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녀」의 모진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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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파괴범에서 계급사회 희생양으로

김기영 감독의 영화 <하녀>(1960년)가 50년만에 재개봉했다. 이 작품을 리메이크한 임상수 감독의 영화 <하녀>(2010년)의 인기 덕분이다. 임 감독의 <하녀>는 올해 칸 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으로 개봉 이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이은심 분)가 동식(김진규 분)에게 구애하는 경희(엄앵란 분)를 엿보는 장면.

김기영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이은심 분)가 동식(김진규 분)에게 구애하는 경희(엄앵란 분)를 엿보는 장면.

원작이 지닌 명성에다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전도연이 하녀 은이역으로 출연했으며 파격적인 노출 신, 재벌가를 연상케 하는 배경 등 흥미를 끄는 요소들이 겹쳤다. 이 영화는 플롯과 긴장감에서 전작을 뛰어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하녀의 처지를 통해 한국 사회의 변화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었다. 반세기의 시간 차를 둔 두 편의 <하녀>를 보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단란한 중산층 가정 파멸시키는 식모
일반 관객과 다시 만난 김 감독의 <하녀>는 말끔한 화질을 자랑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세계 각국의 훼손된 고전영화 복원을 지원하는 세계영화재단의 협조를 얻어 이 영화를 디지털 필름으로 복원했다. 세계영화재단은 영화감독 마틴 스코세이지가 아르마니·카르티에 등 기업의 협찬으로 2007년에 설립했다. 복원된 <하녀>는 이미 한국의 대표적인 고전영화로, 2008년 칸 영화제에서 선보인데 이어 리메이크작 덕분에 국내에서 새로운 관객을 만나게 된 것이다.

원작 <하녀>는 중산층의 단란한 가정을 파멸시키는 하녀의 이야기다. 동식(김진규 분)은 방직공장 여공들의 합창부를 지도하는 음악 선생이다. 그는 자신을 짝사랑하는 선영이란 여공의 편지를 받고 이 사실을 사감에게 통보한다. 이로 인해 정직 처분을 받은 선영은 공장을 그만둔 채 고향으로 내려간다. 동식처(주증녀 분)는 남매를 키우면서 10년 동안 재봉틀을 돌려 번듯한 이층집을 지었다. 무리한 부업으로 동식처의 몸이 쇠약해지자 두 사람은 하녀를 두기로 한다. 선영의 친구인 여공 경희(엄앵란 분)는 피아노를 배우러 동식의 집에 드나들다가 공장 기숙사의 식모를 하녀(이은심 분)로 소개한다.

새집으로 이사한 뒤에도 일을 멈추지 않은 동식처의 건강이 악화돼 친정으로 다니러 간 사이에 선영의 자살 소식이 전해진다. 함께 장례식에 참석한 경희는 동식에게 사랑을 고백했다가 모욕 당하고 쫓겨난다. 이를 지켜보던 하녀는 동식을 유혹해 육체관계를 맺는다. 친정에서 돌아온 동식처는 임신한 상태이며, 하녀의 임신 사실도 곧 알려진다. 동식처는 가정을 지키기 위해 하녀에게 계단에서 떨어져 낙태시킬 것을 종용한다. 하녀는 이를 실행에 옮기지만 복수심에 불타서 집안을 파멸시키려고 한다. 동식의 아들에게 쥐약을 탄 물을 마시게 해 죽이고, 동식의 간통을 공장에 알리겠다고 협박해 동식이 자신의 침실에서 자도록 한다. 갓 출산한 동식처에게 밥상까지 차려오게 한다. 하녀의 행패를 견디다 못한 남자는 함께 쥐약을 먹고 동반자살하지만 계단에서 죽어가는 하녀를 뿌리친 채 아내 곁에서 숨을 거둔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전도연 분)가 주인 부부(이정재·서우 분)의 식사를 차리고 있다.

임상수 감독의 <하녀>에서 하녀(전도연 분)가 주인 부부(이정재·서우 분)의 식사를 차리고 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상상이다. 작품 초입에서 신문을 읽던 동식은 재봉틀을 돌리는 아내에게 가정부가 주인집 아들을 살해한 기사를 들려주면서 하녀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사며 빨래며 외출에서 돌아왔을 때 맞이하는 일이며 절반은 하녀에게 맡긴다”는 그의 말은 집안을 차지하려는 하녀의 욕망을 암시한다. 그리고 악몽 같은 이야기가 동식과 하녀의 죽음으로 파국을 맞은 뒤 동식은 다시 카메라를 응시하면서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건다. “남자는 나이가 많을수록 젊은 여자를 놓고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며 이런 일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고한다.

