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월드컵 16강 못 오를 고지 아니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첫 ‘원정 신화’ 달성을 위한 ‘키워드와 변수’

허정무호가 사상 첫 ‘원정 16강’이라는 목표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 첫걸음은 가뿐하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출정식 경기인 에콰도르와의 친선경기에서 2대0 완승을 거뒀다. 선수는 물론 지켜보는 국민들도 16강 진출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지난 5월 20일 파주 NFC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포토데이에서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20일 파주 NFC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포토데이에서 허정무 감독과 선수들이 자세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외신들의 반응은 국민의 기대와 달랐다. 영국 스포츠 일간지 선은 남아공 월드컵 본선 출전국 전력과 선수를 평가한 가이드북에서 한국의 본선 예상 순위를 30위로 내다봤다. 영국의 타임스, 미국의 ESPN 사커넷 등도 한국이 조별 예선에서 탈락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예상일뿐 결과는 뚜껑을 열어 봐야 안다는 것이 대부분 국내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남은 기간을 잘 활용한다면 외신의 예상을 깨고 새로운 신화를 쓸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박문성(MBC)·한준희(KBS)·서형욱(SBS) 등 방송 3사 해설위원들도 “남은 기간 상황에 맞는 맞춤 훈련과 부상 등 변수만 조심한다면 16강은 가능한 목표”라고 말했다. 이들과 함께 대한민국 대표팀의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을 위한 필승 ‘키워드’와 변수 등을 살펴보자.

‘수비조직력’강화가 관건
3사 해설위원들은 대표팀의 16강 진출에 가장 중요한 키워드로 ‘수비 조직력’을 꼽았다. 단기간에 치르는 경기에서 이기는 것만큼 지지 않는 경기 운용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특히 아르헨티나와 같은 강팀을 상대할 때는 3점의 승점보다 1점의 승점 획득이 더 현실적이고 중요하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예로 들었다.

“당시 4강에 오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이 중심이 된 탄탄한 수비력이다. 당시 대표팀은 승패의 의미가 적은 터키와의 3-4위전을 제외하면 4강까지 3골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이처럼 월드컵 같은 단기 토너먼트에서는 수비 조직력이 특히 중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에 16강 진출을 위해 우선적으로 수비 조직력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수비 불안은 이번 대표팀의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꾸준히 지적됐다. 우선 은퇴한 홍명보, 최진철, 김태영의 뒤를 이을 걸출한 수비수가 나타나지 않았다. 현재 대표팀 수비수인 조용형, 곽태휘, 이정수, 김형일 등은 안정감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따른다. 특히 지난 2월 일본에서 열린 2010 동아시아축구선수권에서 중국에 3골을 내주면서 0대3으로 패해 수비 불안에 대한 걱정은 절정에 이르렀다. 같은 조에 속한 리오넬 메시, 카를로스 테베스(아르헨티나), 야쿠부 아예그베니(나이지리아) 등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가 즐비해 어느 때보다 수비 안정이 절실하다.

축구대표팀 이승렬(오른쪽)이 5월 16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29분 선제골을 넣고 이청용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축구대표팀 이승렬(오른쪽)이 5월 16일 상암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후반 29분 선제골을 넣고 이청용과 함께 기뻐하고 있다. |이석우 기자

그러나 수비수 개인의 능력이 상대팀 공격수에 비해 떨어지는 점은 사실이지만 막을 수 없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현대 축구의 수비는 수비수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미드필더는 물론 공격수까지 참여하는 것”이라면서 “남은 기간에 수비 조직력을 강화해 협력 수비로 부족한 개인 기량을 보완한다면 크게 걱정할 수준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수비진과 박지성, 김정우 등 미드필더진의 긴밀한 협력 수비로 개인 기량의 차이를 극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의미다.

결국 수비수 개개인의 기량에 의존하지 말고 선수 전원이 상대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도록 수비 조직력을 극대화하는 것이 원정 16강 진출의 가장 중요하고 기초적인 키워드인 셈이다.

상대에 맞는 ‘맞춤형 전술’
16강 진출을 위한 두 번째 키워드는 ‘맞춤형 전술’이다.
각종 외신이나 도박 사이트, 피파랭킹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대한민국은 B조 최약체다. 냉정하게 따지면 B조에 속한 상대팀은 상당한 강팀이다.
 
