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소통하는 첨단 서점’ 생존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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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광화문점 재개장으로 본 오프라인 책방의 미래

왕이 돌아왔다. 서점가의 제왕격인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5개월간의 내부공사를 마치고 재개장했다. 올해 창립 30주년을 맞아 공간을 새단장하겠다는 것이 리모델링의 표면적인 이유지만 속내는 출판시장과 서점가의 위기의식이 반영돼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재개장됐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재개장됐다.

지난 10년 내내 서점가는 불황을 호소하고 있다. 매년 시장규모는 축소되고 있으며, 특히 소형서점은 최근 2년 동안 400여 곳이 문을 닫을 정도로 타격이 컸다. 그 첫째 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온라인 서점의 약진이다. 현재 2조6000억원 규모(문화체육관광부 문화산업백서 기준)의 출판유통시장에서 약 3분의 1 이상인 8000억원 정도가 온라인에서 유통된다. 출발 10년 만에 비약적인 발전을 한 것이다. 앞으로도 인터넷을 통한 온라인 서점은 점차 그 규모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온라인 서점·전자책 시장환경 급변
영풍문고 마케팅팀의 최정순 과장은 온라인 서점의 강점을 책값 할인과 편리함에서 찾았다. “신간을 제외하고는 제값 주면 손해라는 인식이 깊다. 가격만으로는 경쟁이 안 되고 오프라인 공간이 갖는 특성을 살려 경쟁할 수밖에 없다. 고객의 필요에 맞춘 서비스를 기획하여 만족을 줄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가격할인에 맞서 서점에서는 각종 기획코너를 만들어 독자에게 책을 좋은 책을 추천하고, 직접 독서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출판기획자들은 다른 측면에서 서점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각종 e북 기기와 휴대용 전자기기가 출판유통의 흐름을 바꿀 것이라는 진단이다. 현재 국내 전자출판은 걸음마 단계다. 이제까지 형식도 통일되지 못했고 제대로 된 유통망도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비싼 기기는 시장의 장벽을 높였다. 그러나 아이패드 등 콘텐츠 소비용 기기의 연이은 출시로 세계 출판·언론·교육계가 전자책의 개발과 활용에 힘을 쏟기 시작했다. 최신형 전자책 기기 가격이 10만원대 초반까지 떨어졌고, 대학교 도서관 등과 협력하여 콘텐츠 확보에 전력을 다하면서 국내에서도 초기 예약이 매진되는 호조를 보였다. 전자책 시장이 활성화되면 서점가에는 또 한 차례 위기가 닥칠 것이라는 예상이다.

소규모 출판사를 경영하는 고광영씨는 본격적인 전자책 시대의 진입이 새로운 환경을 만들고 있다고 설명한다. “전자책은 출판사에 새로운 기회다. 제작유통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고 출판사 규모에 관계 없이 콘텐츠의 질로 승부할 수 있다. 더 이상 사재기 등으로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일도 없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오프라인 서점은 또 한 차례 위기가 올 수 있다.” 이번에는 소형서점보다 공룡화된 대형서점이 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구에서는 이미 그 변화가 시작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옥스퍼드 사전은 최근 인쇄판의 발간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출판 126년 만에 더 이상 서점의 서가에서 찾아볼 수 없게 된 것이다. 미국 최대 오프라인 서점 반스앤노블은 적자 때문에 생존의 위협을 느껴 전면적인 매각 계획을 발표했다. 출판과 서점가에 닥친 변화의 파고는 소형서점들을 삼키고 이제 대형서점을 향해 밀려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의 환경 속에서 서점가의 제왕 교보문고는 어떤 무기를 들고 돌아왔을까. 그들이 내세운 명목은 ‘소통하는 미래형 서점’이다. 광화문 교보문고는 리노베이션 결과 겉모습이 확연히 달라졌다. 재개점 기대효과 때문에 이전보다 2배 이상의 인파가 몰려들어 한시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독자의 평가는 중립적이다.

오랫동안 교보문고 광화문점을 다녔다는 김기용씨는 기대보다 못하다는 평을 내렸다. “여유가 없어졌다. 공간은 분명 넓어졌는데 책을 읽기에 더 답답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정해진 공간에 너무 많은 것을 밀어넣은 것 같다.” 또 다른 이는 ‘서점’에서 ‘복합적인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려는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고 했다. 서가는 밀집된 반면 문구와 음반 등을 파는 공간은 좀 더 넓어졌다는 평가도 있다.

주문형 출판 ‘디지털 책공방’ 눈길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경.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경.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전자책 코너와 스마트폰을 통한 도서 위치정보의 제공은 디지털시대 서점의 일단을 엿볼 수 있게 해준다. 무선랜을 제공하여 매장에서도 전자책을 곧바로 다운로드할 수 있게 한 시도 등은 긍정적이지만, 기존 방식보다 더 불편해진 도서검색 시스템에 불만을 갖는 고객들이 많았다.

미래형서점으로서의 압권은 주문형 출판이 가능한 책공방 코너다. 미국의 대형 온라인 서점 아마존에서 개발하여 미국과 유럽 일부에서 시도되고 있는 책 자판기와 개념이 같은 서비스다. 품절 절판된 책을 데이터로 가지고 있다가 독자의 주문에 의해 즉석에서 인쇄 제본해준다. 개인 출판과 맞춤형 출판도 가능하여 미래의 출판시스템으로 시험되고 있다. 서비스가 본격 시작되는 11월이면 외서 240만 종, 우리책 1만3000 종을 즉석 출판으로 만날 수 있다고 한다. 가장 눈여겨볼 만하고 앞으로의 성공 여부를 주목할 만한 부분이지만 아쉽게도 아직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교보문고 김성룡 대표이사는 “온라인 시대에서 부족하기 쉬운 오프라인의 소통에 중점을 두겠다. 저자와 독자가 만날 수 있고, 세미나 강연 등의 오프라인 관계 맺기의 중심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요한 오프닝 프로그램으로 작가 사인회, 사은품 증정 등을 내세웠다. 수십년 동안 상투적으로 진행하던 식상한 행사만으로는 왕의 귀환을 치장하고 목표를 달성하기에 힘겨워 보인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이 문을 닫은 기간에 주변 대형서점의 매출액은 가파르게 올랐다. 대략 50% 이상 독자가 늘었지만 그 독자들을 다 잡아두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고객은 잡아둘 수가 없다.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주지 못한다면 흘러가고 만다. 사람들은 언제나 책과 지식이 필요하고, 그것을 서점에서만 구하던 시절은 끝났다.” 인근 대형서점 관계자의 말이다.

우리 시대 서점이 갖는 상징은 꽤나 각별하다. 무한경쟁의 고속도로에서 잠시 비켜 서서 쉬어갈 수 있는 영혼의 쉼터가 서점이다. 길을 잃었을 때 지도를 찾을 수 있는 곳도 책방이다. 그 서점의 몰락을 지켜보아야 한다는 것은 시대의 아픔이다. 책이 있는 지성의 광장에 편하게 모일 수 있고, 문화와 지식과 즐거움이 살아있는 곳이 될 수 있도록 대형서점들의 앞서가는 노력이 절실한 때이다.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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