한국영화 최초로 재발견된 감독, 김기영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추앙받는 이유는 인간의 억압된 성적 본능, 뒤틀리고 왜곡된 심리를 풀어놓으면서 이것이 당대 사회현실을 가리키는 나침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정치적 의도를 드러내지 않음에도 심리주의, 마성적 환상주의로 요약되는 작품 안에 도리어 사실주의적 요소가 담긴 것이다. <하녀>의 불합리한 이야기 전개도 이런 맥락을 짚어 보면 이해할 수 있다. 새집으로 이사한 아내는 “이렇게 좋은 집에 이사하고 보니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아요”라고 말한다. 재산을 불리기 위한 그녀의 재봉틀질은 아들이 죽은 뒤에도, 남편이 하녀의 침실로 간 뒤에도, 심지어 남편이 죽어가는 순간에도 계속된다. 그들이 하녀에게 그렇게 끌려다니는 이유 역시 하녀가 간통 사실을 공장에 알리면 합창부 지도라는 일자리를 잃게 되고 가난해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주인 부부는 물론 자신을 소개한 여공 경희보다 더 낮은 계급에 속한 하녀는 육체라는 권력 하나로 이런 중산층 가정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끈다.

<하녀>의 영화적 장치는 당대의 다른 한국영화와 비교할 때 이채롭다. 새로 이사한 이층집 부엌에 쥐가 드나들고, 하녀가 입주하자마자 그 쥐를 때려잡는 장면이나 쥐약을 먹고 죽은 쥐의 시체를 치우는 장면 등은 식구들의 죽음을 암시한다. 가파른 계단과 계단 벽에 걸린 베토벤의 데드마스크, 동식이 치는 피아노 소리와 배경음악으로 등장하는 불협화음, 돌연한 장면 전환과 인물의 클로즈업, 유리문과 거기에 들이치는 장대비 등도 긴장을 고조시킨다.

‘하녀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사회적 욕망과 계급 격차, 위선을 고발한 영화감독 김기영.

‘하녀 시리즈’를 통해 여성의 성적·사회적 욕망과 계급 격차, 위선을 고발한 영화감독 김기영.

김 감독은 <하녀>의 성공 이후 ‘하녀 시리즈‘로 불리는 여러 편의 작품을 만들었다. <화녀>(1971년)와 <화녀 ’82>는 <하녀>처럼 식모가 주인공이고, <충녀> (1972년)와 <육식동물>(1984년)에서는 호스테스가 악녀(팜 파탈) 역할을 맡는다. <충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노교수가 다른 환자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하는 형식으로 <하녀>처럼 액자구조를 취한다. <하녀> 시리즈의 세부적인 이야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무능력한 주인 남자, 물욕이 강한 주인 여자, 이들 사이를 파고드는 악녀로서 식모나 호스테스 등 하위계급 여성이라는 삼각구도는 일관되게 지속된다. 주인 여자와 악녀는 점점 악독해지는 반면에 남자는 이해할 수 없으리만치 무능력해진다. <육식동물>에서 부동산 투기꾼인 부인에게 밀리는 출판사 사장인 남자는 기저귀를 차고 젖병을 빠는 모습으로 등장하기조차 한다. 그런데 감독 자신은 이 가운데 <하녀>만을 자신의 진짜 작품으로 치고 나머지는 돈 때문에 만든 아류작으로 여겼다.

김 감독은 ‘하녀 시리즈’ 외에 <병사는 죽어서 말한다>와 같은 전쟁영화, <이어도> 등 문예영화도 만들었다. 그러나 어떤 장르이든지 성적 충동, 소유욕, 질투, 동반자살, 살인, 사도마조히즘 등 자신의 코드를 넣어서 ‘김기영표’로 찍어냈다. 그의 이런 태도는 오랫동안 비평적인 관심을 받지 못했고, <육식동물> 이후 작품활동도 중단됐다. 그의 이상한 영화들이 한국영화의 고전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영화의 급속한 발전과 관련이 깊다. 뭔가 특별한 영화를 찾던 영화광들이 그의 영화를 찾아내면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1997년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김기영회고전이 열렸고, ‘한국영화 최초로 재발견된 감독’으로서 한국영화의 세계화 바람을 타고 곧 해외영화제의 단골 손님이 됐다.

1922년생으로 서울대 치과대학을 졸업한 뒤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영화계에 뛰어든 이 인텔리는 1955년부터 30년 동안 3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그는 유현목, 신상옥, 김수용, 이만희와 더불어 1960년대를 대표하는 감독이기는 하지만 한창 활동하던 시대에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항상 경제적으로 궁핍해 치과의사인 부인에게 기대어 살았다. 회고전이 열린 뒤 그는 다시 영화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러나 이듬해인 1998년 집에서 원인 모를 화재로 부인과 함께 사망하면서 신화의 반열에 올랐다. 후배 감독들은 그가 다시 잊혀지는 것을 우려해 2007년 <감독들, 김기영을 말하다>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김홍준 감독이 만든 이 영화에서 봉준호, 류승완, 장준환, 송일곤 등 22명의 후배 감독들은 이 특별한 선배의 삶과 영화에 오마주를 바친다.

