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세무·경찰 고위직 ‘재계 은밀한 러브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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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퇴자 영입경쟁 치열…“전문성 기업활동 도움” 불구 “외풍막이” 눈총

국세청과 경찰청 간부 출신에 대한 재계의 스카우트전이 치열하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국세청 세무서장급 이상 20여 명이 명예퇴직하자 이들을 영입하기 위한 물밑전이 뜨거웠다. 잇따른 기술 유출과 안전사고 탓에 보안 전문가인 경찰 출신도 인기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2월 8일 윤재옥 경기청장을 비롯한 지방청 지휘부와 도내 38개 경찰서장 등 2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경찰 2010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연합뉴스

경기지방경찰청은 지난 2월 8일 윤재옥 경기청장을 비롯한 지방청 지휘부와 도내 38개 경찰서장 등 2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기경찰 2010 비전’ 선포식을 가졌다. |연합뉴스

이들에 대한 스카우트전은 주요 상장기업의 3월 주주총회 시즌을 앞두고 그 결과가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주류·제약·건설 회사에서 국세청 출신을 선호하고, 삼성그룹은 경찰 고위직 출신을 상당수 영입하고 있다. 최근엔 임원보다 공직자 취업금지 규정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사외이사로 방향을 틀고 있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 영입으로 기업 활동에 효과적”이라는 옹호와 함께 “기업의 바람막이용”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사외이사·고위 임원급 영전 잇달아
우선 재계의 영입 대상 1호는 국세청 출신 인사다. 국세청 출신은 흔히 법조인, 고위 관료 출신들과 더불어 사외이사 시장에선 상한가로 평가된다. 삼성과 현대·기아차그룹 및 신세계 등 국내 대기업에 포진하고 있는 국세청 출신 사외이사만 해도 상당수다. 지방에 기반을 둔 기업의 경우는 그 지역에서 근무 기간이 긴 세무직 공무원 출신 사외이사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최근 국세청에서 25명이 넘는 세무서장급 이상 간부들이 명예퇴직하면서 이들에 대해 기업이 주목하고 있다.

지난해 말 국세청에서는 인사 적체 탓에 석호영 서울국세청 납세지원국장을 비롯해 부이사관급인 오정균 대전국세청 조사2국장 등 고위공무원과 함께 김종두 강남세무서장, 서동명 종로세무서장 등 서울국세청 소속 간부 9명, 박진근 성남세무서장과 권재철 춘천세무서장 등 중부국세청 소속 6명의 간부가 명예퇴직을 결정했다. 이 같은 명예퇴직 신청은 김석희 서대전세무서장, 정호경 광주국세청 조사1국장, 정정수 부산국세청 조사1국장 등 전국 각지로 이어졌다. 올해 들어서도 이학찬 평택세무서장과 최동수 중부국세청 조사국 과장, 진형양 도봉세무서장이 명예퇴임식을 가졌다.

국세청과 경찰청 고위 간부 출신에 대한 기업들의 스카우트가 치열하다. 국세청 간부들이 지난 1월 11일 전국 세무관서장회의에서 백용호 청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민규 기자

국세청과 경찰청 고위 간부 출신에 대한 기업들의 스카우트가 치열하다. 국세청 간부들이 지난 1월 11일 전국 세무관서장회의에서 백용호 청장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박민규 기자

이 가운데 최고위직은 석호영 국장이다. 1951년과 1952년생 중심으로 이뤄진 이번 명예퇴직에서 석 국장은 정년이 한참 남아 있는 상태(1957년생)에서 용퇴를 결정해 눈길을 끌었다. “후배 공직자들에게 승진의 길을 열어 주기 위해 퇴직을 결심했다”는 그는 지난 2월 1일 두산그룹 계열의 납세병마개 제조업체인 삼화왕관 부회장에 취임했다. 현재 국세청은 주세 탈세를 막기 위해 주류 제조업체가 의무적으로 납세병마개 제조업체로부터 병마개를 공급받아 사용토록 하고 있으며, 40년 가까이 삼화왕관과 세왕금속공업 등 단 두 업체만 제조업체로 지정하고 있다. 올해 초 명예퇴직자인 진형양 서장은 퇴임 이후 서안주정 감사, 이학찬 서장과 최동수 과장도 각각 국세청 산하 주류단체 임원급에 영입될 것으로 전해졌다. 일부 국세청 출신들의 국내 주류 기업 임원급으로의 영입은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이슈가 되기도 한다.

최근엔 일제히 시작된 12월말 결산 법인들의 주주총회에서 지난해에 이어 국세청 고위간부 출신들의 상장사 사외이사 선출이 속속 이뤄지고 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DART) 공시와 업계에 따르면 황규종 전 국세공무원교육원장이 영풍정밀의 사외이사, 김종근 전 중부지방국세청 간세국장은 임기 2년의 고려아연 사외이사에 각각 재선임됐다. 또 김용재 전 중부지방국세청 납세자보호담당관은 세방, 김호기 전 대구지방국세청장은 현대하이스코, 임정만 전 반포세무서장은 동성제약, 최병철 전 부산지방국세청장은 삼호개발의 사외이사로 각각 선임됐거나 될 예정인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1월 웅진그룹이 총괄 역할을 맡기며 영입한 이주석 부회장도 국세청 출신이다. 본청 조사국장, 서울지방국세청장 등 요직을 거친 이 부회장은 퇴직 후 법률회사 김&장에서 근무하다가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아들였다는 후문이다.

