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끝에서 죽음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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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와 <감각의 제국>

남녀 사이의 끌림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어떤 과학자들은 서로에게 작용하는 페로몬 탓이라고 했고, 어떤 과학자들은 우생학적 이유에서 서로 유전적, 혈연적으로 관계가 먼 대상에게 끌리는 현상이라고 했다. 정신의학자들은 무의식에 깃든 콤플렉스의 부름에 응하는 태도라고 했고, 신비주의자들은 여러 생을 거듭하며 영적 성장을 도모하는 소울 메이트들이 동류로서 서로를 느끼는 것이라고 했다. 

소설 <성에>는 폭설로 한 농가에 고립된 남녀가 세 구의 시체를 만나면서 벌이는 성의 향연과 사랑이란 환각을 그렸다. 사진은 폭설이 내린 강원도 강릉의 한 마을. |연합뉴스

소설 <성에>는 폭설로 한 농가에 고립된 남녀가 세 구의 시체를 만나면서 벌이는 성의 향연과 사랑이란 환각을 그렸다. 사진은 폭설이 내린 강원도 강릉의 한 마을. |연합뉴스

한 여자가 있다. 직장 후배로 들어온 동갑내기 남자에게 첫 눈에 반한다. 자신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그에게는 약혼녀가 있기에 괴로워하던 여자는 생애 최고의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편지를 보낸다. 남자는 즉각 점심식사를 제안한다. 식사 끝에 남자는 “우리, 도망갈까?”라고 부추긴다. 승용차를 몰고 강원도로 떠난 남녀는 폭설에 갇혀 그날 밤 서울로 돌아오지 못한다. 휴게소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내다가 들뜬 기분에 겁도 없이 깜깜한 눈길로 산책을 나가고, 거기서 길을 잃고 만다.

김형경의 장편소설 <성에>(2005년)는 어떤 비슷한 작품도 찾기 어려울 만큼 독특하다. 금지된 사랑을 시작한 두 남녀가 폭설 속에 갇히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더라도, 폭설 속에 고립된 한 농가에서 일주일 간 벌어지는 일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소설은 사랑의 본질인 환상, 어느 순간 사랑이라는 환상과 분리돼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성적 본능, 그리고 쾌락의 극한점에서 경험하는 죽음충동 등 정신분석의 주요한 개념들을 소설로 풀어놓았다. 흔히 접할 수 있는 인물의 정신분석이 아니라 정신분석의 인물화인 셈이다.


성적 본능, 그리고 쾌락의 극한점
소설의 주인공 연희와 세중은 밤길을 헤매다 아무도 없는 농가를 발견한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엎어진 남자의 시체를 발견한 두 사람은 안도의 숨을 내쉬기도 전에 바로 경악한다. 그리고 극도의 공포 속에서 성을 나눈다. 다음날 아침 둘은 집을 나서지만 연희가 마당에서 뭔가에 걸려 넘어져 발목을 삐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이들이 머문 농가에는 죽은 남자의 것으로 보이는 일기장과 물건들, 그리고 야무지게 살림을 꾸려간 여자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동네를 살피던 세중은 바로 아랫집에서 또 다른 남자의 소유로 보이는 배낭을 발견한다. 그리고 마당의 눈을 치우다가 연달아 두 구의 남자와 여자 시체를 발견한다.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쾌락의 극단에 존재하는 죽음 충동을 발견한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 원칙을 넘어서’에서 쾌락의 극단에 존재하는 죽음 충동을 발견한 정신의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

현대사회에서 죽음은 철저히 삶과 분리돼 관리된다. 자신이 살던 집이 아니라 병원 중환자실에서 숨을 거두고, 시체는 바로 냉장고에 보관됐다가 유족들이 유리창을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마스크와 장갑을 낀 전문가에 의해 염습과 입관이 이뤄진 다음, 화장을 거쳐 안전하게 밀봉된 유골 항아리가 전달된다. 더구나 금지된 사랑의 미열에 취한 청춘남녀에게 죽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연희와 세중은 죽음과 대면하면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하기 시작한다. 그것만이 자신들이 처한 상황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현실의 위협 속에서 지극히 민감해진 그들의 감각과 생명력은 성관계를 더욱 강렬하게 몰아가고, 원초적 본능 앞에서 수치와 금기의 장벽은 점차 무너진다. 두 사람은 낙원을 잃어버린 아담과 이브처럼 시체로 둘러싸인 빈 집에서 목숨을 유지하고 공포를 물리치기 위해 부지런히 몸을 놀려 일하고 사랑을 나눈다.

