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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 덕에 살림살이 나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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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고향마을과 주변 발전상 지역마다 제각각

대통령 생가 주변 마을 사람들은 어떤 혜택을 보았을까? 정치무대에서는 출사표 전 방문, 기념화 등 대통령 생가에 대한 정치적 함의를 부여하고 있지만, 정작 대통령 고향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의 반응은 대부분 ‘시큰둥’이었다. 

[커버스토리]생가 덕에 살림살이 나아졌나?

“고향이라지만 뭐 하나 제대로 해놓은 것이 없다”는 것. 실제로 상당한 예산이 투입되었지만 ‘국부(國父)’를 낳았다는 자부심과 기대감엔 턱없이 모자라다는 반응이다.

게다가 ‘권불십년’이라 했던가? 생가라고 해서 모두 지속적인 관심을 받는 것은 아니다. 권력의 속성처럼 생가도 부침을 거듭해 대통령이 퇴임한 뒤 생가 주변이 상당한 개발이 이뤄진 곳도, 상대적으로 큰 변화를 보이지 않는 곳도 있다.

대통령 인기 따라 주변 개발 활발
대통령 퇴임 후 가장 많은 발전상을 보인 곳, 특히 현재진행형인 곳은 단연 김해의 봉하마을이다. 산 아래 평지에 소박한 시골 살림집들과 논, 밭 등으로 구성돼 있던 이 마을은 최근 몇년새 많은 변화를 보였다. 퇴임한 노 대통령의 사저가 들어섰고, 이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이후 묘역까지 이곳에 마련되면서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몰리게 된 것. 자연히 이들을 맞이하기 위한 시설들이 속속 들어섰다. 주차시설은 물론이고 관광안내센터, 매점, 특색 있는 먹을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주변 도로에 생겼다. 대통령 생가는 원형 그대로 복원됐고, 봉하를 찾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테마장터, 주말농장 관련 시설들도 들어섰다.

현재 봉하마을은 165억원이 투자돼 종합복지관, 정자, 생태연못, 생태체험장 등을 갖춘 ‘웰빙 생태마을’로 변신 중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뒤 애정을 쏟았던 친환경 생태농업이다. 노 전 대통령은 고향으로 돌아온 첫해 사전준비가 없었음에도 14명의 마을 주민들을 설득해 친환경쌀 작목반을 구성하고, 2만4000평 논에서 무농약 오리농법을 시범적으로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24만평의 논에 오리농법 4만3000평, 우렁이농법 19만7000평으로 확대했다. 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봉하재단은 지난 7월 일본 효고현에서 열린 ‘제1회 생물의 다양성을 키우는 농업국제회의’(생물다양성 농업국제회의)에 한국 대표로 초청받아 봉하마을의 친환경 생태농업 현황 및 성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 덕에 홍보효과는 100%. 2009년 24만평에서 거둔 봉하쌀은 매진됐고, 올해는 친환경 무농약쌀 재배면적을 32만평, 생산량은 600여t을 목표로 하고 있다. 떡국용 떡, 미강 누룽지 등에 이어 현미쌀국수, 쌀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봉하쌀 가공식품도 개발 중이다. 봉하재단 관계자는 “친환경 농사에 함께 하는 마을 주민들과 대통령의 유지인 ‘아름답고 살기좋은 농촌마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봉하마을 입구에서 자원봉사자가 노란색 바람개비를 만들어 나누어 주고 있다. |조득진 기자

봉하마을 입구에서 자원봉사자가 노란색 바람개비를 만들어 나누어 주고 있다. |조득진 기자

봉하마을은 인구도 늘었다. 마을회관 뒤편으로는 아기자기한 빌라들이 함께 들어섰는데, 주로 대통령을 따라 들어와 새로 마을 주민이 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김해시의 발전도 눈부시다. 매년 20%가 넘는 인구증가율로 지난해 47만명을 넘어서 도청소재지인 창원(50만명)을 위협할 정도다. 봉하마을로 들어가는 간선도로 양 주변 일대에는 산업단지처럼 공장들이 즐비하다. 2차로 도로가 4차로 도로로 확장됐으며, 주변 아파트들도 많이 들어섰고, 건설 중인 아파트들도 눈에 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시 또한 ‘IMF도 피해갔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주변이 달라졌다. 도시 전체가 공사판이라 할 정도로 개발이 한창이라 자고 일어나면 새 도로, 새 건물이 들어서는 등 발전 속도가 상당히 빠르다. 특히 내년 초 개통 예정인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는 대통령 고향도시 발전의 획기적인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인다. 거가대교는 김 전 대통령 생가가 위치한 거제시 장목면과 부산 강서구 천성동 가덕도를 잇게 된다. 또한 장목면에 대규모 체류형 휴양리조트 단지가 들어설 계획이어서 김 전 대통령 생가 역시 더 많은 관광객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 전 대통령의 생가가 위치한 대계마을은 전형적인 어촌이다. 멸치잡이 등 수입이 좋아 주변 주택 50여채 상당수가 새로 신축한 건물이며, 바닷가엔 펜션도 서너 채 들어섰다. 지난 6월 대통령기록전시관 개관 이후 생가 주변 건어물 공판장은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생가 바로 앞 건어물 매장 주인은 “마을을 가로지르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80여 가구가 모여 사는데 전직 대통령의 출생지라는 자부심이 상당히 강하다”며 “부친인 김홍조 옹이 작고 전까지도 이따금 찾아와 머물렀을 정도로 관리를 했기 때문에 친근감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거제도 옥포조선소 부근에서 만난 식당 주인의 평가는 다르다. “가끔 관광객들이 찾아와 ‘갈 만하냐?’고 묻지만 추천하지 않는다”는 그는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 없으면 이 거제도는 죽은 도시인기라. 동네에 해놓은 것이 없다 아이가”라고 불평했다.