최고 공격수 메시를 비롯해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선수가 즐비한 아르헨티나, 유로 2004 우승에 빛나는 그리스, 아프리카 강호 나이지리아 등 이들과 대등하게 경기를 펼치기 위해 대표팀은 기량을 100% 발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철저한 상대 분석과 그에 맞는 전술적 대처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 해설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즉 상대와 상황에 따른 적절한 전술로 경기를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해설위원들은 그리스·아르헨티나·나이지리아를 상대하기 위한 전술의 핵심으로 각각 스피드, 협력 수비, 압박을 꼽았다.

상대적으로 수비수의 민첩성이 떨어지는 그리스에는 스피드를 앞세운 전술이 필요하다.발이 느린 수비수의 뒤쪽 공간을 파고들거나 세트피스에 나선 수비수들이 제자리를 찾기 전에 빠른 공격 전개를 하는 방법이 유효하다. 따라서 발 빠른 공격수의 기용이 중요하다.

공격수의 개인 기량이 월등한 아르헨티나에는 공간을 내주지 않는 협력 수비가 중요하다. 미드필드와 수비진이 간격을 좁혀야 발이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메시나 테베스 등 공격수가 쉽게 볼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어느 경기보다 강한 체력이 요구되므로 김정우, 김남일 등 체력과 수비가 좋은 미드필더 기용이 필요하다.

공격수의 개인 능력은 뛰어나지만 조직력이 약한 나이지리아에는 강한 압박이 효과적이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개되는 속도가 느리고 선수 개개인이 볼을 소유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적극적인 압박으로 상대의 흐름을 끊어야 한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각 팀의 강점과 약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맞는 전술과 선수 기용이 16강에 중요한 키워드”라고 예상했다.

‘미드필드’를 두텁게
세 번째 키워드는 ‘미드필드’다. 기본적으로 활용하는 4-4-2 포메이션이 아니라 5명의 미드필더를 활용해 허리 싸움에서 우위를 차지해야 한다. 해설위원들은 대표팀이 일반적으로 활용해 온 4-4-2보다 4-2-3-1 포메이션이 효과적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상대에 따라 다르겠지만 지지 않는 경기를 펼치기 위해 전방에 2명의 공격수를 배치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서형욱 해설위원도 “객관적 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미드필드 싸움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면서 “수적인 우위를 점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라고 제시했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가장 큰 변수는 부상이다. 사진은 AS모나코의 박주영이 지난 5월 2일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 수비수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사상 첫 원정 16강 진출의 가장 큰 변수는 부상이다. 사진은 AS모나코의 박주영이 지난 5월 2일 파리 생제르맹과의 경기에서 수비수 태클에 걸려 넘어지고 있다. | 연합뉴스

그동안 대표팀은 경기 상황이나 상대에 따라 4-3-3이나 4-2-3-1 등의 포메이션을 선보이긴 했지만 4-4-2 포메이션을 기본 전술로 삼았다. 그러나 16강 진출을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허리에서부터 안정적인 경기 운용을 펼쳐야 한다. 또 상대적으로 박지성·기성용·이청용 등 해외파 미드필더의 공격력이 강하고, 김재성·김남일·김정우 등 미드필더 자원이 풍부하기 때문에 수적으로 이들을 잘 활용하는 전술이 필요하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경기 초반에는 5명의 미드필더로 안정적인 경기 운용을 하면서 상대 체력이 떨어지거나 집중력이 흔들리는 후반에 안정환이나 이동국 등을 투입해 공격적으로 나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강력한 변수 ‘부상’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에 가장 큰 변수는 ‘부상’이다. 그동안 부상자가 없는 월드컵은 거의 없었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대회 직전에 주전 공격수 황선홍이 무릎을 다쳐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이영표가 허벅지 부상으로 조별예선 1, 2차전에 결장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이동국이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이번 대회에서도 부상의 암운이 드리웠다. 주전 공격수 박주영이 허벅지 부상으로 소속팀 경기도 끝내지 못한 채 대표팀에 합류했다. 지난 5월 16일에 벌어진 에콰도르와의 경기에서 이동국은 허벅지를 다쳐 완치까지 3주가 걸린다는 진단을 받았으며, 김재경도 발목을 다쳤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부상은 모든 팀의 변수이기는 하지만 우리 대표팀은 선수층이 두텁지 않기 때문에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수층이 두텁지 않은 우리 대표팀의 경우 박지성, 박주영 등 특정 선수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따라서 특정 선수가 부상했을 경우 전력의 차질이 크다. 부상에서 회복 중인 박주영, 이동국 등 주전 공격수가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경기에 임할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따라서 부상 관리가 상당히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또 다른 변수는 평가전이다. 3경기를 단기간에 치르기 때문에 대표팀 분위기는 중요하다. 대표팀은 5월 16일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을 시작으로 24일 일본, 30일 벨로루시, 6월 3일 스페인과 차례로 평가전을 치른다. 이들 경기의 내용에 따라 대표팀의 사기가 달라질 것이고, 이는 조별예선 첫 경기인 그리스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은 “2002년 당시 5대0으로 진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고 스코틀랜드에 대승을 거두면서 해 볼 만하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면서 “앞으로 남은 평가전, 특히 마지막 스페인과의 평가전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말했다.

