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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평가는 퇴임 이후 하기나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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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임시 과오 있더라도 만회 가능… ‘성공한 대통령’으로 거듭나

국민들의 손가락질 속에 퇴임 당시 지지도 22%, 키가 작아(175㎝) ‘리틀 맨’이라는 별명까지 붙은 그는 후임 대통령의 노골적인 냉대 속에 쓸쓸히 낙향했다. 그는 고향인 미주리주의 작은 통나무집에서 육군연금 111 달러에 만족하며 대기업의 고문자리조차 “대통령직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안 된다”고 거부한 채 조용히 회고록을 집필하며 지냈다.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한 행사에서 손을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그러나 마침내 그의 검소함과 겸허함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의회는 그를 위해 ‘퇴직 대통령 예우법’을 최초로 제정하였고, 그의 별명도 ‘리틀 맨’에서 ‘리틀 빅 맨’(작은 거인)으로 바뀌었다. 그는 바로 미 33대 대통령 해리 트루먼이다. 그에 대한 인간적 평가가 달라지자 재임시 논란이 많았던 일본 원폭 투하, 한국전 참전, 맥아더 해임 등 국내외 정책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트루먼은 오늘날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지도자’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미국 카터, 퇴임후 활동으로 인정
대통령은 재임시 못지않게 퇴임 이후가 중요하다. 왜냐하면 재임시의 업적이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고, 설령 재임시에 과오가 있더라도 퇴임 이후에 회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평균수명이 늘어나 퇴임 이후 활동 기간이 예전보다 훨씬 길어졌다. 그래서 재임 중에 실패했더라도 퇴임 이후에 잘만 하면 점수 만회는 물론 얼마든지 성공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시대가 왔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다. 시골 땅콩농장주 출신인 그는 재임 4년 동안에 정치·경제·외교 전반에 걸쳐 확실하게 ‘실패한 현직 대통령’으로 낙인이 찍혔지만, 퇴임 이후 고향에 카터센터를 만들고 사랑의 집짓기 운동 등 왕성한 활동을 펼쳐 노벨평화상까지 받으며 확실하게 ‘성공한 전직 대통령’으로 인정받았다.

우리에게 워터게이트 사건과 ‘실패한 대통령’의 전형으로 상징되는 37대 대통령 닉슨도 고향 캘리포니아에 내려가 10년 넘게 은둔하다가 1980년대 말에 러시아연방과 제3세계에 대한 국제평화 외교활동을 펼쳐 호평을 받았다.
 
그는 자신의 유언에 따라 국장(國葬)을 치르지 않고 고향에 있는 부인의 묘지 곁에 묻혔다. 클린턴 대통령은 재임 8년 동안 요란한 성추문에도 불구하고 퇴임 이후에는 강연과 환경운동 등으로 활발한 외조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통령은 어떠한가? 이승만-윤보선-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9명의 전직 대통령 중에서 퇴임 이후가 ‘아름다운 사람’은 누구인가? 망명, 암살, 투옥, 자살, 그리고 정치적 논란…. 한결같이 비극과 찜찜한 이미지를 떠올리게 한다.

아직은 이르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퇴임 이후 유쾌한 대통령이 될 수 있을까? 현 정부 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현 정부를 비판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그리고 훗날을 단단히 벼르고 있는 박근혜 전 대표의 지지세력들을 생각하면 이 대통령의 퇴임 이후도 결코 편하지 않을 것 같다. 도대체 왜 우리는 재임시는 고사하고 퇴임 이후가 행복한 대통령을 갖지 못하는 것일까?

지난해 8월 4일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8월 4일 미국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북한을 방문한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꽃다발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첫 번째 이유는 과도한 권력욕이 아닐까 싶다. 영국의 <파이낸셜타임스>가 2007년 칼럼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최고권력자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강조했듯이,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의 권력 의지는 지나치게 강한 것 같다. 그래서 재임 중에 한몫 챙기려고 하거나 후계구도를 밀어붙이려고 든다. 이런 현상은 페루의 후지모리, 필리핀의 에스트라다, 베네수엘라의 페레스 전 대통령처럼 동남아나 남미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이제 우리 대통령은 재임 중에 권력욕이 지나치면 불행한 퇴임 이후를 맞게 된다는 권력의 법칙을 명심하고 겸허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두 번째는 비정치적 활동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은 퇴임 이후 환경이나 가난, 장애인, 질병, 국제평화와 같은 비정치적 활동에 주력하는 데 비해 우리 대통령은 정치현안이나 남북문제처럼 극히 민감한 영역을 건드려 정치적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미국도 과거 피어스(14대), 앤드루 존슨(17대), 후버(31대) 대통령이 퇴임 이후 정치활동에 주력했는데, 공교롭게도 이들은 모두 실패한 대통령의 범주에 포함되었다. 구소련의 고르바초프 대통령도 동서 해빙의 대위업을 달성했지만 퇴임 이후 줄곧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려다 명성에 상처를 입은 경우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 42명 가운데 임기 중 사망한 8명과 우드로 윌슨 대통령 1명을 제외하고 나머지 33명이 퇴임하자마자 고향으로 낙향한 것도 현직 대통령에게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였다. 결국 퇴임 대통령은 비정치적이어야 성공할 확률이 높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권력욕 버리고 비정치적 활동해야
세 번째는 현직 대통령의 차별화 지상주의로 인한 정치보복 논란이다. 새로 출범한 정권은 과거 정권과는 다르다는 차별성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전직 대통령과 측근들에게 철퇴를 가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정치보복 논란에 휩싸이곤 했다. 이는 후진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치후진 현상이니만큼 차제에 우리는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 외에도 전직 대통령의 참모들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옛 보스’를 정치권에 끌어들여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최고지도자들의 ‘퇴임 문화’를 보면 세 가지 법칙이 발견된다. 첫째는 재임 중에 성공한 대통령은 퇴임 이후에도 행복했다. 재임 중에 성공했는데 퇴임 이후에 불행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법칙 두 번째는 재임 중에 실패한 대통령은 어김없이 퇴임 이후에도 불행했다. 재임 중에 권력을 남용했거나 부패한 대통령은 거의 틀림없이 퇴임 이후에도 불행하거나 비참했다. 법칙 세 번째는 재임 중에 실패한 대통령일지라도 퇴임 이후에 활동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루먼, 카터, 클린턴 등이 보여주었듯이 설령 재임 중에 과오가 있었더라도 퇴임 이후에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얼마든지 성공한 지도자로 거듭날 수 있다.

우리가 가장 원하는 것은 당연히 첫 번째 법칙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법칙 세 번째라도 좋다. 이명박 대통령은 어느덧 임기 절반에 도달하여 앞으로 2년 6개월 후면 전직 대통령이 된다. 이 대통령이 불행한 퇴임 대통령으로 또다시 등장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새롭고 선진적인 정치문화를 창출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길 간절히 바란다.

최진<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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