이런 추모의 절정이 임상수의 영화 <하녀>임은 말할 것도 없다. 21세기판 <하녀>는 어느 부분에서 원작의 취지를 십분 살렸지만 어느 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작품이 됐다. 가장 큰 차이라면 하녀는 자신의 육체와 임신을 담보로 해서 절대 주인집을 파멸시킬 수 없으며, 강고한 계급사회에서 철저히 유린당하는 희생양이 된다는 점이다.

21세기판 ‘하녀’의 무력한 저항

<하녀>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화녀>와 <화녀 ’82>.

<하녀>의 인기에 힘입어 제작된 <화녀>와 <화녀 ’82>.

복잡한 시내의 식당에서 일하는 은이(전도연 분)는 한 여자의 자살을 보고 그곳을 떠나 부잣집 가정부로 들어가기로 한다. 그 집의 늙은 하녀인 병식(윤여정 분)은 안주인 해라(서우 분)가 조만간 쌍둥이를 낳게 되자 은이에게 보모 역할을 맡길 요량으로 면접을 한 뒤 집에 들인다. 그 집에는 나미라는 딸이 하나 있다.

31억원의 제작비를 들였다는 이 영화의 세트는 재벌가를 연상시킨다. 깔끔한 대리석 바닥과 벽난로, 고급스런 욕조, 휘황찬란한 샹들리에는 하녀들의 검은색 유니폼과 어울린다. 1960년대에는 웬만한 집에서도 시골에서 상경한 젊은 여성을 하녀로 쓸 수 있었지만 오늘날 주인에게 종속된 하녀의 존재가 가능한 집은 재벌가라는 점이 작용한 것이다. 그러나 원작과 동일하게 이층집에다 극 전개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계단이 가운데 놓여 있고 1층은 여주인의 공간, 2층은 하녀의 공간으로 나뉘어져 있다.

은이는 가족여행에 따라갔다가 임신한 아내와의 섹스에 만족하지 못한 주인집 남자 훈(이정재 분)과 잠자리를 함께한다. 두 사람의 관계를 알게 된 병식은 은이 자신도 모르는 임신 사실을 눈치 채고 장모(박지영 분)에게 알린다.
 
아이가 태어나는 걸 우려한 장모는 은이에게 샹들리에 청소를 시킨 뒤 일부러 사다리를 밀어서 떨어뜨리지만 유산에 실패하고 오히려 은이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게 된다. 아이를 낳겠다고 주장하는 은이에게 안주인 해라는 몰래 유산을 유도하는 한약을 먹도록 만든다.

놀라운 것은 주인 남자의 적반하장식 반응이다. 그는 김기영 감독의 남자 주인공처럼 무능력한 모습이 아니다. 도리어 장모에게 “당신 딸이 낳아야만 내 자식이냐”면서 큰소리를 친다. 아이를 잃고 쫓겨난 은이는 복수를 결심한다. 그리고 병식의 도움을 받아 집 안에 들어온 뒤 주인집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샹들리에에 목을 매고 이어 분신을 해서 장렬하게 산화한다. 전등을 향해 달려드는 불나방의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이 영화에서 하녀의 순수한 모습과 무력한 저항은 원작과 달리 스릴과 서스펜스를 느낄 수 없도록 만드는 요소다. 그 대신 병식의 변모가 주는 재미가 있다. 집안에 하녀를 데려오는 병식은 원작에서 동식에 대해 애정과 증오라는 이중 감정을 지닌 경희의 역할에 해당한다. 동식에게 애정을 품은 경희는 선영을 부추겨 편지를 보내도록 했으며, 나중에 사랑 고백을 했다가 거부 당한다. 병식은 하녀 역할을 ‘아더매치’(아니꼽고 더럽고 매스껍고 치사한)로 표현한다. 그녀의 아들은 검사로 임용됐지만 이러한 일쯤은 이 대단한 집안에서 돈봉투를 건네면서 지나가는 가십거리 이상이 아니다. 병식은 처음에 은이의 임신을 장모에게 알리는 악역을 맡지만 점차 은이의 처지에 공감하고 결국 그녀의 자살 직전에 집을 떠난다. 그럼에도 그녀는 체제순응형 방관자 이상은 될 수 없다.

원작이 집안을 파멸시키는 악녀로서 하녀의 존재를 부각시키고 그녀의 내적 동기나 배경을 생략한데 비해 리메이크 작품은 공고한 계급구조로 눈을 돌린다. 은이의 허벅지에 난 커다란 화상 자국은 선명한 하층계급의 상징이며, 그녀가 주인 남자와의 관계에서 순수한 기쁨을 느끼거나 그의 딸 나미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장면은 지배계층의 부도덕성과 대비된다. 은이가 자살하는 순간 소화용 스프링클러가 작동할 만큼 주인 가족들의 보호막은 확실하다. 

하녀의 죽음 앞에서 황급히 집을 빠져나간 이들은 그 악몽을 잊기 위해 미국으로 가 그곳에서 일상을 이어간다. 갈수록 비인간화하고 무뎌지는 감성만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는다.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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