한편 두 사람은 남자가 남긴 일기장을 통해 죽은 세 사람의 관계를 추측해보는데, 이들의 사연은 참나무와 박새, 청설모, 바람의 시점에서 더욱 자세하게 독자들에게 알려진다. 연희, 세중의 이야기와 교차해 진행되는 또 다른 이야기 속에서 남자는 세계일주를 하기 위해 1960년대 말에 남한으로 도망쳐 온 탈북자다. 그는 서울생활에서 실패를 맛본 뒤 강원도 화전민 마을로 들어온다. 원래 산사람이던 여자는 휴게소에서 일하다가 식품회사의 배달원을 만났다. 그를 따라 서울로 가서 살림을 차리고 아이까지 낳았으나 갑자기 들이닥친 부인에게 쫓겨나 산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아랫집에 한 사내가 더 있다.
 
사업에 실패해 아내와 자식을 잃은 그는 5·16 군사혁명 때 어떤 정치세력이 정치자금으로 숨겨놓았다는 보물을 찾기 위해 나침반과 지도를 들고 온 산을 뒤진다. 

여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남자와 사내는 형님, 아우 사이였다. 그런 둘 사이에 낀 여자는 살림을 차린 남자와는 방에서 점잖게, 나중에 만난 사내와는 숲에서 격렬하게 성을 나눈다. 남자와 사내는 암묵적으로 삼각관계를 인정했으나 점차 독점욕과 질투가 자라나기 시작한다. 더구나 여자는 누구의 아이인지 모를 아이를 임신했다. 어느 날 한동안 마을을 떠났던 사내가 돌아와 여자를 덮치려고 하자 임신한 여자는 이를 거부한다. 밖에서 돌아와 이 장면을 목격한 남자는 분노에 떨면서 낫을 휘두르다가 실수로 여자를 찌른 뒤 사내와의 몸싸움 끝에 먼저 쓰러진다. 몸을 피했던 여자는 옆구리에서 피를 흘리며 방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밖으로 나오는 사내를 도끼로 찍어 쓰러뜨리고, 자신도 그 옆에 쓰러진다.

처음 시체들과 맞닥뜨렸을 때 죽음의 세계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공포를 느꼈던 연희와 세중은 점차 죽은 이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냥 날이 풀릴 때까지 며칠 기다렸다가 떠날 수도 있으나 다른 사람들이 세 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경찰이 수사에 들어가면 연희와 세중이 그곳에 머물렀던 사연 또한 낱낱이 밝혀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서로의 육체에 중독된 두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체류를 연장시키고자 한다. 여러 날의 노동을 통해 눈을 치우고 구덩이를 파고 시체들을 옮겨 뼈를 부러뜨린 뒤 똑바로 눕히고 담요를 덮고 간단한 의식을 치러가며 매장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덮고 옷가지와 살림살이를 모조리 불태워 그들의 흔적을 없앤다.


나날이 격렬해지는 성관계, 죽음을 열망
두 사람의 성관계 역시 나날이 격렬해진다. 남녀의 성행위에는 문화와 관습이 각자에게 부여한 코드와 환상이 개입한다. 그러나 관계가 거듭되면서 성에 연루된 허위와 가식이 하나씩 벗겨지고 순수한 일치감을 느끼며, 나아가 죽음을 열망한다. 죽은 여자의 속옷을 입고 서로의 얼굴에 재를 바르고 물어뜯고 때리고 목을 조르면서 삶의 충동인 에로스와 나란히 존재하는 죽음의 충동인 타나토스를 드러낸다. 프로이트는 <쾌락원칙을 넘어서>에서 자기를 파괴하고 생명이 없는 무기질로 환원시키려는 죽음 본능을 가설로 제시했는데, 이는 상실의 고통을 느끼기 이전의 모체와 합일된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된다.

에로스와 타나토스의 치환이라는 정신분석의 주제는 오시마 나기사의 영화 <감각의 제국> (1976년)에서도 적나라하게 제시됐다.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이 한창인 1936년, 아베 사다란 여성이 자신의 애인 이시다 키치조를 목 졸라 죽이고 그의 성기를 자른 실제 사건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그 해 칸영화제에서 상영돼 서구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7년간 상영이 금지됐다. 

1936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베 사다의 성기절단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감각의 제국>.

1936년 일본 열도를 떠들썩하게 만든 아베 사다의 성기절단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감각의 제국>.

예술이냐, 외설이냐의 논쟁을 불러일으킨 <감각의 제국>의 이야기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아베 사다(마츠다 에이코 분)는 유부녀지만 돈 때문에 도쿄의 기생집 요시다야에 들어간다. 어느 날 자신을 무시하는 동료와 싸움이 붙어 주인의 눈에 띄고, 주인집 하녀가 된다. 돈은 있지만 빈둥거리며 감각적 삶에 빠져 살던 주인 이시다 키치조(후지 나츠야 분)는 사다의 관능을 알아채고 그녀를 유혹한다. 

