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포보 상판 ‘꺼지지 않는 생명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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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사업 반대 고공농성 한 달 째… 8월2일 이후 물과 선식으로 연명

성경 속 바벨탑은 신의 권능에 도전한 인간의 오만을 상징한다. 환경운동가들은 4대강 보 구조물을 ‘4대강 바벨탑’이라고 부른다. 4대강 사업이 생태계의 질서와 민의의 요구를 거스르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지난 8월17일, 환경운동가 세 사람이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경기도 여주시 이포보를 찾았다. 7월 22일 이포보 상판으로 올라간 이들은 한 달째 최소한의 물과 식사로 연명하며 4대강 사업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편집자 주>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3명이 한 달째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 20m 높이의 이포보 상판에 있다.

환경운동연합 활동가 3명이 한 달째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천막. 20m 높이의 이포보 상판에 있다.

“함안 활동가들이 20일간의 활동을 끝으로 내려왔습니다. 태풍을 앞두고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까지 지키려 했다 들었으나 많은 분들의 설득 속에 눈물을 머금고 내려온 모양입니다. 활동가들께 경의를 표하며 건강회복에 전념하길 바랍니다. 이제 우리만 남았고 함안 몫까지 짊어지게 됐습니다. 어깨가 무겁습니다.”

지난 8월11일 오전에 염형철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이 무전기로 알려온 내용을 이포보 현장상황실 활동가가 염 처장의 트위터에 대신 올린 글이다. 함안보 타워크레인에서 농성 중이던 활동가 2명은 태풍이 이 지역을 덮치면서 하루 전인 8월10일에 농성을 중단하고 내려왔다.

500m 떨어진 상황실서 농성자 신변 확인
이 8월11일자 트위터 글은 염 사무처장, 박평수 집행위원장(고양환경운동연합), 장동빈 사무국장(수원환경운동연합) 등 이포보 농성자 세 사람이 유무선 통신수단을 통해 남긴 마지막 전언이 됐다. 7월22일 새벽에 이들이 갖고 올라갔던 휴대폰과 노트북 컴퓨터는 발전기가 고장나 농성 며칠 만에 무용지물이 됐다. 그 후로는 이포보 공사를 맡고 있는 대림산업측이 7월29일에 제공한 무전기를 사용했지만 지금은 이마저도 쓸 수 없는 형편이다. “대림산업측은 그간 세 차례 무전기 배터리를 교체해줬지만, 일주일 전쯤부터는 중단한 상태”라고 한수경 서울환경운동연합 간사는 말했다. 이 때문에 현장상황실 활동가들은 두 대의 고정식 망원경과 한 대의 쌍안경, 그리고 소형 앰프를 통해 세 사람의 신변을 확인하고 있다. 현장상황실은 공사 현장으로부터 500여m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포보 공사 현장으로의 진입은 차단돼 있었다. 천서사거리 부근 공사 현장 입구는 건장한 체격의 용역회사 직원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입구를 뚫고 들어간다 하더라도 이포보 교각 아래 강변에는 전경 버스가 상주하고 있다.

8월17일 오후 3시쯤. 강변 옆 2차선 국도변에 위치한 상황실 활동가들은 천막을 친 채 30도를 웃도는 더위를 이겨내고 있었다. 활동가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집회 신고를 해놓은 이곳에서 아침부터 밤까지 버틴다. 고공 농성 중인 활동가들을 격려하기 위해 이곳을 찾는 방문객들을 안내하고 이포보 상판에 있는 활동가들을 지원하는 것이 이들의 임무다.

최준호 서울환경운동연합 팀장은 기자에게 1.5ℓ짜리 생수병 하나를 내밀었다. 생수병 안에 든 것은 물에 섞은 선식이다. 그는 “오늘부터 활동가들이 선식 체험을 하기로 했다”며 “여기까지 온 김에 한 번 먹어보라”고 권했다. 밍밍한 미숫가루 맛이 났다. 1.5ℓ를 모두 마신다고 한들 이것을 제대로 된 식사라고 하긴 어려울 것이다.

상황실 활동가들이 선식 체험을 하기로 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이포보 농성자들은 8월2일 이후로는 물과 선식으로만 끼니를 때우고 있다. 현재 이들의 하루 음식물 섭취량 최대치는 1인당 500㎖짜리 생수병 3개와 120g 분량의 선식이 전부다. 그나마도 물은 매일 올라가지만 선식은 지난 8월10일 올라간 2㎏짜리 4봉지가 마지막이다.

8월5일 조배숙 민주당 의원이 이포보 농성자들에게 음식물을 전달하려 했지만, 대림산업측은 물, 소금, 선식을 제외한 물품은 전달할 수 없다는 태도를 취했다. 한수경 간사는 “대림산업측이 농성 장기화를 우려해 그러는 것 같다”면서 “장동빈 사무국장은 선식이 몸에 맞지 않아 거의 먹지 못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혜경 인천환경운동연합 정책실장은 “이곳에 왔던 건설노조 사람들도 고공 농성자들에게 밥 대신 선식만 허용한 적은 없다고 하더라. 도대체 누가 이런 결정을 한 거냐”며 분노했다.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이포보 공사 현장.

경기도 여주시 남한강 이포보 공사 현장.

인권위는 8월 13일 상임위원회를 열어 이들에 대한 환경운동연합측의 긴급구제 조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체 조사를 벌인 결과 최소한이지만 음식과 물이 계속 제공되고 있고, 긴급한 의료조치가 필요한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판단했다”는 이유다.

