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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롯데 ‘지방선거 후폭풍’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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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송영길 시장 취임으로 굴업도 관광단지·계양산 골프장 개발 제동

대기업들이 지방선거의 후폭풍을 ‘제대로’ 맞고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권력이 대거 야권으로 넘어가면서 세종시법 수정안, 4대강 사업 등 주요 국책 사업은 물론 그동안 대기업들이 준비해 온 각종 숙원 사업에 제동이 걸리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권력이 바뀌면서 대기업 숙원사업에 속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환경문제로 인해 지역주민이 반대한 CJ그룹의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과 롯데그룹의 계양산 골프장 사업(아래)이 좌초될 전망이다. | 김석구 기자

지방권력이 바뀌면서 대기업 숙원사업에 속속 제동이 걸리고 있다. 환경문제로 인해 지역주민이 반대한 CJ그룹의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과 롯데그룹의 계양산 골프장 사업(아래)이 좌초될 전망이다. | 김석구 기자

|인천녹색연합

|인천녹색연합

CJ그룹과 롯데그룹이 대표적으로, 새 지방 권력이 사업 재심사를 표방하면서 큰 타격을 받고 있다. CJ그룹은 이재현 회장이 강력하게 추진해 온 인천 굴업도 관광단지 조성 사업의 수정이 불가피하고, 롯데그룹 역시 신격호 회장의 30년 야심작인 인천시 계양산 골프장 개발 사업이 좌초 직전이다. 그러나 현재 어느 정도 사업이 진행된 곳도 있어 법정 공방 등 대기업과 지방 권력 간 사업 재조정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CJ의 굴업도 골프장은 물거품
CJ그룹은 인천 옹진군 굴업도에 추진하던 ‘오션파크’ 관광단지 조성 계획을 전격 철회했다. 관광단지 개발을 추진해 온 CJ그룹 계열사 C&I레저산업이 지난 6월 24일 “사업 전체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며 옹진군에 관광단지 지정신청 취하서를 제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3년여 동안 지역 시민단체 등과 CJ가 벌인 굴업도 개발 논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C&I레저산업이 사업비 3900억원을 들여 골프장, 호텔, 요트장, 콘도미니엄을 갖춘 해상리조트 ‘오션 파크’를 만들겠다며 여의도 5분의 1 크기의 굴업도(172만6000㎡, 약 52만2000평) 땅을 사들이기 시작한 것은 2006년. 현재 굴업도 전체의 97∼98%를 소유하고 있는 C&I레저산업은 2007년 옹진군과 인천시에 사업계획을 제출했고, 지난해 9월엔 옹진군에 관광단지 지정도 신청했다. 옹진군이 인천시와 협의해 관광단지 도시계획 결정을 해 주면 환경영향평가 등 각종 행정 절차를 거쳐 2013년 말까지 최고급 해양리조트 시설을 건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 사업에 대한 환경단체의 반발은 거셌다. 굴업도에 매, 먹구렁이, 황조롱이 등 멸종위기 야생동물과 천연기념물이 다수 서식해 생태적 가치가 풍부하다는 이유였다. 인천시민단체들의 연대와 환경 파괴 논란이 거세지자 지난해 12월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는 굴업도 개발에 대해 현장조사와 깊이 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며 관광단지 지정안 심의를 보류했다. 게다가 올해 초 문화재청이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해안 지형인 굴업도 토끼섬 일대 2만5785㎡(7800평)에 대한 천연기념물 지정을 예고하면서 관광단지사업 난항은 계속됐다.

CJ의 굴업도 개발 사업 제동의 결정타는 송영길 신임 인천시장이다. 송 시장은 민주당 후보 시절부터 굴업도 관광개발에 대해 “관광단지 자체는 몰라도 골프장 건설에는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혀 왔다. C&I레저산업 관계자는 관광단지 지정신청 취하의 이유를 묻자 “굴업도 사업의 핵심은 골프장을 짓는 것인데 인천시가 골프장을 제외하고 관광단지를 허가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 예상되기 때문에 기존에 접수한 관광단지 신청서를 계류시키는 게 맞겠다는 판단이었다”면서 “골프장이 없을 경우 사업성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말은 아꼈지만 굴업도 개발 사업에 반대하는 시장이 당선된 이상 인천시, 환경단체 등과 비생산적인 논쟁을 할 이유가 없다는 속내였다.

