르는 모양새다. 이건희 회장이 “어느 시대이든 조직은 젊어져야 한다” “21세기 리더는 젊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안 맞다” “연말 인사는 되도록 넓게 하고 싶다”고 언급한 후 이를 인사에 반영하자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견기업들까지 인사혁신에 나선 것이다. 경제단체의 한 임원은 “사실상 삼성그룹의 인사가 재계 인사의 트렌드로 받아들여진 것”이라며 “이재용 부사장의 사장 승진은 비슷한 후계구도를 가진 중견 그룹마저 크게 자극해 향후 젊은 오너들의 경영 일선 진출이 크게 늘 것”이라고 말했다.

‘두 단계 승진’도 삼성이 선택하자 타 기업들이 따라가는 식이다. 2009년 1월 전무로 승진한 뒤 2년이 채 못 돼서 두 단계를 건너뛴 이부진 사장의 전례가 이해욱 대림산업 석유화학사업부 부사장의 부회장 승진, 설윤석 대한전선 부사장의 부회장 승진으로 이어졌다는 평가다. 그룹 안팎의 눈치를 보느라 3개월이든 6개월이든 차근차근 직책을 올렸던 기업들이 ‘이부진 선례’를 통해 고속 승진의 부담감을 덜었다는 것이다.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재계의 ‘삼성 따라하기’가 이번 2·3세 승진 인사에서도 잘 나타났다”며 “이전에 여론의 눈치를 보며 주저하던 기업들이 삼성 인사에 무임승차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어차피 가야할 길 이번에 빠르게 진행시킨 것’이라는 설명이다.

젊은 임원들로의 세대교체도 삼성이 던진 화두가 재계 전반으로 확대된 양상이다. 우선 삼성그룹은 연말 인사에서 임원 승진 연한을 고려치 않고 유능한 인력에 대해서는 전격적으로 승진시켰다. 신임 사장 승진자 9명 중 5명이 부사장 1년차 미만에서 발탁된 것. 올해 삼성그룹 사장단 평균연령은 51.3세로 종전보다 2세가량 낮아졌다.

일반 직장인들에게 재벌 2·3세는 동경이자 비판의 대상이다. 집단이 만들어 낸 부의 승계에 대해선 경영능력 검증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모여있는 서울 시내 전경. |김기남 기자

일반 직장인들에게 재벌 2·3세는 동경이자 비판의 대상이다. 집단이 만들어 낸 부의 승계에 대해선 경영능력 검증과 함께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들이 모여있는 서울 시내 전경. |김기남 기자

큰 변화가 없을 거라는 관측이 우세했던 SK그룹도 세대교체를 택했다. 김신배 SK C&C 부회장과 정만원 SK텔레콤 사장 등 지난 10여 년간 그룹 성장 역사와 함께했던 원로들이 그룹 부회장으로 옮기면서 사실상 일선에서 물러났고, SK텔레콤은 사장 3명을 모두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이 자리는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의 젊은 사장들이 올라섰다. 이번 인사로 SK 주요 13개 계열사 CEO 평균 나이는 2009년 말 56.9세에서 55.5세로 낮아졌다.

부사장급 인사를 내년 1월로 미루는 등 신중한 행보를 하고 있는 현대차그룹도 전무급 이하 임원 309명에 대한 승진 인사를 통해 세대교체를 이뤘다. GS그룹 또한 임원 승진 29명 중 40대가 12명에 달해 40대 임원들의 진출이 돋보였다. 임원 승진 대상자 29명의 평균 나이는 49.7세로 50세를 넘지 않았다.

오일선 소장은 “지난 연말 인사를 보면 전자나 IT 업종에서 임원진의 세대교체가 뚜렷하다”며 “오너 일가에 맞춘 세대교체 측면도 있지만 젊기 때문에 속도에 맞출 수 있어 바꾼 측면이 강하다”고 말했다. 상대적으로 속도에 민감하지 않은 중공업 등 중후장대산업에서는 여전히 노련미와 연륜이 중요해 ‘올드’들이 많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연말 인사에서 보인 젊은 조직론이 단순히 물리적인 젊은 조직으로 확대 해석되고 있다는 경계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게다가 젊은 리더론 속에는 경영 후계자를 중심으로 한 ‘배려’와 ‘옹립’의 의도도 보인다는 게 경제개혁연대 등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경영 능력 검증·사회적 합의 중요
오너 일가가 경영 최전선에 등장한 것은 오너의 리더십을 통해 불투명한 경제 상황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책임경영이 더욱 절실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젊은 후계 대표의 오판 등 오너의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후계자의 경영 자질에 대한 보다 객관적이고 철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부친 회사에서 고속 승진하기보다는 외부 기업이나 기관에서 근무하면서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야 그 조직과 개인을 위해 더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오일선 소장은 “2·3세들의 경영권 승계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이 바로 경영 능력”이라며 “무엇보다 착실한 경영수업을 통해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편법·불법 승계 등 부정적 인식 또한 재벌 2·3세들이 풀어야 할 숙제다. 10% 미만의 소수 지분을 가진 창업주 일가의 경영 복귀 또는 전면 배치가 기업을 개인이나 가문의 소유로 여기는 전근대적 관행의 결과물이라는 지적이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기업들 오너 일가의 편법 및 불법 승계 문제가 세대교체 시기마다 논란이 되고 있다”며 “개인이 아닌 집단이 만들어 낸 부의 승계에 대해선 사회적 합의를 반드시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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