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축제의 계절, ‘좋은 축제’를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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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살린 ‘자생적 축제’ 사회공동체 공존 기여

축제 없는 대한민국에 축제의 계절이 돌아왔다. 10월에 접어들면서 어느 지역 할 것 없이 지역축제가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브라질의 카니발, 스페인의 투우축제와 토마토축제. 네덜란드의 오렌지 축제 등의 대표축제는 없고, 방만한 지역축제만 넘쳐나는 나라가 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이서울페스티벌 마지막날인 10월 10일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세계거리극축제에서 시민들이 대형공룡으로 분장한 공연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하이서울페스티벌 마지막날인 10월 10일 서울 잠수교에서 열린 세계거리극축제에서 시민들이 대형공룡으로 분장한 공연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2009년 말 기준으로 지역 축제는 1200여개에 이르고 있다. 지자체 한 곳마다 한 해 평균 5건 이상의 축제를 여는 셈이다. 그러나 질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는 곳은 많지 않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지역문화 활성화의 긍정적인 현상이라고 하고, 또 어떤 이는 축제 때문에 예산이 낭비되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축제’를 부정적으로만 보는 것은 옳지 않다. 경제성장 위주의 정책개발은 지역의 문화적 낙후를 초래했으며, 지역축제는 그러한 지역의 문화적 낙후를 만회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 그리고 주민들의 화합과 경제를 활성화하는 기여도가 적지 않다.

문제는 지역의 전통과 특성을 가진 자생적인 축제가 아니라, 외형만을 중시하는 수익창출만을 목적으로 하면서 ‘관광함정’(tourist trap)‘에 빠져 다른 지역의 축제를 그대로 베낀 ‘판박이’ 축제가 양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주민들의 화합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모색하는 사회적 리소스(Resource)가 아닌 단순 자본(Capital)으로서만 주목을 받으면서 지역의 고유성을 상실하고 혼잡스러운 상업주의만이 만연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단체장 치적을 홍보하기 위한 축제나 외지 관광객은 거의 없이 지역민들끼리의 ‘동네잔치’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방만하게 운영되고 있는 지역축제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아닌 통돼지 바비큐뿐이며, 그 또한 무질서하게 팔리고 있을 뿐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지역축제의 외적인 목적은 문화적 이미지를 강화하고 부정적인 이미지 개선 등에 기여함에 있다. 내적인 목적은 전통적인 문화와 따뜻한 이야기의 장을 통하여 방문객과 지역주민, 지역주민과 지역주민 간의 소통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하고자 함이다. 그러나 강원도 남대천 연어축제에서 보듯이 상상의 빈곤과 무리한 체험에 의해 변질된 경우가 많다. 남대천 연어축제가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에 몽둥이를 쥐어주고 연어를 잡는 것이라니 믿을 수 있겠는가. 서울시의 ‘하이페스티벌’도 그렇다. 영국의 역사도시 에딘버러는 1947년에 ‘에딘버러 국제페스티벌’을 기획하여 거리나 교외 등을 적극 활용해 역사적 도시를 무대로 예술성을 갖춘 축제도시라는 지역이미지 형성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서울시가 진행하고 있는 ‘하이서울페스티벌’에 도시 전체의 맥락과 맞는 문화정책은 있었는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진행되고 있는지가 무척 궁금하다.

소규모 자생축제들 고사 위기
문화부는 방만한 지역축제의 원인제공자다. 1998년부터는 중앙정부에 의해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 등 관광상품성이 있는 축제를 ‘문화관광축제’로 선정하여 이에 대해 지원해온 것이 지금의 지역축제 난립의 주요 원인이기 때문이다. 2010년에도 문화관광축제로 44개를 선정하고 총 71억8000만원을 지원했다고 한다. 지역의 축제를 관광객 유치와 지역경제 활성화에 대한 효율성을 중앙정부가 평가하여 ‘대표 축제’ ‘우수 축제’ ‘예비 축제’ 등으로 나누어 지원한 것이다. 이러한 중앙정부의 정책은 민간에 의해 자연발생적으로 생긴 지역축제를 지원했다기보다는 모여든 관광객의 숫자나 외관상의 번지르르한 거대 지역 축제 위주의, 지역경제 활성화의 도구로만 지역 축제 활성화를 모색했다고 보면 된다. 중앙의 시각으로 지역 축제에 명찰을 붙이고, 그를 지원한 정책이었다.