적을 알아야 이길 수 있다
이제는 ‘상대’를 알아야 한다. 대표팀은 남은 기간에 상대팀을 정확하게 분석하고 맞춤형 전술을 준비해야 100% 기량을 발휘할 수 있다.
축구팬도 마찬가지다. 상대를 알아야 더 재미있게 경기를 관전할 수 있다.

그리스


그리스 국가대표 수비수 키르기아코스

그리스 국가대표 수비수 키르기아코스

감독-오토 레하겔

주목할 선수-안젤로스 카리스테아스(FW·독일 뉘른베르크), 소티리오스 키르기아코스(DF·영국 리버풀)

주요 성적-유로 2004 우승

그리스는 탄탄한 수비조직력이 강점인 팀이다. 2001년부터 9년째 장기 집권한 레하겔 감독이 이탈리아의 빗장 수비에 버금가는 강력한 수비진을 만들었다. 그리스는 기본적으로 수비에 치중하다가 역습으로 상대 골문을 노린다. 신장 190㎝대 장신 수비수들이 다부진 체격을 이용, 세트피스에 적극 가담하는 것도 위협적이다.
약점은 정형화된 공격 루트와 발이 느린 수비수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장신 수비수가 세트피스 때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는 순간을 노려 역습하거나 발이 느린 수비수 뒷공간을 노리는 것이 유효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아르헨티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 리오넬 메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공격수 리오넬 메시

감독-디에고 마라도나

주목할 선수-리오넬 메시(FW·스페인 바르셀로나), 카를로스 테베스(FW·영국 맨체스터시티)

주요 성적-1978·1986년 월드컵 우승

아르헨티나는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메시, 테베스, 곤살로 이과인(스페인 레알마드리드) 등으로 구성된 공격진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우승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 후안 세바스티안 베론(아르헨티나 에스투디안테스)과 하비에르 마스체라노(리버풀)가 자리한 미드필드도 공·수 조율이 완벽하다. 말 그래로 ‘최강’ 팀이다.
굳이 약점을 찾는다면 수비 조직력이다. 월드컵 지역예선 18경기에서 23골을 넣고 20골을 내줬다. 볼리비아에 1대6으로 대패했고, 에콰도르에도 0대2로 진 전력이 있다. 한준희 해설위원은 “미드필드부터 강하게 압박해 공격을 막아낸다면 의외로 좋은 게임을 펼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나이지리아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

나이지리아 국가대표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

감독-라르스 라예르베크

주목할 선수-존 오비 미켈(MF·영국 첼시), 피터 오뎀윈지(FW·러시아 로코모티프 모스크바)

주요 성적-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우승

나이지리아는 개인기가 뛰어난 팀이다. 첼시의 간판 미드필더 미켈과 전형적인 원톱 플레이어 야쿠부 아예그베니(영국 에버턴), 스피드와 돌파력이 뛰어난 오뎀윈지 등 선수 개개인의 능력은 탁월하다.
그러나 나이지리아는 조직력에서 문제점을 드러낸다. 개인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개되는 속도가 느리다. 이에 따라 강한 압박에 무너지는 경향이 있다. 또 지난 2월에야 감독이 확정됐고, 월드컵 출전수당 등 금전적인 문제도 얽혀 있어 팀 분위기가 좋지 않다. 서형욱 해설위원은 “강한 압박으로 흐름을 뺏는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