사실 CJ가 C&I레저산업을 통해 2006년부터 굴업도를 야금야금 사들이면서 “재벌이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자기 왕국을 건설하려는 것” “국민 정서와 동떨어진 오만한 발상”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CJ그룹이 CJ건설을 제쳐두고 C&I레저산업을 앞세워 굴업도 개발에 나서면서 “부동산 가치 상승에 따른 이재현 회장 가족의 재산 증식용”이라는 비난도 일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를 통해 본 C&I레저산업의 주주는 단 3명. 이재현 CJ 회장(지분 42%)과 아들(지분 38%), 딸(지분 20%)이 전체 지분을 소유하고 있다. 이른바 ‘패밀리 컴퍼니’로, 3900억원의 사업비가 투자되면 결국 회장 가족 재산만 늘어난다. 자본금이 200억원(2009년 연말 기준)인 이 회사는 2006년 굴업도의 토지 매입 대금으로 이미 150억여 원을 지출했고, 용역비용으로 수십억 원을 지급한 상태로 알려졌다.

조강희 인천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재벌이 섬을 통째로 사들여 골프장을 만들겠다는 것부터가 주민 정서와 동떨어진 것”이라면서 “굴업도 주변 해역인 덕적군도를 국립공원으로 만들어 친환경 생태관광을 추진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격호의 30년 꿈 무너지나?
그렇다고 CJ그룹이 굴업도 개발 사업에서 완전히 ‘물 먹은’ 것은 아니다. C&I레저산업 측은 다시 원점부터 굴업도에 대한 개발계획을 논의한다는 방침이다. 송 시장의 논리가 환경론자들의 주장에 영향을 받은 부분이 많다고 보고 생태환경조사 등을 보강해 반박 논리와 과학적 사실을 인천시에 제시한다는 계획이다. C&I레저산업 관계자의 말처럼 “굴업도가 CJ의 소유인 만큼 어떤 방식으로든 개발을 다시 추진한다”는 것이다.

CJ의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 사업은 인천시와 옹진군의 대결 양상으로 번질 수도 있다. 재선에 성공한 조윤길 옹진군수(한나라당 소속)가 굴업도 관광단지 개발을 적극 찬성하고 있는 것. 옹진군은 굴업도 개발 사업이 이뤄질 경우 관광객이 늘어나고 지역 경제가 좋아진다고 보고 있는 가운데 일단 지방세 수입만 최소 200억원에서 최대 400억원까지 기대하고 있다.

반환경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선거 기간에 후보자를 공략했다. 해리포터 복장을 한 주민들이 투표로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인천환경운동연합

반환경 개발에 반대하는 주민들은 선거 기간에 후보자를 공략했다. 해리포터 복장을 한 주민들이 투표로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자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 인천환경운동연합

롯데그룹의 계양산 골프장 건설 사업도 붕괴될 위기에 처했다. 6·2 지방선거에서 계양산 골프장 건설을 반대하는 민주당 송영길 후보가 시장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송 시장은 “계양산을 가족친화적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가 압도적으로 많고, 반딧불이·도룡뇽 등 법적보호종이 서식하고 있어 골프장 계획을 재검토할 예정”이라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롯데건설이 계양구 다남동 산 65의14 일대 71만7000㎡(21만7200평)에 2006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계양산 골프장(정식명칭은 ‘다남동 대중골프장’)은 당초 80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2홀 규모 골프장을 2012년에 개장한다는 계획이었다. 지난해 4월 국토해양부의 중앙도시계획위원회에서 면적을 조금(6만㎡) 줄이고 주변 사유지에 17만여 ㎡의 대체 녹지를 만들며 공원에 유료 오락시설은 설치하지 말라는 등의 조건 아래 심의를 통과했고, 지난해 말 시 도시계획위원회가 도시계획시설로 결정하면서 사업에 속도가 붙은 상태다. 사업시행자 지정과 관련해 토지를 3분의 2 이상 확보했고, 토지소유주 2분의 1 이상 동의를 진행하는 상황이어서 ‘삽질만 남았다’는 게 업계의 평가였다. 여기엔 당시 안상수 인천시장과 이익진 계양구청장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뒷말도 무성했다.