오후 4시44분, 고정식 망원경에 장동빈 사무국장의 모습이 포착됐다. 그는 천막 입구를 열어놓고 그 안에 앉아 있었다. 양 무릎을 세운 채 팔과 고개를 떨군 그의 모습은 지쳐 보였다. 농성자들이 천막을 친 이포보 상판은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이 시각 기온은 31도를 가리켰다. 20m 높이의 콘크리트 구조물이 뿜어내는 복사열이 만만치 않을 터였다. 상판 주변에는 페트병들이 널려 있었다. 한수경 간사는 “밤에 누가 몰래 올라오는지 경계하기 위해 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인권위, 긴급구제 조치 신청 안 받아들여
농성 천막은 상판 위에 있던 건설 자재를 활용해 만든 것이다. 소변은 페트병으로 해결하고 대변은 종이뭉치에 싸둔다. 세면은 공기주입식 튜브에 빗물을 받아 해결한다. 침구도 따로 없다. 이포보에 올라가던 첫날 가져간 재킷이 전부다.

이포보 상판 위 10여명의 인부들은 강에 떠 있는 크레인을 이용해 자재를 끌어올리는 등 꾸준히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교각 아래에서는 포클레인 한 대가 강변의 흙을 파내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아주 드물게 덤프 트럭이 들어오고 나갔다. 공사장에서 나는 소음은 거의 들리지 않았다. 4시57분쯤 망원경 너머로 장 사무국장이 생수병으로 물을 마시는 모습이 보였다.

엿가락처럼 끈적이던 열기는 오후 6시30분을 넘기자 옅어졌다. 대신 조금씩 서늘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유무선 통신이 모두 두절된 상황에서 이포보 농성자들과 현장상황실 활동가들이 어떻게 소통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오후 7시10분쯤에야 풀렸다.

환경운동연합 현장상황실 활동가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현장상황실 활동가들이 촛불집회를 하고 있다.

이포보 쪽에서 “야”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박평수 집행위원장과 장동빈 사무국장이었다. 둘 모두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차림이다. 이혜경 정책실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부르셨어요? 준호씨와 수경씨가 선식 체험한다니 기대하세요.” 마이크와 앰프를 통과한 소리가 이포보 상판까지 전달되는 듯했다.

 
박 집행위원장은 두 팔로 엑스자를 만들어 보이고는 손을 흔들었다. 최준호 팀장은 의자 위에 올라가 1.5ℓ짜리 생수병에 든 선식을 마셨다. 망원경 너머 박 집행위원장은 양 팔을 벌려 체조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에 장 사무국장은 천막 안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염형철 사무처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현장상황실 활동가들은 일몰 직전인 7시30분쯤부터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장승공원 입구에서 상황실 천막으로 올라가는 10여m 길이의 진입로에 걸려 있는 줄부터 치웠다. 줄에는 가로 세로 40여cm크기의 천조각 수백장이 걸려 있다. 천조각에는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정부의 4대강 사업을 비판하고 이포보 농성자들을 격려하는 내용으로 써놓은 글이 적혀 있다.

농성 초기만 해도 활동가들은 텐트를 쳐놓고 밤을 새웠다. 그러나 4대강 사업을 찬성하는 이 지역 주민들과 단체 회원들이 농성 시작 나흘 만인 지난 7월25일 5시20분쯤 현장상황실에 난입하는 사건이 일어난 이후부터는 오후 10시가 되기 전에 이곳에서 철수한다. 당시에는 현장을 방문한 유원일 창조한국당 의원이 이들에게 폭행을 당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한수경 간사는 “지금은 경찰이 양측간 충돌을 방지한다는 입장이지만, 그날 경찰은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역주민과 마찰 피해 밤에는 철수
상황실 활동가들은 오후 7시40분에 촛불집회를 시작했다. 평소에는 이곳을 방문한 단체나 시민 20~30여명과 함께하는 집회였지만, 이날은 상황실을 지키는 활동가 8명이 전부였다. 이포보 상판 농성 천막에서도 불빛이 올랐다. 날이 이미 어두워 불빛을 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활동가들은 3행시를 지었다. 박창식 상황실장은 “‘사’랑해요, 박염장(박평수, 염형철, 장동빈) 형제 여러분. ‘대’단해요, 형제 여러분. ‘강’해져야 해요”라고 말했다. 한수경 간사가 이어받았다. “‘사’기 치지 마세요. ‘대’충 얘기하지 마세요. ‘강’을 가지고.”

8시쯤부터 트로트 노랫소리가 들렸다. 노래는 쉬지 않고 메들리로 나왔다. 장승공원 앞 국도변 맞은편에 자리잡은 4대강 사업 찬성 주민들의 천막에서 나오는 소리다. 천막 앞에 앉은 중년 남자 두 사람은 의자에 앉은 채 활동가들이 남은 짐을 차량에 싣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았다. 그들이 응시하는 방향으로 길을 따라 내걸린 현수막에는 이런 문구들이 쓰여 있었다.

“1500년 만에 찾아온 발전기회 외지인은 막지 마라.” “너희가 수해 피해 고통을 아느냐.” “환경파괴 웬말이냐. 한강살리기가 환경을 개선한다.” “여주지역 발전 한강살리기가 선도한다. 외지인은 간섭마라.”
오후 8시20분, 이포보 상판 천막은 어둠에 잠겨 보이지 않았다.


<글·사진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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