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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사찰 의혹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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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충연 수첩 거론 당사자 중 상당수 “거론 부담 느껴”

사찰 논란은 계속된다. 12월 초 새로운 사찰의혹이 또 나왔다. 이번에도 이석현 의원이다. 밝혀진 명단은 더 광범위하다. 근거는 전 공직윤리지원관실 조사관 원충연씨의 메모 수첩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원충연씨 수첩에서 거론된 인사들을 접촉해봤다.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치인·민간인 사찰 정황을 메모한 원충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전 사무관의 개인 수첩 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민주당 이석현 의원이 12월 7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치인·민간인 사찰 정황을 메모한 원충연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전 사무관의 개인 수첩 사본을 공개하고 있다. |정지윤 기자

“사실은 당사자가 더 답답하다.” 신필균 전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사무총장의 말이다. 원씨의 수첩엔 <보건복지비서실>이라는 제목으로 최희주 건강정책국장 이름이 거론되어 있다. 그 밑으로 ○73, 74~75학번 ○감사관실 15명 ○45개 단체 사회복지공동모금회/국시원-부처 차원에서 추진 중…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신필균 전 총장의 이름은 옆에 별도로 표기되어 있다. 내용은 “신낙균 동생 ⇒ 신필균 → 인권위 제소”다. 전체적으로 내용이 다 규명되지는 않지만 보건복지부와 산하 단체들의 인사 및 감사와 관련된 메모로 추정된다.

신 전 총장의 사퇴와 관련된 안건이 인권위에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2008년 9월이다. 신 전 총장에 따르면 직·간접적인 사퇴 종용은 2008년 4월부터 시작됐다. 전 정권에 가까운 인사가 남아있는 것은 단체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당시 회장(이세중)으로부터는 직접적으로 언질을 듣기도 했다. 신 전 총장은 “사표를 내기(12월)까지의 8개월은 정말 잊을 수 없고 불안한 하루하루였다”고 말했다. 압력은 위아래에서 들어왔다. “당시 회장 앞에서는 심정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대신 다른 이사들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여태까지 어떻게 참았느냐’고 말을 건네는 분도 있었지만 정치적 판단으로 볼 때 어쩔 수 없다는 분도 있었다.”

그는 “그동안 겪은 ‘인격적 수모’는 경험한 사람만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6개 지회가 있다. 지방 지회장들 중에서 일부는 ‘사무총장을 보호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한 달 사이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정부에서 관련 법안 개정을 추진한다는 이야기가 돌자 ‘신 총장 때문에 미운 털이 박혔다’는 식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다. 엊그제까지 ‘힘내십시오’ 이랬던 양반들이 싸늘해진 것이다.” 막상 ‘밥그릇’ 내지는 ‘생존’ 문제가 걸리자 싸늘하게 외면하더라는 것이다.

신 전 총장은 마지막으로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국민에게 호소하고 싶다. 도대체 이 정부가 우리에게 뭐냐. 정치가들에게는 또 나름대로 정치게임일 수도 있지만, 국민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은 또 뭔지를. 개인적으로 이승만 정권 시절 사찰하기 위해 집안을 드나들던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수법이 웃음으로 넘길 만큼 유치했는데, 결국은 이 정부가 하는 방법이 그거냐. 이건 5공도 아니고 40~50년 전으로 돌아간 것이 아닌가….”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김광식 전 조폐공사 감사는 자신에 대한 사찰이 벌어질 당시 ‘터뜨릴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다고 털어놓았다. “일부 언론에서 원충연 수첩에 거론된 내 임기(2010년 2월 27일)가 틀렸다고 보도했는데, 실은 정확한 정보다. 어쨌든 말마따나 나도 참여정부 인사인데 2년째인 2009년 2월에 나오려고 작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그런 식으로 하니 ‘내 진퇴문제는 알아서 할 테니 자꾸 이런 식으로 하면 공표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그쪽’에 전달했다. 그리고 2008년 12월 말부로 사표를 내고 나왔다. 사표는 1월 5일 수리되었다.” 

이석현 의원이 추가로 공개한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사무관의 수첩 메모.

