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광주 향토기업, 롯데슈퍼에 무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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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유통업체 지역상권 점령 심화… SSM 2차 공습은 ‘우회침투’ ‘위장개업’

“지역민과 함께한 15년 향토기업이 무너졌다.” “중견 기업도 넘어가는 판에 골목 상권이야 말해서 무엇 하나.” 광주지역 향토 유통업체 빅마트의 부도에 대한 목소리다. 1995년 광주 진월동에 창고형 할인매장 개점을 시작으로 전남·북에 매장을 확대하며 2000년 초 매출액 순위 국내 유통업체 15위를 차지하는 등 급성장하던 빅마트는 그러나 지난 6월 14일 1억여 원의 어음을 막지 못해 최종부도 처리됐다.

광주의 향토 유통기업인 빅마트가 15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SSM 등 대형 유통기업의 자본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광주드림 제공

광주의 향토 유통기업인 빅마트가 15년 만에 문을 닫게 됐다. SSM 등 대형 유통기업의 자본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광주드림 제공

빅마트의 부도는 그동안 이 기업이 지역밀착 경영을 해 온 터여서 아쉬움을 더 남겼다. 빅마트는 지역 내 처음으로 아름다운가게 입점, 온라인 매체 ‘전라도닷컴’ 운영 등 해마다 영업 이익의 10% 이상을 지역에 환원하면서 향토기업의 모델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롯데·신세계·현대 등 백화점 빅3와 대형 마트, 기업형 슈퍼마켓(SSM)이 속속 들어서면서 무릎을 꿇고 만 것이다. 빅마트의 흥망을 통해 대형 유통업체의 지역상권 침투 과정을 들여다봤다.

광주 토종 ‘빅마트’ 15년 만에 문 닫다
“불가항력이었다. 대형 유통매장이 들어올 만한 입지가 아닌 곳에 매장을 열었지만 그들은 이후 지방자치단체의 용도변경 등을 통해 바로 코앞에 대형할인점과 SSM을 오픈했다. 공정하지 못한 싸움이었다.”

7월 7일 오후 광주 빅마트 매곡점에서 만난 하상용 빅마트 대표는 담담했다. “현재 법원에 법정관리를 신청한 상태”라는 하 대표는 “기업회생 결정이 주어지면 직원들과 협력업체의 피해를 최소화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빅마트의 자산은 330억원, 부채는 270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법정관리 여부는 7월 중순에 결정될 것으로 하 대표는 예상했다.

빅마트는 1995년 수도권 외 지역 최초로 창고형 할인매장인 광주 진월점을 오픈하면서 유통업계에 뛰어들었다. 1997년 광주 북구 매곡동 북부점을 시작으로 영업망을 확대하기 시작해 광주 11곳, 전남 3곳, 전북 전주 2곳 등 모두 16개 매장을 확보한 중견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연간 매출도 함께 성장해 1995년 227억원에서 1997년에 1000억원 돌파에 이어 2005년에는 2000억원에 육박하는 연 매출로 지역 시장점유율(30%대) 1위 자리를 굳혔다.

빅마트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는 지역 밀착형 경영이다. 야채·채소·생선 등 매장에서 판매되는 농수산물 대부분이 광주·전남산이다. 1000여 개에 이르는 지역 농가, 협력업체들과의 네트워크가 강점이었다. 게다가 빅마트는 전국 최초로 쇼핑봉투 보증금제를 실시하고 무등산공유화사업에 앞장서는 등 매년 영업이익의 10% 안팎을 지역사회에 환원해 왔다. ‘아름다운 가게’ 광주 1호점도 빅마트에 무상으로 입점했다. “나 또한 지역 상인들의 기존 상권을 빼앗았으니 이윤의 지역 환원에 나서는 것이 도리였다”는 하 대표는 “아름다운가게, 전라도닷컴 등 씨앗을 많이 뿌렸는데 꽃을 피우지 못해 아쉽다”고 말했다.

빅마트의 위기는 2000년대 후반에 찾아왔다. 대형 마트와 SSM의 진출이 무차별적으로 이뤄지면서 연매출은 급격히 추락했고, 결국 2007년 3월 광주와 전라도 지역의 빅마트 16개 점포 가운데 13개 점포를 800억원으로 롯데쇼핑에 넘기게 됐다. 그나마 지난해 12월 남아 있던 3개 매장도 롯데슈퍼에 임대를 내주며 유통업체로서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다. 하 대표는 “대형유통업체인 롯데에 빅마트를 판 것은 아이러니지만 롯데가 직원 고용승계와 협력업체와의 관계 유지를 약속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고 말했다.

