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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재난·전쟁터엔 ‘마이크 든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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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옥 전 KBS 파리특파원 회고록‘여자특파원 국경을 넘다’ 출간

“아니 여자가 어떻게 간첩 리포트를 하나?”
“숙직을 한다고 했다면서? 여자가 어떻게 숙직을 해?”
기자생활 초기에 남자 선배들로부터 이런 말을 들으면서 일했던 여기자가 입사 17년 만에 파리 특파원이 돼 이라크 전쟁과 터키 지진, 코소보 내전 현장을 누볐다. KBS 국제부 기자를 거쳐 파리특파원, 국제협력 주간과 해설위원을 지낸 뒤 지난해 말부터 한국방송협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는 이정옥씨다. 그가 자신의 30년 방송기자 생활을 회고한 책 <여자특파원 국경을 넘다>(행간)를 펴냈다.

[문화]국제 재난·전쟁터엔 ‘마이크 든 그녀’

“지난해 가을 문득 국제부 신참기자 시절 국제부장이 내게 ‘여자가 어떻게 이란, 이라크전을 취재하나?’라고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그 부장의 모습과 취재현장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기자생활 30년의 단상들이 책장 넘기듯이 나의 뇌리에서 빠른 속도로 되살아났습니다.”

당시 메모가 남아있을 리 없지만,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라서 한달 만에 책을 완성했다. 그의 책은 개인사의 기록인 동시에, 한 여성이 남성중심적인 사회에서 어떻게 자신의 일을 확보해 왔는지, 그리고 국제뉴스의 흐름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을 갖는다.

불문학도였던 저자는 외국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국제부를 지원했다. 처음에는 외신기사를 번역하는 게 국제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급변하는 국제 정세, 서로 다른 관습과 문화, 역동적인 국제관계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됐다. 그러나 기자 초년병이던 1980년대 초반에 여기자에게 맡겨진 국제부 기사는 다이애나 황태자비의 결혼 소식이나 해외토픽 같은 연성 뉴스뿐이었다. 교도통신 발로 동해상에 나타난 간첩선 리포트를 썼으나 수습기자인 남자 후배에게 녹음을 맡겨야 했다.

성차별·국경 넘은 30년 기자생활

[문화]국제 재난·전쟁터엔 ‘마이크 든 그녀’

어느 날 저자는 팩스 심부름을 가다가 파리 기자학교 모집공고를 우연히 발견해 해외로 향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으며, 88올림픽을 전후해 국제적인 명사들을 만날 기회를 얻었다. 1993년에는 방송기자 사상 최초로 회교 원리주의 국가인 이란에 들어가 차도르를 쓰고 TV 다큐멘터리 <차도르에 부는 개방바람>을 취재, 방송했다.  

“1990년대 초 걸프전을 계기로 취재현장에 변화가 왔습니다. 프랑스에서는 휴가를 떠난 남자 기자들을 대신해 여기자들이 전쟁 취재에 나섰고, 국내에서도 여기자의 전쟁지역 취재가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요.”

이씨는 1997년 파리특파원으로 부임한다. 입사 초기에는 이뤄질 수 없는 꿈처럼 보였던 일이다. 그후 3년간 파리에 체류하면서 프랑스, 유럽뿐 아니라 인근 중동 지역에서 전쟁이나 지진처럼 큰 뉴스가 터지면 언제든지 출동하는 비상대기조 같은 근무를 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습하자 요르단으로 날아갔고, 인종과 종교의 차이로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내전 현장에서 전쟁으로 피폐해진 세르비아와 알바니아인들의 참담한 삶과 운명을 목격했다.

그러나 여기자로서 국제무대의 현장에 서기까지 이루 말할 수 없는 ‘속앓이’를 겪었다고 털어놓았다. “고집이 세다거나 건방지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남자 동료들의 언행에 즉각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갈등과 괴리가 컸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 방송국 생활을 마감한 그는 “기자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예멘과 이란을 가보았겠느냐”면서 기자생활을 통해 가장 깊이 느낀 것으로 “다양한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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