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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지수 1위 부탄 “잘살아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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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개발 프로젝트 추진 ‘경제적 빈곤’ 탈출 시도

가난해도 행복한 나라 부탄. 히말리야 오지의 작은 불교 국가인 부탄은 경제적 가치가 아닌 국민들이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정도를 따진 ‘국민총행복(Gross National Happiness)’으로 삶의 질을 평가하고 있다. 부탄은 2008년 왕정에서 평화적으로 의원내각제 체제로 정권을 이양하면서 새로운 길을 걷고 있다. 최근 부탄 정부가 경제적 개방 정책을 실시하면서 부탄은 오랜 폐쇄에서 벗어나 외부 세계와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11월 24일 “부탄이 세계 주류 사회로 편입되고 싶어한다”며 부탄의 경제개방을 소개했다. 하지만 독특한 문화와 정서를 간직하며 살아온 부탄인들에게 경제적 풍요가 행복한 미래를 보장할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월 4일 부탄 수도 팀부 도심에 차들이 밀집해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10월 4일 부탄 수도 팀부 도심에 차들이 밀집해 있다. |AFP연합뉴스

부탄에 부는 변화의 바람
부탄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 있어 고립된 공간이다. 1990년대 말까지도 TV가 보급되지 않았고, 1970년대까지 외국 관광객의 입국이 허용되지 않았다. 현재도 매년 수천명 정도의 외국인들의 방문만 허용하고, 외국인 투자도 손꼽을 정도다. 수도 팀부에는 여전히 신호등이 없고, 주민들은 색색이 무늬가 들어가 무릎까지 내려오는 전통복장을 하고 일을 하도록 법으로 규정돼 있다. 주요 관리들은 전통적인 칼을 차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부탄에서의 삶은 외부 세계와는 다른 속도로 흘러간다. 기업가들은 하루의 대부분을 양궁 시합을 하며 보내고, 가족들은 저녁마다 소풍을 즐긴다. 이웃국가인 중국과 인도가 최근 수십년간 괄목할만한 경제성장을 보이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부탄 정부는 1972년 이래 경제 발전을 ‘국민총행복(GNH)’으로 알려진 종합척도로 측정해 왔다. 측정 기준은 경제·문화·환경·정부 4개 항목과 심리적 복지, 건강, 문화, 시간 사용 등 9개 영역으로 나눠진다.

부탄 왕실은 2008년 국민들이 더 민주화된 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란다는 취지에서 의원내각제로의 체제변경 결정을 내렸다. 현 정부는 부탄이 경제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면 민주주의 역시 생존하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를 하고 있다. 부탄은 행복지수로는 세계 1위 자리를 지키지만 국내총생산(GDP)과 같은 경제발전 정도를 측정하는 다른 지수들로 볼 때는 빈국에 속한다.

지그메 틴리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12월 이전에 18개의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계획이라고 타임스오브인디아가 전했다. 개발 정책으로 신규 국내 항공노선 취항, 정보기술파크 건설, 10억 달러 규모의 ‘교육도시’ 조성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일단 이러한 프로젝트 비용은 자체 자금과 해외 투자자들로부터의 투자로 충당할 계획이다. 특히 ‘교육도시’는 인도와 미국의 학생들을 겨냥한 것으로 아직은 개발의 초기 단계에 있지만 해외 투자 로드쇼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컨설팅업체인 매킨지에 협력을 의뢰한 상태다.

현재 정부는 관광객들에게 200 달러의 세금을 받고 있다. 이는 관광객 수의 급증을 막기 위한 방책이다. 매킨지는 이 제도를 재고할 것을 건의했다. 관광객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올리면 향후 5~7년 사이에 연간 방문객 수를 25만명으로 묶을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부터 한 마을에서 세금을 250 달러로 올리는 시험을 시도하고 있다. 미국 예일대는 부탄의 소나무숲 연구를 위해 부탄에 삼림환경연구소를 설립하기를 바라고 있다.

부탄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주민들 사이에서는 “개방이 확대될 경우 평화와 안정, 고유의 문화가 침해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부탄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광 가이드 일을 하는 페마(28)는 “우리가 너무 빠르게 간다면, 문제도 생길 것”이라면서 “빈곤이 만연하고 폭동이 일어나고, 불안정한 정부를 가지고 있는 네팔처럼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부탄의 야당 지도자 체링 토브가이는 “정부는 경제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교육도시’ 조성 계획과 같은 사업들이 얼마나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지는 의문”이라면서 “개발 정책이 시작되면 부탄의 노동력과 사회기반시설로는 감당할 수 없는 요구를 할 것이어서 부탄은 망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행복과 성장이 공존가능한 개발이 관건
반면 틴리 총리 등 개발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부탄이 세계 경제에 신속히 진입하는 것 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고 강조했다. 현재 부탄 인구의 약 23%가 국제빈곤기준 이하에서 살고 있으며, 주민 가운데 많은 수가 농촌 내륙지역에서 팀부 같은 도시로 이주하고 있다. 팀부의 인구는 10년 전 4만5000명이던 것이 10만명으로 증가했고, 토지 가격도 지난 3년새 150%나 치솟았다.

틴리 총리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민주주의에서는 정부 또는 지도자가 사람들의 열망과 필요를 충족시키는 지도력을 발휘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며 “우리에게도 실업률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 경제는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부탄의 최근 경제성장률은 중국과 인도에 비해서는 낮은 편이지만 성장세를 유지하고 있다. 대신 각료들은 그동안 유지해온 부탄의 문화를 보존하는 데 개발의 초점을 맞추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영투자회사인 드루크 홀딩투자의 댐버 샤르카 대표는 “누군가 이곳에 목재를 베어낼 계획을 가지고 온다면 우리는 그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우리는 (경제발전의 내용을) 매우 민감하게 생각한다”며 “환경을 파괴하는 것은 진정한 산업화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환경을 보호하면서 경제를 발전시키는 부탄과 같은 주변국이 나중에는 세계의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나라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계]행복지수 1위 부탄 “잘살아보세”

지난 11월 중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국민의 ‘총체적 복지’ 수준을 파악해 향후 국가정책 수립의 핵심 자료로 활용키 위해 GDP와 같은 물질적 성취뿐 아니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심리적·환경적 복지 수준을 말해주는 행복지수도 개발한 뒤 측정·활용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국민 행복도 조사는 영국 정부가 처음 구상한 것도 아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아마르티아 센은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GDP 같은 순수 경제적 수치에서 벗어나 복지와 지속가능성에 대한 평가에 더 주목할 것을 주창했고, 프랑스와 캐나다 정부가 이에 선도적으로 호응하고 있다. 이제 경제발전과 심리적 복지에 기반한 행복지수도 국가 발전의 척도가 되고 있다는 얘기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부탄은 가장 먼저 행복지수를 개발한 국가”라면서 “부탄에서 이제는 경제발전도 행복을 측정하는 데 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전했다.

<김향미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sokh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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