국세청 세무서장급 20여 명 주목
‘압정형 조직’이라 불리는 국세청은 정원에 비해 고위직이 극히 적어 간부 출신들에 대한 기업의 관심은 높을 수밖에 없다. 2만명에 육박하는 국세공무원 가운데 본청, 서울국세청, 중부국세청 국장급 직위 이상과 나머지 지방청장들로 구성된 고위공무원단 직위도 31개에 불과하다. 세무서장급 이상 핵심 직위에 앉아 있는 인물도 230명이 조금 넘는 수준이다.

국세청(오른쪽)·경찰청 간부 출신들의 기업행에는 “전문가 영입으로 기업 활동에 효과적”과 “기업의 바람막이용”이라는 옹호와 비판이 공존한다. |경향신문사

국세청(오른쪽)·경찰청 간부 출신들의 기업행에는 “전문가 영입으로 기업 활동에 효과적”과 “기업의 바람막이용”이라는 옹호와 비판이 공존한다. |경향신문사

삼성그룹은 최근 전직 고위급 경찰관 출신을 잇달아 영입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지난해 말 이영화 전 대전경찰청장(치안감)을 건설부문 고문으로 끌어왔다. 이 전 청장은 경찰 재직 당시 보안(대북 담당)·경무·공보 등 업무를 담당하고 울산경찰청 차장, 서울경찰청 경무부장, 대전경찰청장 등 주요 보직을 거친 뒤 지난해 3월 퇴직했다.

보안업체 에스원도 지난 1월 조용연 울산경찰청장(치안감)이 퇴임하자마자 영입했다. 서울경찰청 교통지도부 부장, 경찰청 보안국장, 충남경찰청장, 경찰청 경무기획국장, 울산경찰청장을 지낸 조 전 청장은 현재 상근감사로 근무하고 있다. 기업 특성상 경찰 간부 출신 영입에 적극적인 에스원은 이전에도 청와대 치안비서관 출신인 김중겸 전 치안감을 감사로 영입했고, 최중락 전 총경을 고문으로 영입한 바 있다.

최근 삼성그룹이 경찰 인사를 주로 영입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 재계에서는 그룹 내 각종 안전사고와 환경오염 등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을 내리고 있다. 경찰 간부 출신 인사 영입을 통해 긴급사태 발생시 경찰의 초동 조치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력을 활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에스원 홍보팀 관계자는 “에스원은 보안업체로서 경찰과의 협력이 중요한 기업”이라면서 “영입 인사들의 노하우가 기업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최중락 고문 등의 현장 직원 교육은 효과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삼성이 관계, 법조계 출신 인사 영입에 이어 경찰 고위 간부까지 영입하는 데에 대한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에버랜드 관련 검찰 수사가 한창일 때 판·검사 영입에 나선 데 이어 편법 경영권 승계 논란이 불거졌을 때는 경제 관련 부처의 고위직을 그룹에 합류시키며 방패막이를 쳤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경찰 치안감급 다수 영입
기업이 국세청과 경찰청 등 전직 고위 공무원을 영입하는 속내는 상대적으로 취약한 관계 인맥을 보완하고 정부에 자사 입장을 대변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신빙성을 얻고 있다. 국세청 출신의 경우 기업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세무조사 관련 실무 등에 정통하기 때문에 유용한 한편 정부의 갑작스런 조치에 대비하기 위해 안전장치를 놓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한 재계 단체 관계자는 “국세청처럼 내부 정보가 좀처럼 밖으로 빠져나오지 않는 폐쇄적인 기관도 없다”면서 “전직 국세청 간부들이 내부정보만 듣고 와도 기업으로선 그의 월급이 아깝지 않은 것”이라고 전했다.

이 때문에 최근 국세청과 경찰청 간부들의 기업 사외이사 진출에 대한 ‘눈총’이 따갑다. 김선웅 좋은기업지배연구소 소장은 “예전엔 고문이나 자문이라는 이름으로 영입됐지만 사외이사제도가 생기면서 전직 관료의 기업 진출에 대한 모양새가 좋아졌다”면서 “자본금 2조원 이상 기업의 경우 이사진에 사외이사가 50%를 넘어야 하는 현실에서 기업 입장에선 이를 로비나 ‘얼굴마담’용으로 뽑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감시와 견제로 기업의 경영투명성 제고라는 사외이사 제도의 취지보다는 연봉과 맞바꾼 ‘장식’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국세청 감찰담당관 관계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는 “세무조사는 주로 국세청과 기업 사이에서 세무사들이 대행하며, 이때도 선후배 관계가 작동하기는 어렵다”면서 “오히려 기업 내 국세청 출신들이 조사 행정 경험을 바탕으로 지적 사항에 대해 정확한 산출 근거를 내놓기 때문에 가세나 감세의 여지를 줄일 수 있어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공무원이 퇴직 후 2년 이내에 자본금 50억원 이상, 연매출 150억원 이상의 기업에 취업하려면 공직자윤리위원회 심사를 거쳐야 한다. 또 퇴직 직전 3년간 맡은 업무가 입사하려는 기업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면 취업할 수 없다. 공직에서 취득한 정보를 사기업에 활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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