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우리사회 ‘치부’를 폭로하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매력적인 인물은 거의 없었던 반면 문제적인 인물은 많았다.”
2010년 올해의 인물을 선정하면서 「Weekly경향」 기자들이 맞닥뜨린 고민이다. 올 한 해 우리 사회는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대형 사건들의 쓰나미로 휘청거렸다. 사건의 한가운데 선 인물들은 우리 사회의 희망보다는 절망을 대변했다. 그 자체로 희망의 표상으로 삼을 만한 인물을 찾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환부를 드러냄으로써 더 나은 세상을 소망하는 이들의 노력에 힘을 보탠 사람이 있다.

「Weekly경향」은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을 폭로한 김종익 전 KB한마음 대표를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불법사찰 과정에서 그가 겪은 고통이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국가권력의 사유화가 얼마나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는지를 날카롭게 드러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자 주>

지난 7월 김종익씨가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지난 7월 김종익씨가 참고인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중앙지검으로 들어서고 있다. |정지윤 기자

민간인 사찰 사건의 본질은 무엇일까. 고성국 정치평론가의 말이다. “정권의 도덕성과 관련된 문제다.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찰했고, 이 사실이 드러난 이후에도 불법적인 은폐 시도가 있었다는 점에서 조직적인 정치적 범죄행위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지난 10년 민주정부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일로,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로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현 정권의 도덕성이 군사정권 시대로 퇴행하고 있다는 사실은 사건의 개요만 들여다봐도 명확하다.

김종익씨는 지난 2005년 국민은행에서 명예퇴직했다. 국민은행의 하청업체인 KB한마음 대표로 재직 중이던 2008년 9월, 그는 국민은행 후배로부터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김씨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동영상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는데, 그 목적은 전 정권 핵심인사이자 김씨의 동향 후배인 이광재 의원(현 강원도지사)에 대한 불법 정치자금 지원 여부를 밝히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공직윤리지원관실 불법적 자료 확보
후배가 말한 동영상은 김씨가 그해 6월에 올려놓은 일명 ‘쥐코’ 동영상이었다. 이 동영상은 한 재미유학생이 만든 것으로 BBK 의혹,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 의료민영화 등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김씨는 동영상 제작자나 제작과정과 아무런 연관도 없었다. 김씨가 한 일은 유튜브에서 180만건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한 이 동영상을 링크해놓은 게 전부였다.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들은 2008년 9월 어느날 김씨의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회계장부를 가져가고 임직원들을 수차례 소환했다. 김씨는 대표직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피신했지만 지원관실은 일본 내 김씨의 행적까지 파악했다.

지원관실이 불법적으로 확보한 자료들은 서울 동작경찰서로 넘겨졌다. 경찰은 회계장부와 법인카드 사용 내역을 뒤지는 한편 이광재 의원과의 관계 및 촛불집회 후원 여부, 노사모 활동 여부를 집요하게 캐물었다. 경찰은 혐의를 찾지 못하고 내사종결했다. 그러나 수사는 또다시 이어졌다. 경찰은 수사관을 교체해 수십명에 대한 추가 조사를 벌인 끝에 명예훼손 혐의로 2009년 3월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으로 송치했다. 검찰은 ‘혐의는 인정되나 초범이라 정상참작한다’는 이유로 기소유예했다.

김씨가 사건의 전모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2월 헌법소원을 통해 수사기록을 넘겨받고 나서다. 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은 올해 6월 21일 국회 정무위에서 폭로됐다.

이후 언론 보도 과정에서 대통령 고향인 포항·영일지역 공직자들로 구성된 영포라인이 사건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나면서 청와대와의 연루설이 제기됐다. 검찰은 지난 7월 5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검사 4명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그러나 늦었다. 지원관실은 이미 7월 5일과 7일, 두 차례에 걸쳐 하드디스크를 복구불가능한 상태로 파손했다. 하드디스크 파손을 위해 경기도 수원의 한 업체와 연락하는 과정에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지급한 대포폰이 사용됐다.

왼쪽부터 _ 박정수씨, 현병철 인권위원장,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정운찬 전 총리.

왼쪽부터 _ 박정수씨, 현병철 인권위원장,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정운찬 전 총리.

이인규 전 지원관 등 총리실 직원 4명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진경락 총리실 기획총괄과장 등 3명이 증거인멸 혐의로 기소됐다. 지난 10월 14일 재판과정에서 이인규 전 지원관은 사찰 사실을 당시 이강덕 청와대 공직기강팀장(현 경기경찰청장)에게 구두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이후 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불법사찰 의혹과 관련해 재판을 받은 원모 사무관의 ‘BH(청와대를 지칭) 지시사항’ 메모를 폭로하고, 이석현 민주당 의원이 청와대 행정관이 대포폰을 지급했다는 사실까지 폭로했지만 검찰은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우리 민주주의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
김종배 시사평론가는 불법사찰이 “민주주의의 본질과 관련된 문제”라고 본다. 블로그에 현 정부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민간인을 사찰한 것은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우리 민주주의가 어디에 와 있는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준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어떤 이들은 이 사건을 1970년대 미국 워터게이트와 비교하기도 한다. “민간인부터 여당 의원에 이르기까지 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찰한 이 사건은 워터게이트보다 더 심각한 것으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김용민 시사평론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는 지난 2008년 이후 지속되고 있는 문제다. 김종익씨에 대한 사찰이 정권 실세들의 연루의혹으로 점철된 잔혹극이라면, 지난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를 치르는 과정에서 드러난 경찰의 과잉수사는 한편의 코미디다.

2010년 한국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일도 범죄가 된다. 지난 10월 31일 오전 1시쯤 대학강사 박정수씨(40)는 일행 4명과 함께 포스터에 검은색 스프레이로 그림을 덧칠했다. 덧칠한 그림이 쥐 그림이었다는 것, 하필이면 그 포스터가 G20 홍보전단이었다는 게 화근이었다. 13장째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 박씨는 같이 있던 대학생 박모씨와 함께 경찰에 긴급체포됐다. 정부가 붙인 포스터에 낙서를 하는 일은 평소 같으면 경범죄로 그칠 일이다. 하지만 검찰은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지만 검찰 수사는 끝나지 않았다. 게다가 수사를 맡고 있는 건 공안사건을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다. 검찰 논리에 따른다면 2010년 한국에서 포스터에 낙서하는 사람은 국가 안보를 해치는 공안사범인 셈이다.

올해 기억할 만한(?) 행적을 남긴 인물들 가운데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된 이들이 유난히 많았다. 국가인권위원회를 파행으로 몰고간 현병철 인권위원장, 봉은사 직영 문제, 연평도 포격 현장 ‘보온병’ 발언, 예산안 날치기 책임 전가 발언 등으로 구설수에 오른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신망 있는 경제학자에서 실패한 총리로 남게 된 정운찬 전 총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Weekly경향」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 사람보다는 교훈과 각성의 울림을 던진 사람을 선정하는 것이 선정 취지에 맞는다는 판단에 따라, 이들 모두를 ‘올해의 인물’ 후보군에서 제외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