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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는 일을 기부라 생각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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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시인 김용택, 정년 퇴임후 재능기부 활동

섬진강 시인 김용택. 2년 전 30여년의 교편생활을 마감하고 평교사로 정년퇴임했다. 자연과 아이들을 벗삼아 지냈던 까닭에 승진은 전혀 꿈꾸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평교사 김용택을 더욱 자랑스럽게 여긴다. 정년퇴임 후 김 시인은 작품 소식보다 사회적인 활동 소식을 많이 전하고 있다. 한 달에 20여일은 각종 단체, 기업체, 학교 등에서 요청하는 강의 스케줄이 잡혀 있다. 환경 공부를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환경재단에서 주최하는 강의도 듣고 있다. 

[특집]“지금 하는 일을 기부라 생각지 않아”

이창동 감독의 영화 <시>에 단역 배우로 출연도 했다. 얼마 전부터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에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김 시인은 문단에서 어른 대접을 받지만, 일상에서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 젊은 시인으로 살고 있다.

국제아동권리기관인 세이브더칠드런에 재능기부를 하고 있다. 어떻게 그 기관과 인연을 맺게 됐나.
“2008년 8월 학교에서 정년퇴임 후에 강연도 다니고 여행도 하면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세이브더칠드런 관계자가 아프리카 말리공화국에 같이 가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해서 동행하게 됐다. 당시 그 기관에서 아프리카 신생아들에게 털모자를 보내주는 캠페인을 하고 있었다. 아프리카는 온도 차이가 많이 나서 신생아가 많이 죽는데, 털모자만 씌워줘도 많은 아이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에 8박 9일 일정으로 아프리카에 다녀왔고, 이때부터 세이브더칠드런과 인연을 맺게 됐다. 그곳에서 아이들의 실상을 직접 보면서 재능기부를 하게 됐다.”

어떻게 재능기부를 하고 있나.
“아프리카 말리를 다녀온 후에 잡지나 신문 매체 등에 세이브더칠드런 홍보 역할을 해주고, 기관 소식지에 글을 보내준다. 요즘 재능기부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내가 재능기부를 한다는 생각은 안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나눠 사용한다는 생각을 했는데, 그게 재능기부인 것 같다.”

여러 기관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을 통해 아프리카 아이들 몇 명을 후원하고 있다. 아름다운재단을 통해 책 인세 1%도 기부하고 있고, 월드비전 활동에도 참가하고 있다.”

작가에게 글은 자존심이고 생활 그 자체일 것이다. 작가가 글을 기부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부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지금 하는 일이 나에겐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평생 아이들과 뒹굴면서 살았다. 이젠 아이들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할 때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을 기부한다는 것은 굉장히 아름다운 일이다. 이런 일은 누가 시켜서 되는 일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 같다. 재능기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참여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어날 것 같다.”

김 작가의 고향인 전북 임실군에서 문학관을 지어준다고 했는데 거절했다. 대신 아이들을 위해 여러 가지 실험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떤 일인가.
“문학관을 짓고 운영하는 데도 돈이 많이 드는데, 차라리 지역주민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대신 ‘가끔 열리는 학교’를 운영할 계획인데, 12월 정도에 피아니스트 노영심이랑 가수 백창우와 함께 준비하고 있다. 말 그대로 가끔 열리는 학교인데,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학교를 여는 것이다. 의료진도 섭외를 해서 동네 어른들에게 침도 놔주고, 예술인들이 가서 아이들과 함께 노는 프로그램이다. 김제동도 참여한다고 했으니까 함께 하자고 연락할 계획이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문학 프로그램도 운영할 계획이라는데.
“시골집(전북 임실군 장암리에 있다) 땅에 조그마한 집을 짓고 있는데, 거기에 ‘김용택 시인의 작은 학교’를 만들 생각이다. 전국에서 7~9명의 아이들만 모집해서 한 달에 한 번씩 만나 자연과 문학을 함께 공부할 생각이다. 그림도 그리고, 글도 쓰고 하면서 지낼 생각이다. 물론 무료다. 전북 지역의 대학교에 있는 문창과와 연계를 해서 아이들에게 강의를 해주면 좋을 것 같다. 참여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을 것 같아서 어떻게 선발할까 고민 중이다.”

학교를 떠났는데도 여전히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진한 것 같다.
“학교를 못잊는 것은 아닌데, 자연스럽게 이렇게 된다. 초등학교 교사로 일할 때는 교사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학교를 떠나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좋다.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준비하는 게 재미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해 비판적으로 발언하고 있다.
“작가에게 자연은 근본이다. 하지만 인간이 자연을 그대로 보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다. 인간의 흔적을 자연에 새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다만 어떤 흔적을 내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이 불안한 것은 운하로 만들지 않을까 하는 의심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은 너무 한꺼번에 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낀다. 영산강은 많이 오염됐다. 우선 영산강만 해보자는 것이다. 이후에 다른 강 사업을 해도 늦지 않다. 얼마 전부터 환경재단에서 강의도 듣고 있는데, 이젠 환경운동도 환경문제에 대해 대안을 내놓아야 할 때인 것 같다. 무조건 환경만 지키자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년퇴임 후에 사회적인 발언을 많이 하고 있다.
“교사로 일할 때에는 아이들이 뒤에 있어서 발언을 하는 것이 힘들었다. 우리 사회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판단할 만한 지식도 없었고, 그런 힘도 없었다. 학교를 떠나니까 우리 사회가 빠르게 변화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정치는 우리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수렴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가) 혼란스런 것이다. 정치인들은 너무 낡았는데, 세상은 너무 많이 변했다. 6월 지방선거 결과를 보면서 뭔가 예전과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다. 지역구도가 깨지고 있다. 젊은이들이 정의와 진실을 잃어버린 줄 알았는데, 옳은 것을 지키고 있더라. 젊은이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정치가 붙잡지 않으면 사회는 더 낙후될 것이다.”

퇴임 후에도 바쁘게 지내고 있는 것 같은데, 글은 언제 쓰나.
“지금까지 20~30권의 책을 냈는데, 글을 쓴다는 것은 지금도 어려운 일이다. 내 장점은 글을 쓰는 것에 매달리지 않는 것이다. 글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글은 자연스럽게 넘칠 때 쓴다. 10월 말쯤에 시집을 펴낼 계획이고, 내년 3월쯤에 내 고향인 장암리 마을 이야기에 대한 에세이집을 낼 생각이다. 10권짜리가 될 것 같은데, 새로운 실험이 될 것이다.”

약력
1948년 9월 출생
1982년 창작과비평사 21인 신작시집 ‘섬진강1’ 외 8편의 시 발표로 등단
1986년 김수영문학상 수상
2002년 제11회 소충· 사선문화상 수상
<섬진강>(1985), <나무>(2002>, <그래서 당신>(2006), <아이들이 뛰노는 땅에 엎드려 입 맞추다>(2010) 외에 다수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펴냄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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