강원도 양양군의 남대천 연어축제 모습. |경향신문 자료

강원도 양양군의 남대천 연어축제 모습. |경향신문 자료

이러다보니 누구나 흔쾌히 어울릴 수 있었으며, 풍성한 볼거리와 여흥판이 신명 나게 벌어지며 나름의 역할을 충실히 해 오던 자생적인 소규모 지역축제는 고사의 위기에 처해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시골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5일 장에서의 신기한 차력술과 외줄타기, 접시돌리기, 광대놀음과 같은 소규모 오일장터 지역 축제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게 되었다. 대다수의 지역민들이 즐기고 참여하는 작은 규모의 자생(自生) 축제들이 고사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역축제를 중앙정부가 관리하려는 시각은 조금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 지역축제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선택과 집중의 원칙에 따라 정부 예산 지원 대상을 57개에서 40여개로 줄일 예정이며, 관련 예산도 75억원에서 64억여원으로 15% 가량 감축할 예정임을 발표하였다. 방만하면서도 지역별로 차별화되지 못한 지역축제에 대해 지원금 감축 등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다.

상당수 지역축제가 지적을 받는 것이 방만한 운영이라는 점에서는 이해가능하나, 지역축제를 아직도 지역문화의 계승발전과 사회적 리소스로 보지 못하고 ‘경쟁력 강화를 위한 선택과 집중’이라는 자본의 논리로만 보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최소한 지역축제의 방만한 운영과 함께 자생 축제의 고사에 대한 이중적인 대책을 내놓아야 했다. 우리 고유의 전통적인 두레문화의 원형을 회복하면서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의 문화적 특징을 살리면서도 지역경제에 이익이 됨과 동시에 지역출신인 귀향운동까지도 달성할 수 있는 축제가 되도록 지역과 함께 고민해야 했다. 그리고 지역축제 개선을 위한 평가가 필요하다면 ‘서열’보다는 ‘차이’가 중시되어야 했다. 축제 수입원이 있는가, 없는가의 판단에 앞서 방문객과 지역주민 교류의 장이 펼쳐지고 있는가를 동시에 판단해야 했다.

좋은 축제는 관리하려는 힘이 제거된 자생적 축제다. 누구나 흔쾌히 어울릴 수 있었으며, 풍성한 볼거리와 고단한 삶을 여흥판으로 끌어들여 신명나게 놀 수 있는 축제다. 사회 공동체의 존재를 표출하며 노래와 춤의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구성체와 구성체 간의 공존을 위한 사회적 약속을 만들어가는 과정으로서의 자생적 축제가 필요하다.

축제를 관리하는 자본논리 배제해야
나쁜 축제는 누군가의 의도에 의해 관리되는 축제다. 불순한 의도에 의해 생성을 강요받았던 권력중심의 축제는 선거를 의식한 선심용 행사로 변질되거나, 방만하게 운용되는 등의 부작용이 큰 나쁜 축제다.

지역축제마저도 자본(Capital)으로만 바라보던 천박한 정글자본주의에서 벗어나려는 우리사회의 노력이 힘을 받을 때 좋은 축제, 명품 축제가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구나 흔쾌히 어울릴 수 있는 따뜻한 영혼과 이야기가 있는 축제, 사회공동체의 존재를 표출하며 나와 다른 너를 이해하는 사회적 리소스(Resource)로서 지역축제를 바라본다면 귀향운동으로까지 이어지는 좋은 축제, 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자연 사이, 사회구성체와 사회구성체 사이에 따뜻한 약속들을 만들어가며 황홀경에 빠질 수 있는 명품 축제를 만들어 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광재<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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