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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주 포기 기업들 ‘세종시 회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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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롯데·한화·웅진 등 4조5150억원 투자 “없던 일로”

세종시법 수정안 부결의 후폭풍이 일고 있다. 진원지는 기업들이다. 세종시법 수정안에 나온 원형지 공급, 세금 감면, 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 ‘당근’이 없어지자 세종시에 투자하기로 한 삼성·한화·롯데·웅진 등 국내 4개 기업과 오스트리아 태양광 제품업체 SSF 등 총 5개 기업은 투자 계획을 전면 백지화하기로 했다.

6월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세종시법 수정안은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6월 2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세종시법 수정안은 찬성 105명, 반대 164명, 기권 6명으로 부결됐다.

이들 기업은 신재생에너지, 발광다이오드(LED) 등 분야에 총 4조5150억원을 세종시에 투자해 2만2994명을 고용한다는 계획을 세워 발표한 바 있다. 세종시법 수정안을 전제로 기업들의 세종시 입주를 독려해 온 정부는 수정안이 부결되자 기업들의 세종시 입주계획 취소를 방관하고 있다. ‘내 뜻대로 안 됐으니 잘해 봐라’하는 식의 냉소적 태도가 역력하다.

기업부지 축소 세제 혜택도 줄어
삼성그룹은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10년 동안 먹을거리 창출을 위해 ‘신수종사업’을 발표하면서 세종시 입주를 준비해 왔다. 삼성은 애초 오는 2015년까지 삼성전자, 삼성LED, 삼성SDI, 삼성SDS, 삼성전기 등 5개 계열사가 세종시 일원에 그린에너지·헬스케어 등 신사업과 관련한 분야에 2조5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그러나 세종시법 수정안이 부결돼 다시 추진케 된 원안에는 기업 전체에 할당된 부지가 79만2000㎡(약 24만평)에 불과해 자신들이 원하는 면적 165만2800㎡(50만평)에 한참 못 미치고,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가 미미해 그대로 들어가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삼성은 세종시 대신 기존 계열사 공장의 여유 부지나 대체 부지를 찾아 투자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수정안이 최종 부결됨에 따라 대체 부지 물색에 들어갈 것”이라고 전했다.

삼성은 세종시 입주를 발표할 때부터 “신수종 사업이 세종시에 들어가는 것은 경제적 조건과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조성된다는 전제 아래 결정된 것”이라면서 “이 전제가 흔들린다면 사업 입주를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롯데그룹도 기업 인센티브,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등 ‘당근’이 사라진 만큼 당초 세종시에 설립하기로 한 식품과학연구소 건립 계획을 재검토한다는 입장이다. 롯데는 세종시 6만6000㎡ 부지에 2020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해 여러 계열사에 나뉘어 있던 연구 기능을 모아 식품과학연구소를 설립, 1000명을 고용한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정부와의 MOU 효력 ‘자동소멸’
한화그룹도 정부와의 투자 양해각서(MOU)는 효력이 자동 소멸됐다는 입장이다. 한화는 그룹의 연구개발(R&D) 투자안 가운데 최우선 사업인 항공·우주 분야의 자체 연구센터가 될 국방미래기술연구소를 세종시에 연내 착공할 계획이었다.

남영선 ㈜한화 사장은 지난 6월 30일 기자들과 만나 국방미래기술연구소 설립과 관련해 “대전과 중부권 윗 지역에서 부지를 찾고 있다. 대체 부지의 경우 위치는 큰 문제가 되지 않으며, 무엇보다 우수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할 수 있느냐가 가장 큰 문제”라며 대학이나 연구소 등 고급 연구인력 영입이 수월한 지역과의 접근성이 선결 조건임을 강조했다. 한화는 태양광연구소와 대한생명 연수원도 2013년부터 세종시에 착공할 계획이었지만 아직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만큼 순차적으로 대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한화는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L&C, 대한생명 등 4개 계열사가 60만㎡(18만평) 규모의 부지에 10년 동안 국방기술을 포함한 태양광 사업 등에 1조3270억원을 투자할 계획을 세웠었다.

