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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칙에 체벌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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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벌금지 4년째 시행중인 면목고… 벌점제 운영 바른생활교실 진행

“중학교 때 학교 가는 게 무서웠어요. 교문에서 머리가 길다고, 복장이 불량하다고 많이 맞았거든요. 학교 교문을 통과하는 게 정말 부담스러웠어요. 그런데 이 학교에 오니까 체벌이 없더라구요. 체벌이 없다는 것 때문에 학교 가는 부담이 많이 줄었어요.”

면목고등학교에서 체벌 대신 운영하고 있는 ‘바른생활교실’ 프로그램은 외부 강사의 유기적인 협조를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바른생활교실 프로그램 진행 모습. | 면목고등학교 제공

면목고등학교에서 체벌 대신 운영하고 있는 ‘바른생활교실’ 프로그램은 외부 강사의 유기적인 협조를 받아서 진행하고 있다. 사진은 바른생활교실 프로그램 진행 모습. | 면목고등학교 제공

서울 면목고등학교 1학년 학생의 말이다. 면목고는 4년 전부터 체벌을 금지하고, 상·벌점제를 운영하고 있다. 면목고 교문 앞 풍경은 과거와 많이 달라졌다. 과거 교문 앞은 지각한 학생들이 벌을 받거나, 복장 불량 때문에 혼나는 학생들로 시끄러웠다. 지금은 학생의 잘못을 벌점으로 처리하기 때문에 예전의 모습이 사라졌다. 등교를 하는 학생들의 발걸음도 가벼워졌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체벌 전면 금지를 추진하면서 “학교의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체벌을 하지 않으면 학생들 지도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다. 체벌이 사라지면 학생 지도에 문제가 생기는지 알아보기 위해 면목고를 찾았다. 결론적으로 면목고에 체벌이 사라진 후 큰 혼란은 없다. 다만 교사들이 학생들의 문제점을 바로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 상·벌점제가 큰 효과가 없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상·벌점제의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상·벌점제 단점 보완책 고민
면목고는 여느 남자고등학교처럼 쉬는 시간만 되면 학생들 소리로 학교 전체가 들썩인다. 교실에 남아 책을 보는 학생, 친구들끼리 장난치고 떠드는 학생 등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학생부실이라고 할 수 있는 생활지도부실을 찾았다. 이곳은 학생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다. 그러나 이곳을 찾는 학생의 얼굴에서 긴장하는 기색은 별로 찾을 수 없다. 목소리를 높이는 교사도 찾아볼 수 없다. 문제점을 지적하는 교사나, 교사의 말을 듣는 학생이나 둘 사이에 긴장감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았다. 생활지도부 교사와 학생 사이의 벽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회초리를 든 교사도 없다. 기합을 받는 학생도 없다. 체벌이 사라진 후 생활지도부실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면목고 학생들이 유난히 착해서 체벌 없이 학교 운영이 잘되는 게 아니다. 면목고는 다세대·연립주택이 밀집해 있는 곳에 있다. 학교 주변의 주거환경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학교가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면목고에는 결손가정의 학생이 많고,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도 많다. 학비 지원을 받는 학생이 17.3%, 중식 지원을 받는 학생이 15.4%에 이른다. 학교 자료에는 가정형편이 좋지 않고, 기초학력이 떨어지는 학생들이 많으면서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 사례가 많다고 밝혀져 있다. 면목고는 오히려 체벌이 많이 발생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2006년 면목고등학교는 체벌을 금지했다. 대신 상·벌점제와 ‘함께 참여하는 바른생활교실’을 혼합 운영하기 시작했다. 생활지도부 교사와 학급담임은 ‘학생생활 평가 카드’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상·벌점 카드다. 두발, 복장, 지각, 흡연 등 각 항목마다 1~3점이 매겨져 있고, 학생이 교칙을 위반할 때마다 교사들은 카드에 점수를 매긴다. 15점 이상의 벌점을 받은 학생은 6일짜리 프로그램인 ‘바른생활교실’에 입소를 하게 된다. 30점 이상이면 교내 봉사와 함께 바른생활교실에 입소하고, 45점 이상이면 사회봉사와 함께 바른생활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60점 이상이면 ‘선도위원회’의 회의 결과에 따라 퇴학 여부가 결정되는 방식이다. 바른생활교실에 참여하는 학생은 출석으로 처리된다.

6일간 진행되는 바른생활교실 프로그램은 다양하게 짜여 있다. 고민을 많이 한 흔적이 담겨 있다. 매일 아침마다 학교 뒤에 있는 산을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외부 강사의 특강이 진행된다. 청소년 범죄 예방, 흡연 예방 및 금연교육 등 매일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학생들을 지도한다. 바른생활 교실은 매 학기 한 번 진행되는데, 1학기에는 5월 10일부터 15일까지 운영됐다. 44명의 학생이 참가했는데, 참가 학생들의 만족도가 상당히 높았다.

