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스토리 집착증’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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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가대표>.

영화 <국가대표>.

루저 문화의 긍정성이 루저 그 자체를 긍정하는 삶의 만족이라는 지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한국에는 독자적인 루저 문화가 없다. 영화와 드라마에는 많은 루저가 등장하지만 결국 루저 주인공이 성공하는 이야기다. 흔히 ‘석세스 스토리’가 대중 흥행 콘텐츠의 핵심적인 코드로 꼽힌다. 2009년 드라마 <선덕여왕> <찬란한 유산>, 영화 <국가대표> <킹콩을 들다> <거북이 달린다>는 약자의 성공기였다. 2010년 드라마 <제중원> <추노> <공부의 신> <동이>는 루저나 약자의 성공을 담고 있다. 한국사회는 왜 성공기에 집착하고 대중의 호응이 이어지는 것일까.

위기는 기회고 추락은 상승의 발판이며 혼란은 변화의 계기였다. 광복과 한국전쟁, 그리고 경제 개발을 통해 한국인들이 겪은 사회구조는 변동이 컸다. 즉 상층으로 올라갈 가능성이 높았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표현이 가능했다. 누구라도 자신의 성공을 믿었다.

미국 영웅 캐릭터는 강자를 우선하는 사회문화를 반영한다. 막스 베버의 맥락대로 미국에서는 청교도 정신에 따라 강자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루저 성공기에 심리적 강박이 없다. 사회적 성공은 소명이자 성실함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일 뿐이다. 유럽인은 계급질서가 고착화돼 있기 때문에 신분 상승보다 개인의 삶에 더 주목한다. 따라서 유럽에 자리 잡은 루저 문화는 좌절의 문화가 내재화한 것이기도 하지만 삶의 철학이 다른 것을 의미한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 명예보다 가치를 우선으로 생각하는 게 대표적이다.

드라마 <선덕여왕>.

드라마 <선덕여왕>.

그런데 한국의 성공은 남에게 보이는 ‘그럴듯함’이다. 예컨대 명문대 졸업, 고시 합격과 대기업 입사는 그럴듯한 성공을 의미한다. 대중문화 콘텐츠에서 그려지는 성공도 같은 맥락 안에 있다. 영화 <국가대표>의 루저들은 국제대회에서 메달을 따야 했다. 드라마 <공부의 신>은 꼴찌들의 명문 ‘천하대’ 합격 과정을 그리지만 천하대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는 배제시켰다. 자칫 개인적인 한풀이식 성공은 사회적으로 비도덕성을 합리화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변했다. 많은 연구 자료가 한국에서도 개천에서 용 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이제 위너문화보다 루저문화가 더 필요하다. 위너에 집착하는 사회는 루저가 된 자신을 자학, 혐오하게 한다. 

한국의 젊은이 자살률이 높은 것은 그럴듯한 명예나 간판을 취할 수 없는 좌절감과 무력감에서 오는 자존감 상실에서 비롯된다. 그럼에도 대통령이 국민 누구나 그럴듯한 성공을 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사기이자 살인 교사이다. 얄팍한 현실 영합주의의 석세스 스토리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그 범람이 우려스럽다. 성공과 실패의 상대성을 보여 주는 게 필요하다.

김헌식<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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