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병원의 선택진료제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의사선택권 내세워 병원수입 확대

의료서비스 향상 유인하면서 국민 부담 줄이는 해법 찾아야

올해 보건복지부 국정감사에서도 대형 병원의 선택진료제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지적이 있었다. 보건복지부의 연도별 선택진료비 현황을 살펴보면, 최근 3년간 전국 500병상 이상 의료기관 86곳의 선택진료비는 모두 2조 6744억원에 이르고 매년 10% 이상 증가추세에 있다.

대형 병원들이 실시하고 있는 선택 진료제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다.

대형 병원들이 실시하고 있는 선택 진료제에 대한 개선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기사내용과 관련이 없다.

대형 병원들이 실시하고 있는 선택진료제 개선에 대한 요구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7년 국민들의 피해사례와 불만이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를 통해 제기되면서, 당시 한국소비자보호원과 국가청렴위원회가 각기 구체적인 개선권고안을 제시했다. 그리고 2009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수도권 8개 대형 병원을 대상으로 선택진료 부당청구에 대한 시정명령을 내리고 과태료를 부과하기도 했다.

국회에서도 정책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으며, 2006년에는 선택진료제의 근거조항인 ‘의료법 제46조 개정 관련 법률안’이 국회에 여러 차례 발의되기도 했다. 그러나 선택진료제에 대한 근본적인 개선책은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다.

선택진료는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특정한 의사를 선택하여 진료를 받는 경우, 건강보험에서 정한 진료수가 이외의 추가 비용을 환자가 전액 부담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환자가 본인의 필요에 따라 양질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환자에게 의사 선택권을 부여하며, 그 대가로 환자가 추가 부담을 하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선택진료제는 시행 초기부터 의사선택권 보장과는 거리가 먼 취지의 제도였다. 선택진료제는 ‘특진’이라는 이름으로 1962년 국립대학교 소속 교수들이 사립대학교 의과대학 소속 교수들보다 낮은 급여를 받는 것에 대한 보상의 한 방편으로 도입되었다.

이것이 1991년에는 ‘지정진료제’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제도의 원래 목적이 변질되기 시작했고, 2000년 ‘선택진료제’가 시행되면서부터는 치과병원, 한방병원을 포함한 전체 병원으로 대상기관이 확대되었다. 동시에 선택진료제에 해당되는 자격의사, 산정비용, 선택진료 건수의 제한 등에 대한 규제도 점차 완화되어 갔다.

의사선택권 보장과는 거리 먼 제도
이러한 특진 → 지정진료 → 선택진료로의 변화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부의 관리기능 상실이라고 할 수 있다. 전국민의료보험의 도입, 의약분업 도입, 단일보험자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출범 등과 같이 보건의료제도의 큰 변화 시기마다 정부는 의료계의 수익을 보전해주어 불만을 달래는 동시에, 건강보험 ‘저수가’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선택진료제 규제 완화를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슈와 논점]대형 병원의 선택진료제

이러한 선택진료제를 둘러싼 각 이해당사자들의 입장을 정리하면 소비자인 환자의 경우, 시민단체와 소비자단체를 중심으로 이미 선택진료의 부당함에 대한 불만과 제도개선 요구가 끊임없이 있어 왔다. 이는 제도의 목적인 환자의 실질적인 의사선택권이 제대로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인데, 보건의료의 특성 상 소비자와 공급자 간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한 것이다. 즉, 환자가 의사를 선택할 때 의료의 질을 판단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정부는 여러 번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선택진료 담당의사의 지정 요건 강화, 선택진료 신청서 작성방식의 개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을 통한 선택진료비 확인, 의료기관의 선택진료 관련 기록의 보존기간 연장 등의 대책을 제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노력이 다소 간의 성과를 보이기도 했으나 근본적인 대책으로는 여전히 미흡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공급자인 대한병원협회는 낮은 건강보험 수가를 보완할 의료기관의 수입보전 방안으로 선택진료제를 운영하였는데, 이것을 폐지 또는 축소할 경우 야기될 병원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이런 각각의 입장을 고려한 결과, 선택진료제가 현실적으로 환자의 의사선택권을 보장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병원의 수입보전이 제도의 실질적인 목적이라면, 다음의 이유로 의료법 제46조에 근거한 선택진료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첫째, 선택진료제는 공적 영역인 건강보험 서비스체계 내에서 환자와 의료기관의 사적인 계약을 허용하고 있어 진료체계의 왜곡을 야기하고 있다. 심지어 이러한 현상은 법률적으로도 뒷받침되는데, 의료법 제46조 제4항에서는 원칙적으로 환자의 선택진료에 소요되는 비용을 따로 받을 수 없음을 명시하고 있으나, 제5항에는 예외적으로 일정한 요건을 갖춘 경우엔 전액 환자부담으로 추가비용을 징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둘째, 정보의 비대칭이 심한 보건의료 분야의 특성상 환자의 의사선택권 보장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정부는 여러 번의 의료법 시행규칙 개정을 통해 의료서비스 질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데 노력하였으나 여전히 한계가 있다. 의사의 근무연수를 기준으로 한 현행 선택진료 의사 자격 부여가 의사선택권 보장의 근거라고 보기는 어렵고, 의사 개인별 능력평가 등은 전혀 이루어진 바 없다. 또 선택진료 의사의 경력, 구체적 진료영역 등의 정보는 환자에게 사전에 제공되지 않는다.

[이슈와 논점]대형 병원의 선택진료제

셋째, 선택진료제는 추가비용을 부담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 일정 경력 이상의 선택진료 의사에게 진료 받을 기회를 상당한 정도로 제한하고 있기에 ‘헌법’의 건강권 및 ‘국민건강보험법’의 건강보험 수급권에 대한 침해 우려를 낳고 있다. 특히 암환자 및 희귀난치질환자들 등 고액진료비 부담 환자에게 선택진료제는 고가의 치료비로 인해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또한 의료급여 환자의 경우, 건강보험 급여 본인부담은 면제이지만, 건강보험 급여비용을 기준으로 부과하는 선택진료비는 전액 부담하고 있으므로 선택진료제는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서비스 이용을 보장하기 위한 의료급여제도의 기능을 약화시키고 있다.

우수의료기관 수가 차별화 고려해볼만
결론적으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선택진료제의 ‘폐지’가 현실적인 정책대안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대형병원의 수입보전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정부가 대형 병원 수입을 보전할 대책의 기본 방향은 병원서비스의 질적 향상을 유인하면서 국민의 경제적 부담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병원급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전반적 평가를 통해 우수 의료기관에 대해 수가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책을 고려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우리와 건강보험제도가 매우 유사한 대만의 경우처럼 요양기관 종별 가산율을 요양급여비용의 5~10% 범위 내에서 차등 적용하거나, 가감지급하는 등의 명확한 인센티브 조치를 실행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만우 보건복지여성 팀장·허종호 입법조사관보>

이슈와 논점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