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한국문학

신문 연재 시대 가고 인터넷 연재시대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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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씨는 장편 <장길산>을 1974년부터 무려 10년 동안 한국일보에 연재했다. 그 시절 그는 원고가 잘 풀리지 않을 때면 어디론가 잠적, 문학 담당 기자들을 괴롭혔다. 당시 한국일보 기자인 소설가 김훈씨도 사라진 황씨를 찾아다니느라 피 말리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문단 안팎에 잘 알려진 일화다.

[인터넷과 한국문학]신문 연재 시대 가고 인터넷 연재시대 오다

숱한 에피소드를 뿌리던 신문연재의 시대는 끝났다. 작가들이 흘려보낸 소설의 강줄기들은 이제 인터넷의 바다로 모여든다. 그 바다에서는 작가들이 고단한 문필 노동을 안간힘으로 밀어붙여 흘려보낸 작품들을 독자들이 한 번의 클릭으로 맛보고는 제 일상의 공간으로 유유히 헤엄쳐 돌아가는 일이 날마다 벌어진다. 소설의 인터넷 연재는 지금 문학계의 확실한 주류다.

지난 2007년 소설가 박범신씨와 황석영씨가 각기 <촐라체>와 <개밥바라기별>을 연재했을 때만 하더라도 인터넷 연재는 하나의 실험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이 독자와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끌어내며 모두 베스트셀러에 등극하면서 인터넷 연재 시대의 막이 올랐다. 소설 인터넷 연재의 기폭제 구실을 한 이들 두 작가의 성공 이후 다른 작가들도 인터넷 연재에 본격적으로 합류했다.

독자들은 2008년 이후 공지영, 이기호, 정이현, 박민규, 백영옥, 공선옥, 김훈, 강영숙, 김경욱씨 등의 작품을 인터넷에서 만났다. 2008년부터 2009년 두 해 동안에만 15명이 넘는 작가들이 인터넷에 소설을 연재했다. 공지영씨의 <도가니>, 백영옥씨의 <다이어트>, 공선옥씨의 <내가 가장 예뻤을 때>, 신경숙씨의 <엄마를 부탁해>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김훈씨의 <공무도하> 등이 모두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최근에는 출판사와 포털 사이트가 자체적으로 운영하거나 서로 협력해 운영하는 웹진이 인터넷 연재를 주도하고 있다.

인터넷과 문학의 접속은 어떠한 사회적 맥락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이 문학에 미치는 영향은 또 무엇일까.

소설의 인터넷 연재가 본격화된 것은 출판사들의 상업적인 전략과 작가들의 욕구가 맞아떨어진 결과라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소설가 백영옥씨는 <문장웹진>이 지난해 가을에 마련한 ‘한국문학, 인터넷과 만나다’라는 제목의 좌담에서 “작가 확보의 어려움을 겪는 출판사의 구조적 문제와 지면이 부족한 작가들, 또는 지면이 필요한 작가들이 맞아떨어진 점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 좌담에서 시인 손택수씨는 “‘(<촐라체>와 <개밥바라기별> 이후 출판사들이) 이게 되는구나’라고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이런 욕망들이 결합하면서 과장된 면이 있지 않은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 출판을 모색하는 출판사 입장에서는 몇몇 출판사들이 계간지 등을 통해 확보하고 있는 기존 문학 시장에 진입하기가 쉽지 않다. 계간지 발행에는 많은 비용과 노력이 드는 데다 작가를 확보하는 일도 용이하지 않기 때문이다. 웹진이나 포털 사이트 등 인터넷 연재는 이런 측면에서 문학 출판의 진입장벽을 낮췄다. 다른 한편으로 기존 문학 출판사들은 소설 시장의 큰 흐름이 장편으로 바뀌면서 계간지를 통해 연재하거나 완성된 원고를 받아 단행본으로 출간하는 기존 방식으로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됐다. 여기에 신문이나 계간지 이외에는 소설을 발표할 지면을 얻기가 어려웠던 작가들의 욕구가 겹치면서 인터넷 연재가 이상적인 대안으로 떠올랐다는 이야기다.

본격적인 인터넷 연재 시대를 소설가들은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황석영씨는 최근 책으로 출간된 <강남몽>을 웹진 <북&>에 연재할 당시 ‘작가의 말’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참으로 다행인 것은 인터넷과 책이 연결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결과를 놓고 보면 오히려 인터넷은 연재를 통해 문학과 연결되고 출판된 책으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이 뿐만 아니라 <개밥바라기별>의 경험에 따르면 수많은 익명의 네티즌이 리뷰와 소통에 동참하면서 작가를 격려하고 집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초기의 우려와는 달리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이 책이라는 아날로그 문화의 산물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산시키는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이미 충분한 대중적 인지도와 숙련된 기량을 갖추고 있는 중견 작가들이 디지털 시대 문학의 생존 가능성을 확인하고 인터넷 연재를 긍정하는 입장이라면 젊은 작가들의 경우 소설을 발표할 지면이 늘어났다는 점을 인터넷 연재의 장점으로 꼽는다. 지난 6월 말 <웹진 문지>에서 장편 <향>의 연재를 마친 소설가 백가흠씨는 전화통화에서 “일단 피부로 느끼는 건 지면이 정말 많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지면도 한정돼 있었던 데다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어야만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인터넷 연재는 나 같은 젊은 작가들에게도 기회를 균등하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주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경제적인 요소도 인터넷 연재의 무시할 수 없는 장점이다. 최근 포털 사이트 다음이 운영하는 ‘문학 속 세상’에 장편 <15번이 진짜 안 와>를 연재하고 있는 소설가 박상씨는 “작가도 먹고살아야 한다. 인터넷 연재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소설들이 상업적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포털 사이트나 웹진이 원고료를 지급하는 현재의 인터넷 연재는 작가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안정적인 지렛대 구실을 하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원고 마감에 대한 강제력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는 소설 연재가 젊은 작가들에게 문학적 훈련의 장으로 작용한다는 점 또한 인터넷 연재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다.