“바른생활교실이 체벌보다 낫다”

면목고등학교의 상·벌점제 카드.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6일 프로그램인 ‘바른생활 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최영진 기자

면목고등학교의 상·벌점제 카드. 벌점이 15점을 넘으면 6일 프로그램인 ‘바른생활 교실’에 참여해야 한다. |최영진 기자

바른생활 교실에 참여했던 1학년 김모군은 “맞는 것보다 바른생활교실에 참여한 것이 좋았다. 교육적인 효과도 체벌보다 나은 것 같다”면서 “외부 강사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특히 좋았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2학년 박모군도 “프로그램 중에서 외부 강사의 강의가 좋았다”면서 “학생 시절 문제를 많이 일으켰던 분의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을 다시 잡을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했던 외부 강사는 의류업체를 운영하는 20대 젊은 대표 서인재씨다. 서 대표는 흔히 말하는 문제아였다. 문제아가 어떻게 지금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특강이 학생에게 큰 힘이 됐다. 서 대표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나는 전문강사가 아니다. 중학교 때 선생님이 면목고에 계시는데, 한번 와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해서 강의를 했다”면서 “아이들에게 특별한 말을 한 게 아니다. 나도 어릴 때 말썽을 많이 부렸지만,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놓지 않았다고 조언을 했다”고 답변했다.

체벌이 금지된 후 학생들의 변화도 긍정적이다. 임문수 교장은 “체벌 대신 바른생활교실을 운영하니까 아이들이 순화되는 것 같다”면서 “특히 학내에서 일어나는 금연, 절도, 싸움 등의 문제를 해결할 때 외부의 도움을 받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교사들도 상·벌점 제도에 적극 참여하고 있기 때문에 효과가 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생활지도부 이모 교사도 “상·벌점 제도가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를 가능성을 방지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상·벌점 제도로 다수의 아이들을 통제하는 것이 가능했다”면서 “다만 상·벌점제가 교실에서 발생하는 학생의 문제를 바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 단점이다. 체벌은 즉각적인 효과를 볼 수 있지만, 상·벌점제는 즉각적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은 9월 말까지 각 학교 특성에 맞는 체벌 금지 대체방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면목고는 4년 전부터 체벌을 금지해왔고, 대체방안을 운영하기 때문에 큰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면목고 교사와 학부모 중 일부도 체벌 전면 금지 실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다.

임문수 교장은 “이번에 체벌 전면 금지에 교장의 역할도 담겨 있는데, 현실적으로 무리가 아닌가 싶다. 우리 학교가 40학급인데, 매시간 수십명의 학생이 교장실에 찾아오면 상담이 잘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며 “만일 피치못할 사정으로 체벌을 한 교사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해결할 수 있나. 학교는 다양한 일이 벌어지는 곳인데, 무조건 체벌만 금지한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부분에 대해 교육청이 섬세하게 논의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학부모·교사 ‘전면 금지 실시’ 우려
박경희 생활지도부장은 “체벌 전면 금지는 학교 교육 패러다임의 변화라고 말할 수 있다. 교육청의 발표를 보면 학부모의 참여가 절대적인데, 우리 학교의 경우 학부모의 참여가 무척 부족하다. 이런 부분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박 지도부장은 “교육감은 이상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다.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 체벌 전면 금지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다. (교실에서) 문제 아이들 때문에 선량한 아이들이 피해를 보기 전에 즉시 해결해야 하는데, 벌점 방식이 별로 효과가 없다”고 설명했다.

생활지도부의 또 다른 교사도 “체벌 전면 금지 규정 때문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신경을 덜 쓰지 않을까 걱정된다. 생활지도의 기본이 예방과 적극성인데, 교육청의 방침만 따르면 오히려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면서 “학교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데, 이에 대한 대처방안이 세련되게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면목고 학생의 학부모도 체벌 전면 금지 효과에 의문을 표시한다. 한 학부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부모로서 자식을 생각하면 교사가 윽박지르거나 혼내는 것보다 칭찬이 더 큰 효과를 낼 것으로 본다”면서 “하지만 체벌이 너무 없으니까 아이들이 교사를 교사로 생각하지 않는 면도 있다. 감정이 실린 체벌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체벌은 필요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학부모도 “요즘은 중학생이 가장 큰 문제다. 고등학생이 되면 교사와 학생이 어느 정도 대화가 되기 때문에 체벌이 별로 필요없을 때가 많다. 하지만 중학생들은 정말 말을 듣지 않는다”면서 “통제가 안되는 학생들을 어떻게 할 수 있나. 체벌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된다”고 말했다. 면목고 학생 중에는 “교사의 감정이 실린 체벌이 아니라면 어느 정도의 체벌은 인정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면목고의 경우를 보면 상·벌점제는 많은 장점이 있다. 학생과 교사의 만족도도 높은 편이다. 다만 체벌이 주는 즉각적인 교육효과를 대체할 수 방안을 찾아야만 하는 과제를 떠안고 있다. 체벌이 교육 현장에 많은 영향을 줬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곽노현 교육감이 이와 같은 ‘현실론’을 어떻게 해결할지 주목 받고 있다.

<최영진 기자 c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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