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우상의 시대 깨운 이성, 리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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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의 신문에서 리영희 선생의 부고를 읽었다. 일제 말기로부터 오늘날까지 혹독한 시대를 관통해 오면서 숱한 죽음을 목격하고 절규해왔던 선생이 자연으로 돌아갔다. 생각해 보면, 자연사의 형식으로 완성된 그의 삶의 역정은 고난에 찬 것이었지만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는 격조 있는 지성인의 태도를 의연하게 견지했다.

경기도 군포시 산본 자택 서재에 서 있는 생전의 리영희 교수.(2008년 사진) |우철훈 기자

경기도 군포시 산본 자택 서재에 서 있는 생전의 리영희 교수.(2008년 사진) |우철훈 기자

리영희의 글쓰기는 그가 존경했던 중국의 문호 노신의 태도처럼 ‘외침’에 가까운 뜨거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 외침은 크고 웅장하다기보다는 치밀하고 유려했다. 이것은 기자 시절에 체화된 광범위한 자료 수집과 꼼꼼한 사실 판단, 이를 통한 귀납적 논리구성의 지속적인 심화와 확대를 기반으로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리영희의 글쓰기를 휘황하게 만드는 것은 인문학적 감수성에 기반한 끝없는 인간에 대한 믿음과 물음 사이의 긴장 때문이다.

리영희가 고백한 대로 그는 유년시절부터 독서광의 면모를 띠고 있었으며, 일어와 중국어, 영어와 프랑스어로 된 외국소설을 읽으면서 인간과 사회의 문제에 대해 고민을 전개해 왔다. 지식인으로서의 리영희의 초상 속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섬세한 인간 이해와 타자에 대한 윤리, 빅토르 위고의 뜨거운 휴머니즘과 현실 고발, 그리고 노신의 비타협적인 현실과의 투쟁의 면모 모두가 용해되어 있다.

인문학적 감수성 담긴 글쓰기 탁월
그런 리영희였기에 그는 기자이면서도 학자의 면모를, 학자이면서도 문인의 면모를, 문인이면서도 운동가의 면모를 동시에 뿜어낼 수 있었다. 그가 유럽의 한 기자에게 선사받은 ‘사상의 은사’라는 표현은 유럽인의 관점에서 보자면, 근대적 인텔리겐차의 면모와 함께 일종의 성숙한 교양인의 체취가 습합되어 있었던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였던 것으로 보인다.

생전에 리영희는 평론집의 형태로 10여권이 넘는 저작을 출간했고, 자전적 회고록과 대담집을 남기고 있다. 오늘날의 기능적 지식인들은 학술논문과 사회비평, 칼럼과 에세이 등을 위계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당연시하지만, 리영희의 글쓰기는 각주가 별로 보이지 않는 에세이의 형식을 띠면서도 이 모든 잡다한 글쓰기가 하나의 성좌를 이루는 희귀한 사례를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다.

그의 저작들 가운데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선생이 1980년 1월 반공법 위반으로 광주교도소에서 2년 복역한 뒤 출소하면서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뒤는 함께 마중나온 한승헌 변호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리영희 선생이 1980년 1월 반공법 위반으로 광주교도소에서 2년 복역한 뒤 출소하면서 부인과 포옹하고 있다. 뒤는 함께 마중나온 한승헌 변호사. |경향신문 자료사진

(1974)는 이후 리영희가 추구해 나갈 지적 탐구의 원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당연히 주목되는 저작이다. 이 저작의 머리말에서 그는 “진정한 사회과학이 성립하기 힘든 제반 조건 속에서 나는 특히 중국 문제에 관해서 ‘해설자’ 이상을 자처해본 적이 없다”는 겸사를 펼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의 폐색된 정치상황에 대한 일종의 풍자적 진술처럼 느껴진다. 왜냐 하면 이 책에서 전개되고 있는 중국혁명사 및 베트남 전쟁에 대한 분석은 당대의 냉전적 반공주의에 대한 이론적 해체의 성격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중국과 베트남 현대사에 대한 리영희의 정치적 분석은 실상은 남북의 분단과 이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에 대한 알레고리적 비판에 해당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사회주의와 자유주의를 ‘사상’이라는 관점에서 대칭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도입하는데, 이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냉전적 반공주의와 군사독재의 무사상성과 폭력성이 대비적으로 폭로된다.

뒤 이은 저작인 <우상과 이성>(1977) 역시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 그는 중국의 작가인 노신의 ‘쇠로 된 방의 비유’를 들고 있다. 쇠로 된 방에 사람들이 잠들어 있다. 서서히 공기가 사라져 이대로라면 혼수상태에서 모두 죽을 상황이다. 그런데 누군가 깨어 있어 잠든 이를 깨운다면 그것은 희망인가 절망인가. 리영희는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진실을 알리기 위해 그들을 깨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우상에 대항하는 이성이란 마비된 현실에 대한 비판적 각성과 실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인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 열망
이 두 권의 책을 읽은 한국인들이 그런 마비상태로부터 서서히 깨어나기 시작했다. 민주화 시기 리영희의 이 두 저작은 고립된 섬처럼 폐색된 한국적 상황의 특수성을 세계사적 보편성의 프리즘으로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런 가운데 각성된 청년들이 민주화의 희망을 외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80년대를 관통하면서 청년지식인들은 리영희를 넘어서서 더욱 급진화하기 시작했고, 리영희의 인본주의적 사회과학은 과학적 사회과학의 가열화와 더불어 대중적 관심의 뒤편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1987년 6월항쟁에 따른 형식적 민주화와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블록의 몰락은 리영희 자신에게도, 또 그러한 역사적 변화를 목도해야 했던 한국인들에게도 지난 과거를 근본적으로 복기하고 성찰하게 만들었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는 그런 점에서 리영희의 변화된 세계 인식을 가장 명료하게 보여주는 저작이다. 이 저작에서 리영희가 집중적인 관심을 보여주고 있는 사항은 사회주의권의 붕괴가 내포하고 있는 인류사적 의미와 함께, 이후 미국의 일방주의로 관철될 것임이 분명한 새로운 시기가 더 큰 재앙이랄 수 있다는 시각이다. 그는 사회주의라는 인간학적 윤리의 실패가 결국은 인간의 ‘이기적 본성’을 과소평가한 데서 온 철학적 오류가 아닌가 하는 시각을 선보인다. 그러면서도 그가 미국식 자유주의가 역사의 궁극적인 승리라고 말한 것은 아니다. 이 두 극단을 종합한 사회민주주의적 개혁이야말로 어찌 보면 변화된 시대의 현실적 대안이 아닌가 하는 곤혹스러움이 묻어나는 저작이다.

리영희의 학문적 업적과 사상을 전반적으로 조망하면서도, 그가 평생에 걸쳐 고민했던 내면적 고뇌를 총체적으로 확인하기 위해서는 평론가 임헌영과의 대담집인 <대화>(2005)를 읽는 것이 가장 맞춤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소년 리영희가 어찌하여 한국 현대사의 가파른 행로 속에서 스스로를 비판적 지식인으로 정립시켰고, 인본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강렬하게 열망할 수 있었는가 하는 고민의 전모를 육성으로 확인할 수 있다.

리영희가 남기고 간 저작들은 그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살아있는 증언이다.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고독했고 또 존엄했는가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이명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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