종이매체 연재와는 달리 댓글을 통해 누리꾼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는 인터넷 연재는 소설가들의 작업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댓글이 애초 구상한 작품의 방향을 틀어버리는 힘으로 작용하지는 않을까. 지난해 6월부터 약 3개월 동안 인터넷 문학동네 커뮤니티에 장편 <낙타>를 연재한 소설가 정도상씨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인터넷 연재를 하면 열혈 독자들이 생긴다. 내 경우에는 50~60명이 꾸준히 들어와서 댓글을 달았다. 누리꾼들이 소설의 방향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하는 경우는 없었다. 또 대부분 댓글은 작가들을 격려하는 내용이다.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20년이 넘긴 했지만 대중적으로 내가 아주 잘 알려진 작가는 아니다. 그런데 연재 내용을 마음에 들어 한 누리꾼 가운데 일부는 내가 예전에 쓴 작품들까지 찾아 다른 누리꾼들에게 알리기도 했다.”

백가흠씨는 “전혀 신경이 안 쓰이는 건 아니다. 지난번 연재의 경우 연재 중반을 넘어서자 조회 수는 그대로인데 댓글 수가 확 줄었다. 말수가 줄어든 누리꾼들을 생각하니 긴장감과 함께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그러나 누리꾼들이 작품에 대해 딴죽을 걸거나 악플을 다는 경우는 없다”고 설명했다. 박상씨는 “누리꾼들이 주인공의 운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경우도 있지만 작가가 중심을 잘 잡는다면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연재가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박상씨는 “진중한 이야기보다는 가벼운 이야기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 인터넷은 깊이를 추구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 같다”고 지적했다. 발표 지면이 크게 늘어난 것도 예상치 못한 부작용을 안고 있다. 백가흠씨는 “지면이 너무 많다 보니 작품을 남발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작품들이 과거에 비해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서 “결국 너무 많이 쓴다는 얘기”라고 우려했다.

웹진에서 편집위원으로 일하는 한 소설가는 인터넷 연재에 출판 자본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웹진의 경우 계속해서 연재할 소설이 있어야 하기 때문에 항상 작가와 작품을 확보하고 있어야 한다. 작품을 쓸 수 있는 작가들은 어느 정도 한정돼 있다. 결국 이들 작가가 해마다 같은 사이클을 반복해야 한다. 작품의 수준을 담보할 수 없다. 인터넷 소설 연재 붐의 뒤에는 출판사들의 상업적인 마케팅이 자리를 잡고 있다. 인터넷 연재는 상당한 홍보 효과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마케팅 자체가 나쁘다고 보진 않는다. 책이 잘나가면 서점과 작가 모두에게 이익이다. 하지만 작가들에게서 과거와 같은 절박함은 느껴지지 않는다.”

정도상씨는 연재 공간이 인터넷이란 이유로 작가들이 작품을 가볍게 쓴다고 볼 수는 없다고 주의를 환기시켰다. 그러나 그는 “최근 한국소설에서 당대 현실의 모순을 정면으로 다루는 작품이 드물다. 강남 자본주의 형성사를 다룬 황석영씨의 <강남몽> 같은 경우는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다. 문제는 황석영씨가 아니라 젊은 작가가 사회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다고 할 때도 인터넷 연재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사회비판적인 작품에 좀 더 많은 기회를 줘서 한국문학이 더욱 다양해지도록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인터넷 연재의 새 방식 모색하는 소설가 박범신


백다흠

백다흠

소설가 박범신씨는 지난 4월 소설 <은교>를 출간했다. <은교>는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는 중견작가의 신작이라는 점만이 아니라 출간 방식에서도 화제를 모았다. <은교>는 인터넷에서 연재한 뒤 단행본으로 묶어 냈다는 점에서는 다른 인터넷 연재소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작가는 <은교>를 포털 사이트나 웹진이 아닌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다. 인터넷 연재 시 출판사나 포털사이트에서 받는 원고료를 포기한 것이다.

박씨는 전화통화에서 “신문 연재 시절부터 시작해 오랫동안 연재라는 메커니즘의 억압을 받아 왔다. 그 억압에서 탈피해 나 자신을 가장 존중하는 방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이 블로그 연재라는 방식을 찾아내게 만든 것이다. 열 줄을 쓰든 아예 한 줄도 쓰지 않고 쉬든 가장 자유로운 방식으로 소설을 써 보고 싶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신문 연재와 인터넷 연재 양쪽에서 풍부한 경험을 쌓은 그에게 인터넷 연재의 장단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본질적인 차이는 없다. 인터넷 연재의 경우 라이브 콘서트를 하는 것처럼 생생한 반응을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독자들의 실시간 반응에 마음이 흔들릴 가능성도 있겠지만 문학인은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어서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신문 연재든 인터넷 연재든 아무리 몸이 아파도 정해진 분량을 써 내야 한다는 것과 원고지 10장 안팎에서 소설의 흐름이 뚝 끊어지는 느낌을 감수하는 것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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