이석현 의원이 추가로 공개한 원충연 전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 사무관의 수첩 메모.

2008년 여름께에 ‘당시 국무총리실에서 참여정부 시절 직책을 맡은 사람들을 사퇴시킬 목적으로 사찰팀이 만들어졌고, 뒷조사를 하고 다닌다’는 정보를 김 전 감사는 들었다. 그해 9월 감사실에서 조사가 나왔다. 임원들의 골프장 출입 여부 등을 알아본다며 차량 운행일지, 골프 활동 등이 적힌 서류들을 들고 갔다. 김 감사는 모멸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사실 나는 환경운동을 했기 때문에 골프장 출입은커녕 골프를 쳐본 적도 없다. 찾으려야 찾을 수도 없는 자료인 것이다. ‘언제까지 버티나 보자’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김 전 감사는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을 역임했다.

이번에 폭로된 원충연 수첩에는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김 감사에겐 꼬투리가 잡힐 ‘약점’이 있다. 2007년 이른바 ‘이과수폭포 감사’로 불린 외유에 그가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2008년 조폐공사 국감에서 당시 한나라당 의원들은 “이런 자들이 아직도 감사를 하고 있나”라며 판공비 내역 등을 공개하며 호통을 쳤다. 김 전 감사는 덧붙였다. “그 사건 후 여행경비를 반납하고 이런 저런 과정에서 개인적으로 평가를 받을 때 불이익을 받았고 점수도 깎이는 등 일단락된 것이었다. 당시에도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내가 감사생활을 하면서 공금을 어떻게 썼는지, 근무시간에 나가서 골프를 쳤는지, 차 운행을 무리하게 했는지, 이런 것들을 갖고 퇴진시키려고 했던 것이다.” 원충연 수첩을 근거로 접촉한 당사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하며 자세한 언급을 회피했다.

김종익씨 사찰 논란 초기, 민주당은 “비슷한 케이스가 약 50여건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아직까지 속 시원히 사찰 내용이 규명된 케이스는 없다. 김씨 사건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고 하는 12명의 경제계 인사 역시 지금까지 명단이 규명되지 않고 있다.

김종익씨 수사과정에서 불법사찰 논란은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과 관련된 활동도 드러난 것이다. 사찰 당사자에 대한 11월 22일 1심 판결에서 남 의원과 관계된 부분은 무죄가 나왔다. 남 의원은 “이번에 또다시 밝혀진 불법사찰은 결국은 언젠가 만천하에 드러날 일이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라며 “다시 말해 이 문제는 국민의 기본권인 자유와 인권의 문제이기 때문에 검찰이 재수사를 통해 명명백백하게 밝히는 것이 우선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요구하는 국정감사나 특별검사제를 도입하기 전에 부실수사 논란을 일으켰던 검찰이 우선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명박 정부가 매듭지어야 한다
이 의원의 추가 폭로와 관련해서 여권 당사자들은 정치쟁점화의 연장선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보인다. 역시 정치사찰을 당했다고 주장했던 정두언 의원은 “지금은 사찰문제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정태근 의원은 “국회가 저 지경이고 근본적으로 예산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지금 다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다만 민간인 사찰 문제와 관련해서는 절대로 이 상태로 덮고 넘어갈 문제가 아니고, 내년 2월 국회가 시작되면 어쨌든 국회에서 쟁점으로 부각되는 것은 불가피하기 때문에 여권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추가적으로 더 공개될 자료나 사찰대상 인물들은 있을까. 이석현 민주당 의원은 지난 12월 7일 민주당 원내대책회의 자리에서 “사찰서류를 무더기로 감춰놓은 장소를 알고 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지금 공개하면 또 없앨 수 있기 때문에 그곳이 어딘지 말하진 않겠지만 국정조사를 하면 찾아내 사찰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성국 정치평론가는 “디가우저 등 장비를 통해 전자문서는 상당수 폐기했기 때문에 물적 증거 확보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이 정권이 끝나면 사람에 대한 조사는 가능하며 내부고발자도 나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정권이 현명하다면 관성적으로 이 사건을 덮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마무리할 필요가 있다”며 “그게 정권을 위해서나 국민을 위해서나 바람직한 일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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