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우정, 민영화 접고 공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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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우정개혁 법안을 수용함에 따라 일본우정은 공기업으로 돌아가는 방향성이 확실해졌다. 한 여성이 도쿄의 일본우정 산하 은행 앞을 걸어가고 있다. AP/연합

일본의 하토야마 총리가 우정개혁 법안을 수용함에 따라 일본우정은 공기업으로 돌아가는 방향성이 확실해졌다. 한 여성이 도쿄의 일본우정 산하 은행 앞을 걸어가고 있다. AP/연합

일본의 민주당 정부가 집권 8개월만에 우정민영화에 대한 입장을 정리해 국민 앞에 공개했다. 가메이 시즈카 금융우정상이 최근 밝힌 우정 개혁 법안이다. 발표 직후 정부 내에서 일부 반대 의견이 나와 혼선이 빚어졌으나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가 수용 의사를 밝힘에 따라 그대로 시행될 공산이 커졌다.

민주당 정권은 지난해 선거에서 우정민영화를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공약했고, 집권 직후 우정민영화의 상징 인물인 일본우정그룹 회장을 가차없이 경질한 바 있다. 민영화 되돌리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 준 것이다. 그러나 이미 상당 부분 진행된 것을 어떻게 되돌리겠다는 것인지 뚜렷한 대안을 제시한 적이 없었다. 이번에 구체적인 방안이 나온 것이다.

지난 2007년 10월에 시작된 일본의 우정민영화는 우정공사를 5개 회사로 쪼갠 게 핵심이다. 일본우정이라는 지주회사 아래에 우편사업회사와 우편국회사, 유초은행(예금)과 간포생명보험(보험) 등 4개 자회사를 둔 것이다.

이번 개혁 법안은 이 가운데 지주회사, 우편사업회사, 우편국회사 등 3개를 통합해 모(母)회사로 하고 유초은행과 간포생명을 그 아래 자회사로 두는 게 골자다. 우편을 모회사, 금융을 자회사로 각각 하는 이원 구조로 재편한 것이다. 여기에 민영화 이후 우편에만 적용해 온 보편적 서비스 제공 의무를 금융 2개사에도 지웠다는 게 눈에 띈다. 민영화의 색깔을 없애고 공공기관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여 주는 가장 확실한 대목이다.

막판까지 논란이 된 부분은 금융회사의 영업 범위에 관한 것이다. 현재 우체국(유초은행) 예금에 가입하려면 1인당 1000만엔(약 1억2000만원)을 넘을 수 없도록 돼 있다. 보험은 1300만엔(1억6000만원)이 한도액이다. 가메이 우정상은 이를 예금은 2000만엔, 보험은 2500만엔으로 각각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민간은행에서 ‘우체국의 비대화’를 우려하며 강력 반발했고, 정부 내에서도 몇몇 장관이 공개적으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부 한국 언론에서 이 부분을 들어 일본의 우정민영화 되돌리기 행보가 갈 지(之) 자를 그리는 것처럼 보도했으나 그렇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예금·보험의 가입한도액은 나라별 특성에 따라 설정하고 조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 우체국에선 예금 가입액에 한도가 없고, 보험은 4000만원이 상한이다. 일본의 한도액 조정은 민영화라는 본질과 거리가 있는 부차적 문제일 뿐이다.

가메이 우정상이 밝힌 민영화 되돌리기의 확실한 행보는 비정규직 줄이기다. 일본우정그룹은 현재 일본 내에서 비정규직을 가장 많이 고용하고 있는 기업이다. 민영화 2년만에 정규직을 6000명 줄이고 비정규직을 1만5000명 늘리면서 전 직원 43만7000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21만3000명이 비정규직으로 됐기 때문이다. 비정규직은 대부분 우편사업회사에 몰려 있다. 이들 가운데 64%는 연 수입이 200만엔(2600만원) 미만인 ‘워킹 푸어’다. 가메이 장관은 “이들 비정규직 가운데 10만명을 3~4년에 걸쳐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되면 인건비가 연 3000억엔(3조9000억원)쯤 더 들어간다. 지난해 우정그룹이 낸 순이익이 4227억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그렇더라도 공공기관으로서 마땅히 치러야 할 비용이라는 게 일본 정부의 인식이다.

일본 정부가 민영화 되돌리기에 나섰지만 온전하게 종전 형태로 돌아가겠다는 것은 아니다. 신설하는 우편 모회사는 정부 지분이 3분의 1 이상, 금융 자회사는 우편 모회사의 지분이 3분의 1 이상 각각 되도록 하고 중요 결정사항에 대해서도 정부 승인을 받는 체제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러나 종래처럼 정부가 지분 100%를 갖지는 않는다. 3분의 2 가량의 지분은 시장에 매각하겠다는 뜻이다. 다만 매각 시기는 불투명하다. 가메이 우정상은 “조직을 갖추고 사업하면서 생각해 보겠다”고 밝혔다. 종전의 민영화 스케줄, 즉 올해부터 정부 지분을 시장에 매각한다는 일정을 따르지는 않겠지만 상황을 보아 가며 새로운 매각 스케줄을 잡겠다는 얘기다. 결국 일본의 우정민영화 되돌리기는 국영화(國營化)가 아닌 공기업화로 귀결되는 분위기다.

<이종탁 경향신문 사회에디터 jt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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