웅진그룹 역시 인센티브 없는 입주는 하지 않기로 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6월 24일 “인센티브가 사라진다면 다른 곳과 비교해 볼 것”이라면서 “행정부가 이전한다고 기업이 무작정 따라가지는 않는다”며 세종시 입주를 포기할 방침임을 시사했다. 웅진그룹은 수정안에 따라 세종시 66만㎡(20만평) 부지에 웅진에너지, 웅진코웨이, 웅진케미칼 등 3개사가 입주하는 등 90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의 기업 유치 계획에 따라 입주 의향을 밝힌 기업들이 새로운 대안을 마련해야 하는 등 다소 혼선이 불가피한 상황이 됐다“고 지적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수정안이 폐기되고 원안에다 이른바 ‘플러스 알파’에 대한 논의도 있지만 이것 역시 정치권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면서 “애초 기업들이 예상한 혜택이 없어진다면 세종시에 투자할 이유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시 입주 포기 기업을 잡아라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 내 첫마을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모습.

충남 연기군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예정지 내 첫마을 아파트 공사가 한창인 모습.

세종시법 수정안이 폐기되면서 세종시 입주 포기 기업을 잡으려는 지방자치단체 간 경쟁이 일고 있다. 대체 부지를 찾는 기업에 저마다 ‘약속의 땅’임을 자처하며 손을 벌리고 나선 것. 지자체들은 이번 기회에 대기업을 유치, 지역 발전의 호기로 삼겠다며 갖가지 ‘당근’을 제시하고 있다.

경기도는 삼성그룹을 공략하고 있다. 수원과 용인 기흥에 삼성전자와 삼성SDI 본사가 있는 만큼 대체 부지로 경기도가 적격이라는 점을 삼성에 설명하는 자리를 최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경기도 관계자는 “삼성이 원하는 장소에 원하는 넓이의 땅을 제공할 수 있다”는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송영길 인천시장도 발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송 시장은 세종시법 수정안이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부결된 날인 지난 6월 22일 삼성과 한화에 투자 유치를 위한 특사를 파견했다. 특사들은 송도국제도시·인천국제공항 등 인천의 풍부한 인프라를 강조하고, 규제 완화와 각종 세제 혜택 등 가능한 한 모든 것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시와 인접한 충북도는 오송과 오창의 저렴한 산업단지 부지를 내세워 기업 유치에 나설 움직임이다. 대기업 유치를 위한 세금 감면 등 다양한 혜택을 내놓고 있다. 충주기업도시의 경우 신설·창업 기업에 대해 5년(3년 100%, 2년 50%) 동안 법인세를 감면해 주기로 했다. 세종시 입주 때와 같은 규모의 세제 혜택이다.

대전시는 올 3월 대전을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한 녹색클러스터사업 5000억원 지원에 기대를 걸며 기업 유치에 나설 방침이다. 대전시는 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녹색기술산업 클러스터 조성’에 5000억원의 국비가 지원될 경우 용지공급가를 100만원 이하로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대기업들이 대전 이전을 실행할 경우 취득·등록세나 재산세 등의 세수를 보조금 형식으로 되돌려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대구시도 대구국가과학산업단지를 중심으로 정부 차원에서 대체 부지 물색에 나설 경우 승산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구미시는 구미국가산업단지와 연고가 깊은 삼성에 공을 들이고 있다. 현재 유치전략을 수립 중인 삼성 계열사는 삼성전자(태양전지)·삼성SDI(자동차용 전지)·삼성LED(LED)·삼성SDS(의료) 등으로, 구미시가 오랫동안 기업 유치에 공들여 온 분야다. 구미시는 확장 단지를 유치 기업의 요구에 맞춰 입주에 도움을 주고 세종시에 버금가는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도 적극 고려하고 있다. 시 관계자는 “세종시를 겨냥하던 대기업들이 조만간 대체 부지를 찾을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별도의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 총력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전북도는 기업들이 원하는 땅을 값싸게 제공하는 원형지 방식으로 대규모 부지를 조성할 계획인 가운데 김제시 산업단지의 경우 300만㎡ 규모 부지를 3.3㎡당 10만원 이하로 공급할 계획이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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