박통·DJ 생가는 공원화 계획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가 있는 구미시 상모동 일대를 비롯해 구미 전체는 70년대 이후 상전벽해를 이뤘다. 박 전 대통령 취임 당시 논밭이었던 상모동 일대는 아파트와 고층건물로 빼곡하고, 인근에는 국가산업단지가 들어섰다. 

박 전 대통령 재임시절 구미산업단지를 대표적인 국가공단으로 자리매김해 놓으면서 현재는 연간 350억달러 이상을 수출하는 전진기지로 자리잡은 것. 대기업 상당수가 들어서 경북 경제성장의 원동력 역할을 해오고 있다. 이와 함께 경북지역 23개 시·군 중 인구가 갈수록 늘고 있는 대표적인 도시로 탈바꿈시켰다.

관광버스가 들어오면 주변 건어물공판장도 바빠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주변 모습.

관광버스가 들어오면 주변 건어물공판장도 바빠지는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 주변 모습.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일대는 공원화가 한창이다. 구미시는 200여억원을 투입해 박 전 대통령 생가가 있는 상모동 7만7591㎡ 터에 대규모 기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1970년대 시대촌과 생가 복원, 2000명 수용 규모의 옥외광장, 진입로 감나무숲, 새마을 기념정원 등이 들어선다. 생가 주변 공원화사업과 연계해 ‘대한민국새마을운동테마파크’도 조성된다. 2014년까지 1500억원을 들여 박 전 대통령 생가 주변 60만㎡에 건립된다. 새마을운동을 한 자리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새마을운동 기념비적 역사공원으로 만든다는 게 시의 구상이다. 박 전 대통령 생가 앞에는 홍보영상관과 동상도 들어설 예정이다.

이색적인 것은 박 전 대통령 생가 앞 광장엔 장사치가 없다는 것. 시에서 나온 직원은 “특히 주말이면 굉장히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드는데 장사꾼들이 하나둘 모이게 되면 걷잡을 수 없기 때문”이라며 “게다가 광장 바로 앞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어 장사를 금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도 올해부터 ‘노벨평화공원’으로 탈바꿈한다. 전남도와 신안군은 김 전 대통령의 생가 일대에 85억여원을 들여 노벨평화상 기념관과 전망대 등을 갖춰 2013년까지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아직까지 하의도 주민들은 대통령 생가 덕을 보지는 못한다. 방문객 수가 늘었다고는 하지만 하루 50명 수준이어서 상권이랄 게 형성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의면 박상명 부면장은 “대부분 아침 배로 들어왔다가 오후 배로 나가는 바람에 지역 상권이 보는 혜택은 없다”며 “그나마 대형버스가 들어오는 날에도 대부분 음식을 마련해 온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 재임 때부터 논의되었던 하의도와 인접한 능산도, 하태도 등을 연결하는 연륙교 건설 계획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하의면 주민들 사이에서는 “내 생전에 걸어서 목포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 대신 바닷길로 500m 정도 떨어진 신의도와 연도교 공사를 시작해 그나마 기대를 하고 있다. 신의도와 연도교가 완공될 경우 신의도에 나가 배를 타면 진도까지 30분 정도면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완공 시기는 5년으로 보고 있지만 예산 집행이 문제다.

재임 땐 자제, 퇴임 땐 약발 안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의 고향은 길만 뚫렸을 뿐 이렇다 할 발전상은 없어 보인다. 특히 노태우 전 대통령 고향마을의 경우 역대 대통령 고향 가운데 가장 변화가 없는 곳으로, 팔공산 순환도로 밑 자그마한 산골동네의 모습은 20년 전이나 매한가지다. 노 전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새 건물이 들어서거나 도로가 정비된 곳도 없다. 다만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고향 뒤편인 팔공산 자락에 순환도로를 냈다. 시민들의 팔공산 접근성을 크게 높였지만, 당시 환경파괴 논란도 빚어졌다.

동네 사람들의 숙원사업은 마을 진입로 확장 건이다. 노태우 대통령의 조카뻘이라는 노모씨는 “마을 진입로 3㎞가 외길로 되어 있으나 초입에 전원주택이 많아 공사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외길이라 심야에 사망사고도 발생했지만 민원을 제기해도 길 하나 나기가 어렵다고. “동네사람들이 ‘조카들이 살고 있으면서 뭐 하냐?’고 해 창피할 정도”라는 그는 “이명박 대통령 생가에 가보니 태어나지도 않은 곳에 신작로는 잘 뚫어 놓았더라”고 불만을 나타냈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생가 주변도 상황은 비슷하다. 생가가 있는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는 인근에 1034번 지방도가 새로 생긴 것을 제외하고 재임 당시인 80년대 초반과 큰 변화가 없다. 실제 내천리를 포함한 율곡면 인구는 80년 당시 6900여명이었으나 지난해 2900여명으로 줄었고, 당시 분교를 포함한 6개 초등학교가 있었으나 현재 1개 초등학교만 남았다. 다만 재임 당시 착공한 합천댐의 건설로 일대가 관광자원으로 개발됐다.

대통령 생가를 보면 재임 기간 중에는 외려 여론을 의식해 상대적으로 개발이 더딘 곳도 있고, 퇴임 후엔 새 정권에 의한 ‘밟고 서기’ 등으로 ‘약발’이 서지 않은 곳 등 ‘생가 프리미엄’도 제각각이다. 그러나 개발이 진행 중이든, 계획이 보이지 않든 대통령 생가마을 주민들은 ‘그래도 대통령 생가마을인데…’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고 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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