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관리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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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자율적 대응 존중원칙 정립을

정부는 ‘디지털유품’ 관리·처분에 관한 방향성 제시해야

2009년 77%의 인구가 인터넷을 이용하고, 만 3세에서 5세의 유아도 62%가 인터넷을 이용한다고 하니 바야흐로 삼척동자도 인터넷을 하는 세상이다. 또한 네티즌은 다양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사이트에 스스로의 족적을 남기고 있어,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네티즌은 미니홈피를 남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 관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컴퓨터 앞에 있는 한 네티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

최근 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 관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사진은 컴퓨터 앞에 있는 한 네티즌의 모습. |경향신문 자료

하지만 내가 죽었을 때 이메일, 블로그, 미니홈피가 어떻게 될지 고민하는 네티즌은 없는 것 같다. 내가 남길 디지털 정보, 즉 디지털 유품은 어떻게 될까?

먼저 디지털 유품은 고스란히 웹상에 남아 있을 것이다. 타인은 내가 활동한 사이트를 모르며, 안다 하더라도 로그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네이버, 다음, 싸이월드 등에서 디지털 유품을 삭제할까? 인터넷 업체는 주민등록번호 DB가 없기 때문에 사망 사실 자체를 모르며, 장기적으로 방치된 계정을 휴면계정으로 분류할 뿐이다.

사망후에도 디지털유품은 남아
그런데 내가 웹상에 남긴 족적이 안네의 일기처럼 불멸의 작품은 못될지라도 후손에게 남겨줄 가치가 있다고 한다면, 이러한 디지털 유품을 방치하기보다는 상속해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만약 상속할 수 없다면, 나의 정보가 인터넷에 유령처럼 떠돌지 않도록 삭제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재 국회에는 3건의 법률안이 제출되는 등 디지털 유품에 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최근 천안함 전몰 장병들의 부모들이 아들의 홈페이지나 이메일 계정 접근을 요청한 것이 이러한 문제점을 환기시킨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 글에서는 디지털 유품의 상속에 관한 주요 쟁점과 해외 사례를 소개하고, 향후 디지털 유품 관련 정책의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하여 보고자 한다.

먼저 디지털 정보를 상속하기 위해서는 디지털 정보가 개인의 재산이어야 한다. 2002년 대법원은 ‘디지털 정보 자체는 소유의 객체인 물건이 될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나, 올해는 ‘온라인 게임 캐릭터 및 아이템 등 게임정보에 대한 소유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전향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더불어 현대 지식정보사회에서 정보의 중요성을 고려한다면 디지털 정보의 재산성을 인정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디지털 정보가 개인의 재산이라 하더라도 민법 제1005조에 따라 피상속인의 일신에 전속된 경우라면 상속될 수 없을 것이다.

먼저 디지털 정보 중 ID와 패스워드 등 ‘계정정보’는 ▲판례에 의하면 ‘가상공간에서 행위자의 인격을 표상하는 개인정보’이며 ▲현행 인터넷 업체의 약관상 주민등록번호 또는 그 대체수단인 i-PIN과 일대 일로 대응한다는 점에서, 일신에 전속하여 상속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반면 이메일, 게시물 등의 콘텐츠는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저작물법’ 또는 ‘온라인디지털콘텐츠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독립된 정보라는 점에서, 일신에 전속하지 않아 상속이 가능할 것이다.

[이슈와 논점]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관리 문제
[이슈와 논점]죽은 자의 디지털 정보관리 문제

마지막으로 ‘정보통신망법’ 제49조는 인터넷상의 타인의 정보를 훼손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어, 인터넷 유품의 상속이 사망자의 개인정보를 침해하는 것은 아닌지 문제된다.

그러나 사망자는 상속인의 인격적 이익과 서로 연결되는 특수한 관계에 있다는 점에서 ‘타인’에 포함되지 않아, 디지털 유품의 상속이 사망자의 정보보호와 충돌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다만 해석론을 떠나 규정의 모호함이 인터넷 업체나 상속인의 자율적인 실천의지를 제약할 수 있으므로, 유권 해석으로 ‘타인’의 범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한편 정보보호 규정상의 문제가 없더라도 전자신문에 의한 설문조사 결과 50대의 경우 ‘디지털 유품을 전달하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48.8%로 나타난 점을 고려할 때, 피상속인의 상속 의사를 반영할 수 있는 채널도 요청된다.

미국의 대표적인 SNS 사이트인 페이스북은 사망자의 홈페이지를 추모 공간으로 하여 지인들에게 제공하고 있으며, 가장 가까운 친척에게 홈페이지 삭제 권한을 부여한다. 트위터는 사망자의 관계자의 요청이 있을 경우, 계정을 삭제하거나 공개 트위터를 보존하도록 하지만 해당 계정에의 접근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이메일의 경우 구글은 사망자의 사망증명서와 계정 위임장을 소유하고 있을 경우, 사망자 계정에의 접근을 허용한다. 또한 마이크로소프트는 그 관계가 증명된 친권자에게 사망한 이의 이메일 내용을 CD를 비롯한 저장장치에 복사해서 제공하고 있다. 야후는 제3자의 계정 접근을 불허하며 사망 사실을 알았을 경우 계정을 삭제한다.

미국 인터넷 업체는 약관 통해 관리
종합하면 미국의 인터넷 업체는 일반적으로 블로그 등 공개된 정보의 유지 및 폐쇄에 대해서는 법적 권한을 가진 자의 요청에 응하지만, 계정정보와 비공개정보에 대해서는 정보 보호 차원에서 엄격하게 취급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디지털 유품과 관련한 정책에서 먼저 고려할 점은 디지털 유품 정책의 ‘입법수준’이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미국의 인터넷 업체가 약관을 통해 자율적으로 디지털 유품의 관리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인터넷 업체가 상속인에게 사망자의 디지털 정보를 제공해 주는 것이 법에 반하는지 여부처럼 해석이 모호한 부분은 법률규정 등으로 명확히 하되, 일반적인 부분은 민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편 계정정보 등 상속되지 않는 디지털 정보의 처리 문제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죽은 자는 권리가 없고 상속인도 상속받을 수 없다면, 디지털 정보는 사실상 주인 없이 방치되어 범죄에 악용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인터넷 업체가 사망자 정보를 제공받아 해당 정보를 폐기할 수 있도록 할지에 대해서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ID의 재활용 문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30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는 네이버, 다음, 네이트 등 주요 포털은 유용한 ID를 소진한 상태이므로, 사망자의 ID를 회수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정책 결정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민간의 자율적 대응을 존중하는 원칙을 정립하는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일일이 대응하는 제도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 타당하지도 않다. 정부는 디지털 유품의 관리 또는 처분에 관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민간은 큰 틀 안에서 이용자의 선호를 반영하여 디지털 유품 관련 서비스를 개발해 나가는 양방향의 접근이 필요한 이유이다.

<김유향 문화방송통신 팀장·권순영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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