입점 과정에 편법·탈법 논란

광주에서는 아름다운가게 입점, 환경운동 등 영업 이익의 10%를 지역에 환원하던 향토 기업의 부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빅마트의 ‘빅시티’ 오픈 모습. |광주드림 제공

광주에서는 아름다운가게 입점, 환경운동 등 영업 이익의 10%를 지역에 환원하던 향토 기업의 부도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빅마트의 ‘빅시티’ 오픈 모습. |광주드림 제공

빅마트의 좌절에 대한 지역의 분석은 분분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역시 대형 유통자본의 침투 때문이다. 김기홍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결국 물류 문제와 마케팅 능력에 있어서 대형 유통기업과의 경쟁력에서 떨어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역에 기반을 둔 까닭에 농산물에서는 경쟁력이 있었지만 공산품 등에서 전국 물류를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는 것. 김 사무처장은 “광주 지역의 대형유통매장 수치는 지방에서 울산 다음으로 많다”면서 “소득은 울산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인데 유통업체가 과잉 공급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구 140만명인 광주에는 현재 백화점 4곳, 대형마트 13곳, 쇼핑센터 6곳, SSM 14곳이 영업 중이다. 하 대표 또한 “광주에 3300㎡(약 1000평) 이상 대형 매장이 20개가 넘는데 대형 매장의 경우 15만명당 1곳이 적당하다”면서 “광주 인구에 비해 과도하게 공급된 유통경쟁에서 밀린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대형 유통매장이 지역 상권에 속속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지자체의 ‘협력’이 한몫했다는 주장이다. “행정기관에서 대기업의 침투를 너무나 손쉽게 열어 주었다”는 지적으로, 지자체가 주민 편의와 세수 확대를 명분으로 지역 유통업체를 죽였다는 목소리다.

이 과정에서 편법·탈법의 논란도 많았다. 김기홍 사무처장은 “전국의 롯데마트 가운데 두 번째 규모인 광주 롯데마트 월드컵운동장점의 경우 시에서 허가를 내줄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가 월드컵경기장을 지으면서 경제적 효과에 대해 ‘뻥튀기’를 해 놓았는데 수익이 여유치 않자 시설을 기부채납 방식으로 기업에 임대하게 됐다는 것. 그러나 이 과정에서 롯데마트가 자체 주차장 670면을 넘어 3600면의 시공영주차장 전체를 사실상 사용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김 사무처장은 “롯데마트 월드컵운동장점의 경우 1년 임대료가 약 40억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면서 “세수를 위해 결국 시가 기업에 끌려 다니는 구조가 됐다”고 비판했다.

대형 유통매장 입점을 위해 토지의 용도 변경이 이뤄진 사례도 있다. 입점 당시 지역사회에서 큰 논란을 일으킨 이마트 봉선점의 경우 공원 부지가 구청에 의해 상업시설로 변경된 경우다. 이마트 봉선점은 인근의 빅마트 본점과 봉선점에 큰 타격을 주었다. 하상용 대표는 “대형 유통업체가 도저히 들어올 수 없는 입지임에도 개점했다”면서 “빅마트의 주력매장 앞에 대형유통매장이 동시다발적으로 들어서면서 큰 피해를 보았다”고 말했다. 시에서는 같은 구매조건을 제시했지만 결국 살 수 있는 곳은 대기업 서너 곳 뿐으로 “공정하지 못한 싸움이었다’는 게 하 대표의 말이다.

홈플러스 동광주점도 학교 부지가 상업용지로 바뀌면서 말이 많았던 곳이고, 롯데마트 첨단지점도 지자체 청사 등 공공 부지였는데 1만평을 용도 변경해 기업에 판 경우다. 지역 유통업을 지속적으로 취재해 온 광주전남지역 무료일간지 광주드림의 박중재 기자는 “대형 유통매장은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들어왔다”면서 “특히 해당 지역에 대형 마트가 들어올 수 없다는 시장 분석에 따라 중형 매장을 입점시킨 빅마트의 피해가 컸다”고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우회침투’ ‘위장개업’의 사례도 속출했다. SSM 진출이 지역 상인들의 사업조정신청에 막히자 기습 편법 출점하는 사례가 나타난 것. 2007년 구 광주시청 자리에 개점한 홈플러스 계림점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김 사무처장은 “당시 대형마트가 들어설 것이라는 소문 탓에 인근 대인시장 상인들이 긴장했지만 사업 주체가 ㅍ부동산개발업체로 되어 있어 다소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건물이 지어지고 막상 간판이 붙은 것은 홈플러스였다. ㅍ사를 앞세워 ‘우회 입점’한 것”이라며 “당시 시장 상인의 반발로 동구청이 건축허가를 반려했지만 행정소송을 결국 패소했다. 예상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관할 지자체와 대기업의 입장은 다르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마트 진출을 위해 용지 용도변경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면서 “첨단 지점의 경우 토지에 대한 사업공고가 나와 상업용지에 입찰을 응해 정당하게 사업을 진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홈플러스 관계자는 “계림점 개점 과정에서 시행사가 먼저 부지를 확보한 뒤 각 유통업체에 사업 제의를 해 온 것”이라면서 “이는 유통업체 출점의 일반적인 경우”라고 말했다. 광주시청 담당 직원 또한 “최근 시 소유의 도로 부지를 매각하지 않기로 결정함에 따라 주원동 홈플러스 출점이 무산된 것처럼 특정 업체를 위해 부지의 용도를 변경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개인 소유의 학교 부지, 국가 소유의 공공 부지에 대한 개발 과정에서 사업계획에 따라 용도 변경이 있을 수 있고, 이를 매각하는 것은 사업 주체의 몫으로 지자체에서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극히 적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발족식에 참가한 한 상인이 3대 요구안을 적은 상자를 머리에 쓴 채 서 있다. | 강윤중 기자

