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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예산·고효율’ 영화제작 대안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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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제작비 10억이하 수작 개봉 잇달아… 흥행부담 적어 경쟁력

국내 영화시장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른바 저예산영화의 도전이다. ‘영화는 영화다’(장훈 감독), ‘워낭소리’(이충렬 감독), ‘달콤, 살벌한 연인’(손재곤 감독), ‘옥희의 영화’(홍상수 감독), ‘시’(이창동 감독) 등 저예산영화가 속속 성공하면서 영화 제작 판도를 바꾸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제작비 때문이다.

[문화]‘저예산·고효율’ 영화제작 대안찾기

배우 출연료를 비롯해 인건비 상승 등으로 영화 제작비는 꾸준히 높아졌다. 영화진흥위원회는 2000년대 국산영화 평균 제작비를 약 25억원 선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도 100억원이 넘는 대형영화들이 속속 성공하고, 관객 1000만 시대를 선언하면서 영화판 규모는 상승일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러나 대규모 투자에 비해 흥행성적은 실로 초라했다. 지난 5년간 한국영화 수익률은 마이너스 40%, 즉 100억원을 투자하면 60억원밖에 건지지 못했다는 소리다. 한 해 제작되는 영화 100여편 중에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고작 10여편에 불과하다.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다.

몇 편의 기적 같은 성공신화에 휩쓸려 대박을 꿈꾸며 영화판으로 몰려들던 거액의 투자자금은 한순간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남은 것은 영화가 끝난 극장 안처럼 쓸쓸한 현장뿐. 게다가 미국발 금융위기를 시작으로 세계 경제가 한파에 접어들면서 영화시장은 그야말로 비극의 무대가 되고 말았다.

한국영화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그 비극을 딛고 시작된 셈이다. 영화진흥위 영화정책센터 김경만 연구원은 당분간 저예산영화가 강세를 보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영화 제작도 경제상황의 파도를 탄다. 지금 영화 투자금은 하향 평준화를 보이고 있다. 앞으로 당분간은 이런 추세가 계속 될 것이다. 우리뿐 아니라 할리우드 영화도 대형 블록버스터 제작이 줄어들고 있다.” 지금 개봉되는 영화는 대략 2~ 3년 전에 기획 투자된 영화이므로 저예산영화가 많다는 것이다. 지금 상황도 크게 나아지지 않아 당분간 대작 영화는 한두 편밖에 제작되지 않을 것이라 보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순제작비 10억원을 저예산영화의 기준으로 보지만, 최근 들어 그 기준조차 훨씬 낮아지고 있다. 홍상수 감독의 ‘옥희의 영화’는 2000만원. 얼마 전 도쿄영화제에서 최우수아시아영화상을 받은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는 4700만원이 제작비의 전부다. 그야말로 방송 드라마 1회 제작비에도 크게 못 미치는 돈으로 상업용 장편영화를 만들어내는 셈이다.

제작기간·촬영회차 줄여 거품빼기
그렇다면 제작자와 감독은 초능력자일까. 순제작비 8억원으로 장편 이모션 3D 영화를 표방한 영화 ‘나탈리’를 만든 박민철 제작부장은 제작비 절감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선 촬영 회차를 최대한 줄였다. 장편영화 평균 촬영 회차가 40회에서 60회 정도인 데 비해 나탈리는 17회차로 끝냈다. 그만큼 인력과 돈을 줄이기 위해 촬영장은 물론 배우 동선 하나까지 고민한 결과다.” 사전에 최대한 치밀하게 계산해서 딱 필요한 분량만 찍는다는 것이다. ‘레인보우’도 촬영 21회로 영화를 마쳤으니 제작 기간과 촬영 회차를 줄이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다음은 배우 출연료. 이창동, 홍상수, 주경중 감독 등은 감독의 지명도에 따라 비교적 알려진 배우를 썼지만 대부분 저예산영화는 신인이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가 주연이다. 유명배우도 경우에 따라 무보수이거나 아주 적은 출연료를 받고 출연한다. 작품을 고르는 배우들의 기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돈보다는 이미지나 명분을 따르는 경우도 늘었다.

덧붙여 기술의 진보도 한몫 했다. 비싼 영화용 카메라가 아닌 동영상 촬영이 가능한 사진용 카메라로도 심도 깊은 영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디지털화된 만큼 촬영과 편집 등 후반작업에서 시간과 비용을 줄이게 됐다.

저예산영화의 본격적인 난관은 정작 영화 제작 이후부터 시작된다. 다 만든 영화를 개봉할 곳이 없다. 배급사도 잘 나서지 않는 한편, 영화를 걸 상영관을 잡는 것도 큰일이다. 올해 6 편의 독립영화와 저예산영화를 배급한 인디스토리 조계영 팀장의 하소연은 현실을 고스란히 들려준다. “틀 곳도 없고 튼다 해도 구색 맞추기로 눈 가리고 아웅 식에 불과하다. 영화관에서 관객들이 볼 수 없는 시간에 교차상영으로 영화를 건다. 우리는 그것을 퐁당퐁당이라 부른다. 소문을 듣고 관객이 찾아가도 정작 볼 수 없는 현실이다.” 과거 독립영화 위주의 상영관 인디스페이스가 있었으나 문을 닫았고, 종종 예술영화와 저예산영화를 틀던 영화관들이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영화는 어떻게든 만들테니 상영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달라는 호소는 차라리 절규에 가깝다.

하늘의 별따기처럼 배급사와 상영관을 확보해도 난관은 끝나지 않는다. 바로 어마어마한 개봉 비용이 필요한 것이다. 예고편, 포스터, 홍보비 등에 필요한 최소비용만 해도 수천만원이 든다. 어쩌면 제작비보다 마케팅 비용이 더 커져버리는 역설적인 상황이 빚어진다. 영화진흥위원회는 저예산영화를 위한 개봉 지원 프로그램으로 편당 3000만원을 지원하고 있다. 일반적인 상업영화에는 보잘 것 없지만, 저예산영화에는 가뭄의 단비 같은 돈이다.

“주제다양·실험시도 한국영화 발전”
저예산영화는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흥행에 따른 부담도 적은 편이다. 작품을 기준으로 관객 1만명 이상이면 성공했다고 본다. 영화 ‘나탈리’의 경우 개봉 1주간 관객 수 10만을 넘었다. 상대적으로 적은 관객이지만 저예산영화인 까닭에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것이다. 제작과 연출을 함께 한 주경중 감독은 저예산 영화야말로 다양한 수익이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획 단계에서부터 국내 극장에서뿐 아니라 수출, 다운로드 등을 통해 수익을 낼 수 있도록 준비했다. 나탈리는 이미 아시아권과 미주지역 10여개국 이상에 수출계약이 끝났다. 게다가 에로틱한 감성을 다룬 때문에 다운로드를 통한 수익이 상영관 수익 이상일 것이라고 예측한다. 뿐만 아니라 3D 제작 경험은 100억원 이상의 학습효과를 갖는다. 저예산영화는 충분히 상업적 경쟁력이 있다.” 관객이 적게 들어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주장이다.

‘레인보우’의 신수원 감독은 저예산영화의 강점은 상업적 성공보다 영화 자체에 있다고 설명한다. “다양한 표현과 주제로 한국영화를 아름답고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저예산영화다. 관객이 사랑해주는 만큼 우리 영화의 자양분이 될 것이다. 저예산영화도 충분히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좋은 영화다.” 우리 저예산영화가 경제위기가 빚어낸 사생아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국영화의 전성기를 만들 자산인지를 지켜보는 것도 영화 이상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김천<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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