계양산 일대 롯데그룹의 토지는 1974년 신격호 회장이 자신의 명의로 구입해 둔 땅이다. 이 땅에 대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심하던 신 회장은 골프장 건설로 가닥을 잡았고, 이 소식은 황무지나 다름없는 계양산 일대를 금싸라기 땅으로 바꿔 놓았다. 이후 2008년 말 신 회장은 이 부지를 그룹 계열사인 롯데상사에 504억8700만원을 받고 넘기면서 엄청난 부동산 차익을 챙겨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계양산 골프장 건설 문제는 롯데건설이 2006년 6월 개발계획안을 냄으로써 지역 환경단체와 주민 등의 반발에 부닥쳤다. 계양산의 환경·역사적 보호 가치를 들며 골프장 조성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 골프장이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만드는 것이어서 환경파괴 논란뿐만 아니라 등산객이 많은 지역이어서 서민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점도 문제였다. 이 때문에 송 시장은 골프장 계획을 백지화하고 그 대신 시민들을 위한 생태·가족공원을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여기에 게스트하우스 등 건설허가권이 있는 계양구의 박형우 신임 구청장(민주당)도 골프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이 같은 흐름에 대해 롯데건설 측의 반응은 ‘노 코멘트’다. 롯데건설 관계자는 “현재로선 어떤 입장도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인·허가가 완료되면 그로부터 2년 뒤에 개장하는데 지금 상태에서 롯데가 어떤 입장을 취하기엔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면서 “골프장 사업에 대한 승인이 이뤄진 상태고, 토지보상도 적절히 이뤄지고 있어 신임 시장이 골프장 건설을 잠시 미룰 순 있겠지만 아예 중단시키기에는 무리일 것”이라고 전했다.

지자체와 재벌의 싸움은 누가 승자?
그러나 시민단체는 송 시장이 공약을 지켜 골프장 건설을 중단시킬 것으로 굳게 확신하고 있다. 인천녹색연합은 “당선자가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분위기가 ‘건설 중단’으로 흘러가는 만큼 시민들은 골프장 건설 저지를 믿고 있다”면서 “송 시장이 공약을 실천하도록 전방위적인 압력을 행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미 행정 절차가 거의 다 진행됐기 때문에 롯데건설이 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낼 경우 시가 질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앙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개발제한구역관리계획 승인을 받았고, 인천시 도시계획위원회로부터 도시관리계획 승인을 받은 법률상의 조건 탓에 시장이 바뀌었다고 골프장 건설 계획이 중단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천시 시민단체들은 “시에서 실시계획이 인가된다 해도 관할 구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으면 제대로 된 골프장을 지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게스트하우스 등 건축물이 들어설 수 없다는 설명이다. 인천시의 입장은 “우선 롯데건설과 대화를 통해 해결 방법을 찾겠다”는 것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환경단체 등 강한 반대 여론과 이전에 있은 이 골프장의 환경성 검토 부실 시비 등을 이용해 롯데건설을 ‘압박’하는 방안도 구상 중이어서 결과가 주목된다.

이같이 6·2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이 야권 인사로 바뀌면서 곳곳에서 기존 단체장의 역점 사업이 재검토되는 등 큰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이 같은 사업 재검토가 야권 단체장 말대로 ‘전시 행정’을 없애 재정 효율화를 가져올 것인지, 주민 숙원사업의 ‘정책 연속성’을 저해하는 역효과를 낳을지 추이가 주목된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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