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5일 배달제’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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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를 배달하고 있는 미국의 여자 집배원.

편지를 배달하고 있는 미국의 여자 집배원.

어쩌면 내년부터 미국에서도 토요일에는 우편물을 받아볼 수 없게 될 지 모르겠다. 미국 우정청(USPS)이 우편물 주5일 배달제를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방침을 확정하고 본격 추진에 나섰기 때문이다. 우편물 배달 일수를 주6일에서 5일로 단축한다는 것은 곧 토요일 배달을 폐지한다는 뜻이다.

일찍이 주5일 근무제가 뿌리 내린 미국에서 ‘토요일에도 우편배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미국은 연방법에 ‘우편물은 주 6일 배달돼야 한다’고 명기돼 있다. 토요일에 다른 관공서는 문을 닫아도 우편물 배달 차량은 그래서 변함없이 굴러간다. 이번에 USPS가 주5일 배달제를 시행하겠다는 것은 연방법을 개정하겠다는 뜻이다. USPS에는 법률 개정 권한이 없기 때문에 감독기구인 우정규제위원회(PRC)를 통해 개정안을 제출하고 의회를 설득하겠다는 입장이다.

USPS가 토요배달을 폐지하려는 이유는 단순하다. 비용을 줄여야 하기 때문이다. USPS는 2006년 이후 우편 물량이 급감하면서 갈수록 적자 규모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무려 70억달러(약 7조8000억원)의 적자를 내 파산할 뻔 했다. 의회에서 긴급구제 조치를 취해 겨우 고비를 넘겼지만 위기의 본질이 해소된 것은 전혀 아니다. USPS가 의회에 낸 자료에 따르면 지금의 운영체제를 그대로 이어갈 경우 10년 후 적자 규모가 2380억달러에 이른다. 이런 사태를 피하려면 줄어든 수입 규모에 맞춰 지출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토요배달 폐지는 이런 때 가장 손쉬운 경비절감 방안이다. 이 조치 하나만 취해도 연간 31억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게 USPS의 주장이다.

그러나 USPS의 뜻대로 법 개정이 쉽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우편물 배달 일수를 연방법에 규정할 정도로 미국은 우편의 가치, 보편적 서비스의 가치를 중시하는 나라다. 효율성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우편을 오로지 비용 관점에서만 보아서는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다. 토요배달이 끊기면 우편물 의존도가 높은 농촌지역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같은 취약계층은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문제는 정치적 이슈다. 여론조사에선 70%가 토요배달 폐지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지만 유권자 정서에 민감한 국회의원 몇명이 “나는 주5일 배달에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소신을 밝히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더욱 현실적인 장벽은 노조의 반대다. 조합원수 29만명에 이르는 전국집배원노조(NALC)는 “주5일 배달제는 잘못된 길”이라면서 “노조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 싸울 것”이라고 투쟁 의지를 다지고 있다. 노조의 논리는 이렇다. 토요배달을 없애면 당장 눈앞의 비용절감은 가능하겠지만 이것이 선례가 되어 주4일·주3일 배달로 줄어들지 말라는 법이 없으며, 결국에는 고객을 내쳐 우체국 스스로 자기 무덤을 파는 꼴이 된다는 것이다. 논리에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실질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주6일에서 주5일로 배달체제가 바뀌면 집배원 6명 가운데 1명은 일자리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USPS는 해고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내지 않고 있지만 인력 감축 없이 비용 절감이란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당장 파트타임 근로자 1만3000명이 우선해고 대상으로 지목돼 있고, 이를 포함해 2만6000개 일자리를 줄인다는 게 USPS의 계획이다. 역사상 한 번도 실행된 적은 없지만 USPS 입사 6년 미만인 근로자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해고할 수 있도록 법규에 나와 있다. 노조가 위기를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미국에 비해 우리의 주5일 배달제는 무리없이 연착륙한 셈이다. 우선 토요배달 폐지가 사회적 쟁점이 된 적 자체가 없고, 집배원 감축문제 또한 크게 불거진 적이 없다. 전자는 우리가 미국만큼 우편을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며, 후자는 때마침 그때 소포와 같은 무거운 우편물이 급증하는 추세여서 인원 감축 없이 노동력의 상쇄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주5일 우편배달을 당연하게 여기는 한국 사회에 우체국은 박수를 보내야 하나 섭섭하게 생각해야 하나.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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