두 사람은 키치의 부인을 피해 여관에 방을 얻어 살림을 차리고 육체적 쾌락을 추구한다. 이 때부터 키치에 대한 사다의 욕정과 집착은 커지기 시작한다. 

둘은 여관 종업원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섹스에 몰두한다. 그러면서 주인과 하녀의 수직 관계가 역전돼 키치는 사다의 성적 노리개로 전락한다. 돈이 떨어지자 사다는 교장 선생님을 만나 매춘을 한다. 키치가 잠깐 집에 다녀오자 사다는 키치의 부인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칼을 물고 다가온다. 그리고 키치의 치모를 잘라서 먹는다. 점점 앙칼지고 난폭하게 변하던 사다는 잠깐 산책을 나갔던 키치에게 심한 히스테리를 부린다. 또 성관계 중 서로 목을 조르면 더욱 흥분된다면서 사도마조히즘을 요구한다. 키치가 이에 응하자 사다는 아예 그가 저항하지 못하도록 손을 묶은 채 목을 조른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여서라도 독점
키치가 사지를 경련하면서 숨을 거두자 사다는 칼로 키치의 성기를 자르고 그의 피로 이불과 시체에 ‘사다와 키치, 둘이서 영원히’란 글자를 쓴다. 영화는 이후 상황을 자막으로 소개한다. 키치를 죽인 지 나흘 만에 체포된 사다의 손에는 종이로 싼 키치의 성기가 들려 있었다. 사다의 이야기가 알려지자 전쟁에 지쳐 있던 일본인들은 관심과 동정을 보였고, 그녀는 살인자임에도 6년형을 언도받는 데 그쳤다.

이 영화에서 사다는 정신분석 용어로 우울증 환자다. 우리의 삶은 어머니 몸에서 떨어져 나오는 순간부터 상실의 연속이어서 끊임없이 뭔가를 갈구하고 그리워하고 허전해 한다. 그런 상실의 아픔을 제대로 극복해 자아 상실에 빠지지 않는 게 애도인 데 비해 우울증은 자신을 잃어버리고 나아가 남을 파괴하고 싶은 충동에 빠지는 것이다. 이를 연인과의 관계에 대비해 보면, 연인이 자신을 실망시키거나 둘 사이의 사랑이 점점 식어갈 때 보통 사람은 이를 애도하면서 다른 대체물을 찾아 상처를 회복한다. 그러나 우울증 환자는 자신을 파괴하고 싶은 죽음에의 충동에 빠지거나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는 도착증세를 보인다. 도착이란 대상이 너무 강조된 나머지 그것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생기는 것이다. 

사다는 키치를 끝없이 소유하고자 한다. 그를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기 때문에 죽여서라도 독점한다. 사다가 키치를 교살한 게 실수였는지, 고의였는지는 불분명하다. 사다의 도착증은 이 영화를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환유로 읽도록 만든다. 제국주의란 너와 나를 동일시해서 하나로 보는 지배논리이기 때문이다. 사다가 키치를 취한 방식으로 제국은 피지배국을 강제로 손아귀에 넣는다. 사다와의 유희에 지친 키치가 초췌한 몰골로 거리에 나갔을 때 마주친 황군의 행렬과 일장기를 흔들면서 열광하는 군중의 모습은 명백히 제국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감각의 제국>의 사다와 달리, <성에>의 연희는 삶을 회복한다. 이는 세중이라는 대상의 상실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하며, 그 수단은 환상이다. 시체를 매장한 두 사람은 빈 집을 나와서 불과 한 시간 거리인 휴게소로 돌아오고 서울에 도착한다. 충격적이고 비현실적인 경험을 공유한 이들은 각자 12년의 세월을 보낸다. 그 후 한 아이의 엄마가 된 주부 연희와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인류학 교수가 된 세중이 재회한다. 두 사람은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 섹스를 나눈다. 

이 소설은 결말부에서 독자의 허를 찌른다. 강원도에서 돌아온 뒤 세중은 바로 회사에 사표를 낸 뒤 사라졌고, 그의 사랑을 믿었던 연희는 회사의 한 여자 선배로부터 세중이 그 선배에게 구애를 했다가 거절당한 뒤 자신과 충동적으로 강원도 행을 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연희가 생각해온 사랑의 도피는 처음부터 착각, 즉 환상이었다. 그러나 연희는 세중과의 사랑이 자신의 환상인줄 알면서도 무덤덤한 현실이 괴로울 때마다 강원도의 추억을 떠올리면서 그 위에 자신의 생을 하나씩 쌓아올렸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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