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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AE 원전 수주, 끊이지 않는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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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기업 역할·덤핑입찰·이면계약 등 논란

2009년 12월 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한전사업본부 직원들이 원전 수출 확정 소식을 전해 듣고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09년 12월 27일 저녁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에서 한전사업본부 직원들이 원전 수출 확정 소식을 전해 듣고 환호하며 기뻐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2009년 12월 27일 저녁뉴스. 이명박 대통령의 특별기자회견이 지구 반대편 아랍에미리트(UAE)로부터 위성을 타고 생방송으로 진행됐다. UAE의 원전건설 4기를 한국이 수주했다는 것이다. 한 한나라당 의원은 “서울로 올라오는 막힌 도로 위에서 낭보를 전해 듣고 혼자 만세를 불렀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튿날. 원전 수주 소식은 대대적으로 언론 지면을 도배했다. 이 대통령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 청와대기자단이 전한 기자회견 뒷이야기도 대서특필됐다.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으러 간 것?
언론이 전한 이번 협상의 막전막후는 11월 초 UAE 정부가 한국을 버리고 프랑스의 아레바사를 선택하려고 하자 청와대가 직접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는 것. 11월 중순에 한승수 전 총리를 단장으로 한 비밀협상단이 급파됐으며, 이 과정에서 과거 현대건설 재직 당시 중동 건설 경험이 있는 이 대통령이 “단가를 낮춰라”고 하는 등 진두지휘했다는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기후변화대책 회의장에도 휴대전화를 들고 갔다. 모하메드 왕세자로부터 혹시 만나자는 전화가 걸려올 지도 몰랐기 때문이다.

타결 하루 전에 인터넷 토론사이트 ‘서프라이즈’에는 ‘(이 대통령의) 이번 출국은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이라는 글이 올라 왔다. 독립대본이라는 필명의 이 누리꾼은 그 근거로 “한국이 수주할 가능성이 크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지 보도를 제시했다. 증거는 속속들이 제출됐다. 원자력안전기술원의 한 책임연구원은 12월 9일 일간지에 실은 칼럼에서 “한국이 유력 대상자로 거론되고 있으며 최종결정을 앞두고 있다”고 진행 상황을 전했다. 한국팀에 참여한 두산중공업의 수주금액이 1조5000억원에 이를 것이라는 애널리스트 분석 보도도 수주 결정 며칠 전에 나왔다. 의혹은 간단하게 요약된다. 이미 수주가 결정된 것을 알고 이 대통령이 아부다비행 비행기를 탄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말해 ‘이미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얹으러 비행기를 탔다’는 주장이다. 대통령 출국 전에 한국 수주가 사실상 결정됐고, 이것을 이 대통령이 알고 있는 상태에서 출국했다는 주장은 사실로 보인다. 한 정보 당국 관계자는 “12월 초부터 관련 협상 진행 내용과 전망이 공유돼 있었으며, 이와 관련해 정부가 언론에 엠바고를 요청했던 상태”라고 밝혔다.

환경단체는 이번 수주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보이고 있었다. 수주 성공 소식이 나온 당일 환경운동연합은 논평을 내고 “이번 계약이 자동차 100만대를 수출하는 것과 맞먹을 정도의 경제적 효과를 주장하지만 그 효과는 부풀려진 것”이라면서 “한국형 원자로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나라(미국)에 사실상 상당한 경제적 이득을 이전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환경연합은 “원자력은 석유·석탄과 마찬가지로 고갈될 자원이며, 에너지 소비 총량을 줄이고 고효율 사회, 분산형 에너지 시스템으로 재편될 새로운 에너지 패러다임 시대에 대안이 되지 못하는 구시대의 유물”이라면서 “시대를 선도하지 못하고 과거의 기술로 미래를 저당 잡히고 있는 이번 수출 건이 대서특필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주장했다.

의혹은 계속됐다. 12월 28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의 원전업체 도시바와 자회사인 미국의 웨스팅하우스가 이번 UAE 원전을 수주한 한국 기업들에 필요한 핵심 기술을 제공하며, 기술 제공에 따른 라이선스료는 약 200억엔(약 2560억원)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한전과 한국정부 측이 밝히지 않은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 측의 ‘지분’을 밝힌 것이다.

