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연중기획

‘제2의 용산’은 현재도 진행중이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

재개발 철거 세입자 고통 전보다 나아진 것 없어

지난 1월 20일 용산참사 희생자 1주기 추모행사가 남일당 골목에서 열렸다. 이날을 끝으로 유족들은 각자의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갔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용산범대위)는 25일까지 남일당 건물 주변의 천막과 현수막 등을 최종 철거했다. 남일당 현장에서 용산참사의 흔적이 완전히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은 용산참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문제 때문만이 아니다. 재개발 정책은 1년 전 ‘그 자리’에서 제자리 걸음이고, 재개발로 인한 갈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철거 세입자들은 재개발의 고통에 짓눌리고 있다. 그렇기에 용산참사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서울시 동작구 정금마을의 모습. 강제 집행으로 인해 상가의 출입문은 뜯겨졌고, 마을 곳곳에는 투쟁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서울시 동작구 정금마을의 모습. 강제 집행으로 인해 상가의 출입문은 뜯겨졌고, 마을 곳곳에는 투쟁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렸다.

조합의 비상식적 횡포
“칼만 안 들었지 완전히 강도나 마찬가지죠.”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 16구역 세입자 박철순씨(가명·67)의 하소연이다. 용산참사는 상가 세입자에 대한 현실적 보상 문제에서 시작됐다. 뉴타운으로 선정된 이곳 역시 보상문제를 두고 조합과 세입자 간에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답십리 16구역 세입자들은 조합의 비양심적 행태를 문제로 지적했다. 재개발 세입자는 2007년 4월에 개정된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을 동시에 보상받는다. 개정 이전에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보상받았지만 세입자 처우 개선을 위해 법이 개정된 것이다.

그러나 조합 측은 세입자가 법 개정 사실을 잘 모른다는 점을 이용했다. 세입자 이영수씨(40)는 “서류를 두 가지로 만들어 법에 대해 잘 모르는 세입자에겐 불리한 서류를 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답십리 16구역의 임대주택 신청서는 두 종류가 존재했다. 두 신청서는 모든 내용이 똑같았지만 ‘주거대책비(주거이전비)를 지급받지 아니하고’라는 문구의 삽입 여부만 달랐다. 즉 한 서류는 주거이전비를 포기하면 임대주택 입주권을 지급하겠다는 것이고, 다른 것은 주거이전비와 임대주택 입주권을 모두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이씨의 주장에 따르면 조합은 세입자에게 임대주택 입주권만 보상하는 신청서를 나눠 줬다. 이는 엄연한 불법행위다. 게다가 조합은 세입자가 임대주택 입주권과 주거이전비를 모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경우를 대비해 합의각서까지 작성했다. 합의각서에는 ‘당사자 외 외부에 발설하지 않는다’ ‘합의내용을 불이행할 때는 합의금액을 기준으로 2배의 손해배상금을 지불한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세입자들은 “이 사실도 모르고 이사간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면서 “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불법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고 조합을 비판했다.

진영목씨(49)도 조합에 의해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했다. 진씨는 1997년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로 이주했다. 모자를 생산하는 가내수공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그러나 답십리가 뉴타운 지역으로 선정되면서 진씨의 삶은 흔들렸다. 세입자인 진씨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주거이전비, 가내공업에 대한 영업권, 동산이전비, 임대주택 입주권이다. 그러나 조합에서는 주거이전비와 영업권만 보상하겠다고 통보했다. 진씨는 “보상 관련 법을 잘 몰랐고, 자녀 교육 등으로 인해 서둘러 이사해야 했다”면서 “주거이전비와 영업권만 받는다는 각서를 썼다”고 말했다. 전씨는 조합에 주거이전비와 영업권으로 각각 1380만원, 1050만원을 보상받는다는 합의각서를 써 줬다. 이후 조합의 태도는 돌변했다. 합의한 금액 가운데 주거이전비를 줄 수 없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해 왔다.

“이사 갈 집에 전세자금으로 낼 돈이었다. 황당하고 기가 막혔다. 합의각서까지 쓰고 불이행할 경우 2배의 위약금을 내야 한다고 으름장까지 놓더니…. 할 수 없이 높은 이자를 주고 돈을 빌릴 수밖에 없었다.”
진씨는 어쩔 수 없이 높은 이율에 급하게 돈을 빌렸다. 이로 인해 아직까지 생활고를 겪고 있다.

겨울철에 쫓겨난 사람들

답십리 16구역 조합이 세입자에게 지급되는 주거이전비를 줄이기 위해 만든 두 종류의 임대주택 신청서. 위는 ‘주거이전비를 지급받지 아니하고’라는 문구를 넣어 세입자의 권리를 묵살한 신청서이며, 아래는 정상적인 신청서다.

답십리 16구역 조합이 세입자에게 지급되는 주거이전비를 줄이기 위해 만든 두 종류의 임대주택 신청서. 위는 ‘주거이전비를 지급받지 아니하고’라는 문구를 넣어 세입자의 권리를 묵살한 신청서이며, 아래는 정상적인 신청서다.

세입자의 주장에 조합은 악의적 모함이라고 맞섰다. 장영목(가명) 조합장은 “자격 없는 소수의 세입자가 언론을 이용해 이득을 챙기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내 잘못을 일부 시인했다. 장 조합장은 “두 종류의 서류로 세입자에게 제시한 것은 조합원의 이익 때문이었다”면서 “수익성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세입자 권리를 다 챙겨 주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도리어 하소연했다.

관할인 동대문구청은 자신들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답십리 16구역 담당 구청 관계자는 “일부 자격이 미달된 세입자를 제외하고는 문제없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조합의 불법적 행위와 이로 인한 세입자와의 갈등 상황을 묻자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관계자는 “보상은 조합과 세입자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우리가 낄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2009년 12월 16일 오전 6시 서울시 동작구 정금마을. 영하 10도의 강추위 속에서 200여 명의 용역직원이 강제 집행을 실시했다. 자신의 상가와 주택을 ‘점거’하고 있던 세입자 5세대는 내복 바람에 길거리로 쫓겨났다. 살림살이는 집 밖에 아무렇게나 방치됐다. 현재 이들은 마을 입구의 빈 김밥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정금마을에 남은 가구는 10세대 가량, 이들이 요구하는 것은 용산참사 희생자들과 유사하다. 상가 세입자로서의 ‘현실적 보상’이다. 2003년부터 정금마을에서 제과점을 운영한 유석진씨(40)는 “처음에는 보상금 없이 나가라고 했다”면서 “없는 것이 죄”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남은 세입자들은 보상금을 요구했고, 조합의 태도는 조금씩 변했다. 20만원에서 시작한 보상금은 30만원, 50만원, 80만원으로 늘었다. 현재는 상가 세입자에게 2500만원까지 제시했다. 그러나 유씨가 제과점 인테리어 및 권리금으로 들어간 액수는 1억원이 넘는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도 사당동에서 재건축 때문에 쫓겨난 적이 있어요. 그 당시에 한 푼도 못 받았죠. 이제는 물러날 곳이 없어요. 저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인한 갈등을 두고 ‘나눔과 미래’ 이주원 국장은 “용산참사 이후로도 재개발 정책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용산참사 이후 서울시와 정부는 정책 변화를 꾀했다. 상가 세입자 휴업보상금 액수를 3개월분에서 4개월분으로 올린 것이나 재개발·재건축 현황을 인터넷에 공개키로 한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 국장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고민이 없는 미봉책”이라면서 “사회적 합의를 통한 공공성 강화로 토지·건물 소유자뿐만 아니라 세입자까지 보호받을 수 있는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