지난해 5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중소상인 살리기 전국네트워크’ 발족식에 참가한 한 상인이 3대 요구안을 적은 상자를 머리에 쓴 채 서 있다. | 강윤중 기자

최근 광주 상권에선 남구 노대동의 한 슈퍼마켓에 쏠려 있다. 롯데슈퍼가 기존 슈퍼마켓을 가맹점으로 추진한 것. 현재 입주가 진행되고 있는 아파트 단지여서 주변 상권에 대한 피해나 그로 인한 반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 매장이 성공할 경우 인근 지역으로의 파급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롯데쇼핑이 SSM 진출 돌파구로 설정한 롯데슈퍼는 매장 면적 330㎡(100평) 이상이어야 가맹 계약을 할 수 있다.

광주의 경우처럼 지역 상인 반발과 정부 규제로 한동안 잠잠하던 SSM 사업이 최근 2차전 양상을 띠고 있다. 관련 규제안이 국회에서 반쪽으로 통과되고, SSM 매출이 계속 증가하면서 대형 유통업체들이 다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홈플러스다. 홈플러스는 지난 6월 11일 이랜드리테일과 킴스클럽마트 인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동안 74개에 이르는 SSM 관련 사업조정 신청으로 인해 신규 점포 출점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만큼 기존 매장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려는 의도다. 킴스클럽마트 인수에 성공하면 현재 182개의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포함해 SSM 매장은 239개로 늘어난다. 매장 수에서 업계 1위인 롯데슈퍼(216개)를 따돌리는 셈이다. 홈플러스는 또 영세 슈퍼마켓을 가맹점으로 전환하거나 사업조정 신청이 들어온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를 가맹점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슈퍼는 신규 점포를 ‘위탁 가맹’이 아닌 ‘완전 가맹’ 방식으로 개설하는 해법을 내놓고 있다. 대기업이 SSM 개점 비용을 상당 부분 부담하는 대신 이익의 50% 이상을 가져가는 것이 위탁 가맹이라면 완전 가맹은 점포 개설에 소요되는 모든 비용을 점주가 부담하는 대신 수익을 전부 갖는 방식이다. 그동안 롯데슈퍼는 ‘가맹점 역시 변칙적인 SSM 진출’이라는 반발에 부닥쳐 출점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주변 상권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장점을 염두에 두고 있다.

신세계는 동네 슈퍼의 물건 구매를 대행하는 사업에 관심을 쏟고 있다. 신세계가 동네 슈퍼의 구매를 대행할 경우 이마트는 구매력을 키워 제조업체와의 가격 협상에 좀 더 유리해지고 동네 슈퍼는 싼값에 물건을 넘겨받는 ‘윈윈’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SSM인 ‘이마트 에브리데이’ 신규 출점이 거의 정지된 상태에서 비판적 여론에 맞서 무리하지 않겠다는 전략이다.

김기홍 사무처장은 “가맹이냐 직영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맹점이라고는 하지만 대리인을 앞세우면 직영점과 다를 바 없는 것”이라면서 “SSM의 경우 330㎡ 이상 매장에 대한 가맹 계약이 더욱 많아질 것이다. 이는 결국 영세상인들 죽이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신세계의 구매 대행 또한 동네 슈퍼에 물건을 납품해 오던 영세 대리점들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동네 슈퍼를 이마트에 완전히 종속시킨다”는 주장이다. 동네슈퍼들이 당장은 물건을 싸게 들여올 수 있을지 몰라도 기존 도매납품업 생태계가 모두 무너지고 나면 이마트가 무리한 조건을 내걸어도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한편 대기업의 지역상권 침투로 인해 지역의 경제 선순환에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빅마트의 경우 지역 내 농산물(신안 비금 시금치, 함평 고구마)을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했지만 롯데슈퍼가 들어선 이후 포항 시금치가 판매되고 있다는 것. 김 사무처장은 “이 지역의 생산품을 사서 이 지역 주민에게 팔던 빅마트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대신 대량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을 가져와 팔고 이윤은 고스라니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면서 “당장 싼 물건, 다양한 물건을 만날 수는 있겠지만 결국 지역 경제는 무너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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