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월드컵 거리응원 ‘대기업 각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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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광장 기업 마케팅 침투 가능성… 자본논리에 시민응원마저 상업화

월드컵 거리응원의 메카인 서울광장이 벌써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서울시는 서울광장을 마케팅의 일환으로 활용하려는 기업에 내놓았고, 이를 선점하기 위해 기업 간에 신경전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모습을 두고 마케팅의 도구로 전락한 거리응원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 당시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로 가득 찬 서울광장 모습.

2002년 한·일 월드컵 3-4위전 당시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로 가득 찬 서울광장 모습.

광장 사용권 둘러싼 대기업 간 갈등
지난해 12월 서울시와 SKT는 ‘매력 넘치는 도시 서울 만들기’ 공동추진 협약을 맺었다. 상호협력 분야 조항에 ‘2010년 월드컵 응원 등 주요 행사를 통해 천만 시민 고객이 서울에 대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상호 협력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협약서에는 월드컵 응원이 무엇인지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은 별도로 정한다고 명시됐다. 이를 두고 서울시가 SKT에 서울광장을 내준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3월 25일 문화연대는 서울시가 SKT에 200억원을 받고 월드컵 기간에 서울광장 사용권을 팔았다고 규탄하는 성명서를 냈다.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최지현 팀장은 “서울시가 공적 공간인 서울광장을 거대 자본에 팔아넘겼다”고 주장했다. 서울시와 SKT가 불분명한 내용으로 협약서를 맺고 세부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방식으로 월드컵 기간 서울광장 사용권을 ‘거래’했다는 것이다. 최 팀장은 “서울시가 공적 장소를 일방적으로 기업에 넘기고 거리응원의 상업화를 부추겼다”고 비판했다.

문화연대의 성명서는 ‘서울시가 200억 받고 SKT에 월드컵 기간 서울광장 독점 사용권을 팔아버렸습니다. 촛불시위는 막고 광장은 기업한테 팔고…’라는 글로 트위터에 퍼졌다. 트위터에는 서울시와 SKT를 비난하는 트윗이 쏟아졌다.

서울광장 사용권 문제는 문화연대 성명서 발표 이전부터 진행 중이었다. 지난해 서울시와 SKT의 협약에 대해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공식 후원사인 현대자동차가 제동을 걸며 갈등을 빚었다. 현대차는 공식 후원사가 거리응원을 주도해야 한다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규정을 근거로 들었다.

현대차 홍보팀 관계자는 “월드컵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SKT가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부터 광고와 거리응원 지원을 통해 자사와 월드컵의 관련성을 작위적으로 생산, 활용했다”고 주장했다. 월드컵 공식 후원사의 권리를 뺏겼다는 것이다. 그러나 크게 반발하기에는 조심스럽다는 것이 이 관계자의 말이다. “마치 월드컵 거리응원을 두고 기업끼리 싸우는 모습으로 시민들에게 비춰질까 조심스럽다. 우리는 공식 후원사로서 자발적 거리응원을 최대한 지원하는 권리를 누리고 싶다.”

현대차 등 타기업과 온라인 상의 비판이 확산되자 서울시는 4월 4일 월드컵 기간에 서울광장을 시민과 단체 및 기업에 자발적인 축제공간으로 개방하겠다고 밝혔다. 또 거리응원에 참여한 시민들에게 시청 내 화장실을 개방하고 아리수 제공 등 편의시설도 지원하기로 했다. 특정 기업에 서울광장 사용권을 넘기고 거리응원을 상업화시킨다는 비판을 에둘러 반박한 셈이다.

서울시 김태명 전략기획팀장은 “공동추진 협약서에 명시된 월드컵 응원 등 주요 행사에 상호 협력한다는 것은 포괄적 의미의 협약”이라면서 “200억원을 받고 사용권을 넘겼다는 것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서울시가 기업 개입 정당성 부여”
그러나 서울시는 서울광장의 거리응원을 기업이 마케팅으로 활용할 가능성을 열어 뒀다. 서울시는 기업의 로고 등 브랜드를 노출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서울광장 거리응원 지원을 신청하는 단체나 기업은 서울·청계광장 사용에 대한 별도의 비용 없이 참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하는 기업으로부터 대형 스크린 및 무대, 행사인력 등 지원을 받겠다는 것이다. SKT든 현대차든 서울광장 거리응원에 대기업의 자본을 끌어들이겠다는 점은 확실하게 밝힌 것이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SK텔레콤의 월드컵 캠페인 광고의 일부.

2006년 독일 월드컵 당시 SK텔레콤의 월드컵 캠페인 광고의 일부.

김 팀장은 “원하는 모든 단체와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했고, 브랜드 노출을 금지했기 때문에 거리응원의 상업화를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업화를 막았다는 서울시의 대응에 문화연대는 다시 한 번 성명서를 내며 비판에 나섰다. 최지현 팀장은 “중요한 것은 기업로고 노출 금지가 아니다”면서 “서울시가 자의적으로 시민들의 자발적 거리응원에 기업 개입의 정당성을 부여한 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SKT는 서울시로부터 서울광장을 산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월드컵 거리응원을 활용할 계획은 부정하지 않았다. SKT 홍보팀 관계자는 “200억원 지불은 사실무근”이라면서 “애초부터 브랜드를 드러내지 않고 거리응원을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거리응원 지원이 마케팅의 일환임은 감추지 않았다.

SKT는 거리응원은 비용이 발생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해 기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레 기업의 역할이 노출되면서 시민들에게 긍정적 인식을 심어 주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엠부시 마케팅(공식적인 후원업체가 아니면서도 광고 문구 등을 통해 스포츠 이벤트와 관련이 있는 업체라는 인상을 줘 고객의 시선을 모으는 전략)이라고 비판하지만 대부분의 기업이 월드컵 기간에 취하는 방식이다”고 설명했다. 이번 갈등은 서울광장 거리응원을 선점하기 위한 기업 간의 신경전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결국 월드컵 기간 서울광장 선점을 두고 드러난 갈등은 거리응원이 상업화됐음을 의미한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붉은 악마 정기현 대외협력팀장은 “서울시는 모든 이에게 개방했다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으로 SKT 같은 대기업이 주도하는 것이 현실”이라면서 “거리응원이 순수함을 잃고 대기업의 마케팅 논리에만 휘둘리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아대 정희준 스포츠사회학 교수는 “지금까지의 양상은 거리응원의 상업화로 비판받은 2006년 월드컵과 유사하다”고 지적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 때 서울광장 사용권은 입찰 형식으로 이뤄져 SKT가 중심이 된 컨소시엄이 차지했다. 2006년 서울광장 거리응원은 SKT 등 대기업의 직·간접 광고로 기업의 상업주의에 이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또 응원을 주최한 기업 관계자를 위한 특별석을 만들고 작위적인 공간 구성으로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정 교수는 “서울시가 진심으로 자발적 거리응원을 지원할 생각이라면 비용을 핑계 삼아 기업을 끌어들여서는 안 된다”면서 “지금의 방식이라면 거리응원에 나선 시민들을 기업의 마케팅 도구로 방치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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