한전 수주팀 참여 외국기업의 역할은

이명박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 수주 지원을 위해 2009년 12월 26일 오전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하기 위해 서울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원자력발전소 수주 지원을 위해 2009년 12월 26일 오전 아랍에미리트(UAE)로 출국하기 위해 서울공항에서 비행기에 오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의 기술 제공은 한국의 두산중공업을 통해 이뤄지며, 이미 외국에서 원전을 수주했을 때 두산중공업에 기기의 생산을 맡긴 적이 있다”라고 보도했다. 두산중공업 측은 말을 아꼈다. 두산중공업 관계자는 “이번 수주와 관련된 사항은 한전으로 창구를 단일화하기로 했다”고만 밝혔다. 한전 원자력사업처 원자력사업팀 관계자는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에 라이선스료를 지급하지도 않으며, (이번 수주에서 그들의 역할은) 기자재 일부를 공급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보도는 오보라는 것이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웨스팅하우스가 가지고 있는 ‘원자로와 증기발전기를 연결하는 펌프기술’은 과거 한국이 ‘콘버스천 엔지니어링’이라는 회사로부터 구입했으며, 이 회사를 웨스팅하우스에서 인수한 것일 뿐 이미 관련 기술에 대한 라이선스료는 다 지급했기 때문에 별도의 라이선스료를 지급할 의무가 없다는 것이다. 콘버스천 엔지니어링으로부터 기술 전수는 1987년부터 시작해 10년 동안 진행됐고, 한국형 원전이 만들어진 이후는 그 관계도 종료됐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한전 측의 보도자료를 면밀히 보면 알겠지만 한전과 나머지 기업들의 관계는 컨소시움 형태가 아니며, 도시바와 웨스팅하우스는 일종의 하청기업으로 참여한 것”이라면서 “실제 계약서를 보면 서명한 것도 한전이 독자적으로 사인했을 뿐 다른 기업의 사인은 없다”라고 말했다. 하동환 지식경제부 원자력산업과 사무관도 “웨스팅하우스와 도시바 역시 다른 기업과 함께 입찰을 냈는데 1차에서 탈락했다”면서 “탈락한 후 우리 쪽에서 하청기업으로 받아 줬다”라고 말했다.

하 사무관은 ‘숟가락 얹기’ 논란과 관련해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것은 사실이다. 아레바 쪽은 마지막까지 당연히 자신들이 되리라고 기대하고 있었을 것”이라면서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비즈니스 정상외교를 했고, 이번 수주는 그 결과 승리했다는 것이 정부의 시각”이라고 주장했다. 정부나 한전 측의 주장이 어디까지 맞는지 현재는 알 수 없다. 정부나 한전 측이 관련 정보의 ‘열쇠’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비판은 더해지고 있다.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은 ‘공기업 선진화 계획’ 때문에 지분 매각 등 경제성 논리에 밀려 기술개발 투자에 어려움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번 수주에 참여한 한국전력기술(KOPEC)의 경우 원전설계를 담당하고 있지만 선진화 계획에 따르면 지분을 40% 수준으로 매각하고, 10~15% 인력을 감축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홍 의원 측은 “인력 감축으로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과 원천기술 확보에도 어려움이 따르고 있다”면서 “원전 정비를 담당하는 한전KPS의 경우도 공기업 선진화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으로 고급 정비인력이 충원되지 않는 상태”라고 주장했다.

덤핑 논란도 나왔다. 경쟁사에 비해 한국의 입찰가격이 너무 낮으며, 특히 이 대통령의 ‘좀 더 깎아라’라는 지시 때문에 가격이 더 떨어졌다는 것이다. 12월 30일 국회 지식경제위에서 여야 의원들은 한국이 이번 수주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의 범위를 두고 논란을 벌였다. 건설 수주 이외에 전력판매 부문에 대한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은 국회 답변에서 “아직 추가계약이 남았지만 앞으로 지분에 참여해 운영권까지 일부 가져올 것으로 합의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밝혔다.

공은 모두 이명박 대통령 덕분?

UAE 수출에 성공한 한국형 원전 APR1400의 조감도. <연합뉴스>

UAE 수출에 성공한 한국형 원전 APR1400의 조감도. <연합뉴스>

원전 수주 이외에 국방부 장관 등이 추진한 이면계약 내용도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이면계약을 비롯해 계약의 전체 내용은 앞으로도 공개되지 않을 전망이다. 김쌍수 한전 사장은 국회 답변에서 “상관례상 계약서류는 공개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관련 핵 전문가들은 “수주 이외의 계약을 주목해 봐야 한다”라고 말한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북미 경수로 협정에서 보듯이 사업 주체는 한전이지만 원전 건설의 핵심부품이 인도되려면 원천기술을 가지고 있는 미국 쪽과의 별도의 협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국내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다른 협상의 궤적이 있다. 미국과 UAE 사이에 진행된 ‘123협정’이다. 2009년 1월에 체결된 이 협정은 12월 17일 워싱턴에서 발효가 선언됐다. 결정 열흘전에 UAE의 원전 건설과 관련된 최종 결정은 이미 내려졌다는 것이다.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대통령이 출국한다는 것은 사전 물밑 협상을 완료한 상태에서 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미 상대(프랑스 원전 건설사)를 압도하고 우리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11월부터 가지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의 보도 태도와 관련해서도 “일부 보수 언론들의 ‘노무현 탓’ ‘이명박 탓’이 다르다”라고 말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사소한 정책 실패도 노무현 대통령을 탓하던 언론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거꾸로 사소한 공(功)도 다 이 대통령 덕분이라고 주장한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정보를 가장 많이 확보할 수 있는 위치가 대통령인데, 그런 식으로라면 공기업이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게 되면 막판에 숟가락 얹어 놓고 ‘내가 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라고 꼬집었다. 정부의 원자력 관련 정책을 모니터링해 온 환경운동연합의 양이원영 미래기획팀 부장은 “핵 관련 이슈는 여러 논란이 있지만 정부나 관련 기업이 스스로 공개하지 않는다면 대부분 밝혀지지 않는다”면서 “앞으로 이번 수주가 어떻게 될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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