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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문제,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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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늄 농축시설 공개로 긴장 고조… 연평도 공격으로 대화마저 힘들어

북한이 연평도에 해안포를 발사하는 도발을 감행함에 따라 북핵문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이 최근 농축우라늄을 만들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전격 공개함으로써 촉발된 북핵 문제는 당분간 한국, 미국과 북한간의 극단적인 대립구도가 심화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북핵 해결을 위한 6자(남북한 및 미, 중, 일, 러)회담 재개 및 북·미간의 양자접촉 논의 등 핵문제를 둘러싼 관련국들의 대화 노력마저 앞으로 상당 기간 ‘올스톱’될 것으로 보인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월 2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북핵문제 대응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과 스티븐 보즈워스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대표가 11월 22일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만나 북핵문제 대응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북한은 최근 핵폭탄 제조가 가능한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를 전격 공개했다. 북한은 미국의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을 초청해 영변에서 원심분리기 수천대를 갖춘 우라늄 농축시설을 보여줬다. 이와 관련해 헤커 소장은 “연료봉 가공센터에 새로 지어진 건물에서 수천대의 정교한 원심분리기가 설치돼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이 장비들이 초현대식 제어실에 의해 통제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원심분리기 공개는 ‘몸값 높이기’
북한의 우라늄 농축 의혹은 지난 2002년 제임스 켈리 미국 정부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 북한 당국이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HEU)이 있다고 시인한 후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켈리 특사가 당시 북한을 방문했을 때 원심분리기 제작에 쓰이는 고강도 알루미늄관의 (제3국으로부터의) 통관 자료 등을 제시하며 고농축우라늄프로그램의 의혹을 제기하자, 북한의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현재 총리)은 “그 보다 더한 것도 가지게 돼 있다”고 시인했다.

만약 북한이 핵무기 제조를 위한 농도 90% 이상의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경우 2년 안에 핵무기 1개 분량인 25㎏을 생산할 수 있다. 고농축우라늄으로 핵무기를 만들면 플루토늄보다 과정이 간단해 시간과 비용이 대폭 절감된다는 장점이 있으며, 군사적인 측면에서 가장 위협적인 부분은 경량화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태영 전 국방장관은 최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배치하는 문제를 검토해보겠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김 전 장관의 발언이 자칫 한반도 비핵화 선언을 정면으로 위협하는 것 아니냐는 논란을 부추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1990년대 초반까지 주한미군은 전술핵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1991년 9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핵무기 감축 선언에 따라 미군의 전술핵무기는 한반도 밖으로 철수했다.

[커버스토리]북핵문제, 더 이상 나쁠 순 없다

북한이 미국 정부 관리가 아닌 중립적인 학자를 초청해 농축우라늄 원심분리기를 보여준 의도는 무엇일까. 북한이 이번에 원심분리기를 공개한 것은 ‘일종의 몸값 높이기’ 전술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 3월 천안함 사건 이후 국제적 제재 수위가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착상태에 빠진 6자회담 테이블로 미국 등 주요 서방국들을 끌어내기 위한 일종의 ‘압박 카드’였던 셈이다. 특히 북한이 우라늄 핵 카드를 커내든 것은 이명박 정부의 남한과는 더 이상 협력이 의미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미국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 실리를 챙기겠다는 의도가 강하게 포함된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인정해온 미국은 북한의 핵폭탄 (또는 핵제조 물질)에 대해 테러집단이나 제3국으로의 이전을 막는 것이 최우선 목표다. 반면 북한은 미국과의 수교와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으로부터의 경제지원과 함께 안보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지상과제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에 북·미 양자 대화→핵문제 해결→미국의 경제지원→북·미 수교→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한반도 평화체제 완성을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이 경우 한반도 문제의 직접적인 당사자인 남한은 철저하게 배제되는 형국이다.

북한의 이같은 의도는 헤커 소장에게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는 자리에서 지난 2000년 빌 클린턴 정부 시절 북한과 미국이 발표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를 소개한 점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2000년 당시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조명록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과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국 고위관리들이 공동 관심사를 논의한 후 발표한 북·미 공동 코뮈니케는 북·미 양자간 관계개선을 기본 내용으로 하고 있다.

미국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로서는 북한의 이같은 전략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미국은 이미 북한의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관련, 북한의 ‘나쁜 행동’에 보상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천명했다. 미국 측은 “북한의 우라늄 농축프로그램 보유 주장이 사실이라면 북한 스스로가 한 약속과 배치되는 것이며, 국제적 의무를 위반하는 것”이라며 “우리는 나쁜 행동에 대해 북한을 보상하는 쪽으로 끌려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스티븐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한국, 일본, 중국 등 아시아에 파견해 “북한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대북정책을 유지하겠다”며 한·미·일과의 공조를 과시하고 있으며, 중국에도 북핵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줄 것을 요구했다.

특히 보즈워스 대표는 “포용을 위한 포용, 대화를 위한 대화는 없다”며 “근본적으로 북한이 (비핵화의) 진전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정부의 이같은 입장은 과거 북한의 ‘벼랑 끝 전술’에 휘말려 양보와 타협을 거듭해온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고 북한이 근본적인 태도 변화에 나설 때까지 압박을 유지한다는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오는 2012년 대선을 앞둔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문제에 대한 진전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선거에 마이너스로 작용될 수 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일정한 냉각기를 거친 후 미국은 다시 북한과의 협상 테이블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6자회담 의장국인 중국이 북·미 대화의 중재자로 적극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럴 경우 궁지에 몰리는 것은 한국이다. 6자회담 논의와 북·미 양자접촉이 재개될 경우 한국 정부는 대화의 당사자에서 제외될 공산이 크다. 북한이 이명박 정부를 불신하는 데다 특히 한국 정부는 6자회담 재개 조건으로 천안함 사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고 있어, 북한 등 관련국들로부터 비현실적이라는 비판도 받을 수 있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 실장은 “북핵문제에 대해 한국은 미국과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핵문제 해결과정에서 한국의 역할이 제한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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