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미경은 ‘엔터미디어산업의 여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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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미디어 사업 수완 발휘

CJ그룹을 ‘지존’으로 키워

CJ그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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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을 만드는 기업에서 ‘꿈’을 만드는 기업으로. CJ그룹이 종합케이블 업체인 온미디어를 전격 인수하면서 국내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공룡으로 무섭게 도약하고 있다. 식품 기업으로 출발한 CJ그룹이 영화 사업을 넘어 방송, 음반, 공연 등 다양한 미디어 영역에서 두각을 나타내자 그룹 내 실무총괄사령탑인 이미경 CJ그룹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총괄부회장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미경 부회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손녀(이맹희씨 장녀)이자 CJ그룹 이재현 회장의 누나다. 이 부회장은 CJ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진출 초석을 놓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드림웍스에 3억달러 투자
이 부회장은 재계에서 ‘여걸’로 불리면서 사업 수완이 있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부회장은 서울대 가정교육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에서 석사 학위를 땄지만 그룹의 사업과는 거리를 뒀다. 이 부회장의 사업 수완이 입증된 해는 1995년이었다.

1990년대 중반 식음료 사업만으로 이뤄지는 그룹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있던 CJ(당시 제일제당)는 삼성으로부터의 경영권 분리가 끝난 직후인 1995년 신사업부문 진출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룹 내 해외파인 이 부회장(당시 이사)에게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맡겼다. 이 부회장은 유학 시절에 형성한 인맥을 바탕으로 제일제당(CJ의 옛 이름) 이사의 직함으로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영화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 등과 함께 다국적 엔터테인먼트 기업 드림웍스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 CJ가 드림웍스에 투자한 돈은 3억달러(당시 약 2300억원). 1994년 당시 CJ그룹의 자산이 1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무모하리만치 사운을 건 ‘모험’이었다. 그러나 이를 기반으로 CJ는 영화 사업 진출의 초석을 다질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부회장이 주도한 드림웍스 설립 과정에서 영화제작 및 배급사인 CJ엔터테인먼트가 생겨났고, 드림웍스가 제작하고 CJ엔터테인먼트가 배급하는 수많은 영화를 내걸 스크린이 필요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멀티플렉스체인 CJ CGV가 탄생했기 때문이다.

드림웍스로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 부회장은 1999년 이후에는 CJ엔터테인먼트 사업부 해외파견 상무 직함으로 미국으로 출국하면서 잠시 국내에서 활동을 접었다. 이 부회장이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지난 2004년 12월. 2002년 이재현 회장이 CJ그룹의 회장에 오르면서 2004년 12월 24일 누나인 이 부회장을 CJ엔터테인먼트(영화 제작·배급업체), CJ CGV(극장사업), CJ미디어(m-net 등 케이블방송국), CJ아메리카(미주판매법인)를 총괄하는 부회장에 임명했다. 당시 재계에서는 CJ그룹이 이례적으로 ‘남매경영’ 체제를 갖추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그동안 부회장 직제가 없던 CJ그룹이 이 부회장의 경영일선 등장을 놓고 이 회장 측이 그의 어머니 손복남 CJ 고문, 손 고문의 남동생 손경식 CJ 회장 측과 경영 노선을 둘러싼 갈등의 표출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었다.

지난 2009년 6월 20일 CJ그룹 자회사인 M-net의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촬영 현장. 서울 2차 예선에 참가자들이 서울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모습.

지난 2009년 6월 20일 CJ그룹 자회사인 M-net의 스타 발굴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 K> 촬영 현장. 서울 2차 예선에 참가자들이 서울 장충체육관을 가득 메운 모습.

이 부회장의 복귀 이후 CJ의 영상미디어 사업은 한 단계 도약하게 된다. CJ엔터테인먼트는 이미 2000년 <공동경비구역 JSA>로 583만명을 동원해 당시 한국영화 최대흥행 기록을 세우고 <살인의 추억> 등을 히트시켰지만 이 부회장의 복귀 이후 <화려한 휴가> 등을 히트시키고 2009년에 <해운대>로 관객 1100만명이라는 초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또한 종합상영관인 CGV의 성공은 CJ그룹의 영화산업에 날개를 달아 줬다. CGV는 1998년 4월 서울 구의동 테크노마트에 문을 연 것을 시작으로 현재 전국 66개 지점에 540여 개 스크린을 갖춘 국내 최대 극장브랜드로 성장했다. 이 부회장이 진두지휘한 CJ의 방송·미디어 사업도 올해 들어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엠넷의 공개 오디션 프로그램 <슈퍼스타K>는 케이블TV 역사상 최고치인 8.47%의 시청률을 기록했고, tvN의 <남녀탐구생활>도 4~5%대 시청률을 올리며 인기를 끌고 있다. 특히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슈퍼스타K>는 임원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부회장의 ‘뚝심’으로 밀어붙여 성공한 프로그램으로 알려져 있다.

엠넷 공개프로 케이블 최고 시청률
지금은 영상미디어 업계 ‘지존’ 위상을 세웠지만 CJ가 엔터테인먼트&미디어(이하 엔터미디어) 사업에서의 철수도 심각하게 고려된 적이 있다. 2008년 3월 초 이재현 회장 등 그룹 임원들이 참석한 회의에서 엔터미디어 분야에 대한 계열 분리 방안이 논의됐다. 적자가 쌓여 가고 있는 엔터미디어 사업을 매각하고 본업인 식품업에 주력하자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재현 회장이 이를 일축하고 지속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한 한 임원은 “이 회장이 엔터미디어사업은 이미경 부회장이 애착을 가지고 사실상 도맡아서 한 부문이기도 하지만 지금은 사업을 접을 때가 아니어서 그룹 차원에서 엔터미디어 사업을 키운 뒤에 재검토하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이후 사실상 엔터미디어에 대한 계열 분리는 수면 아래로 들어갔고, 이 부회장이 추진한 <슈퍼스타 K> <롤러코스터> <해운대> 등이 대박을 치면서 그룹 내에서 ‘골칫덩어리’로 여겨지던 엔터테인먼트 사업에 대한 인식이 180도로 바뀌었다는 평가이다. 이 부회장도 사석에서 동생에 대해 “재현이가 밀어주지 않았다면 이렇게 될 수 있겠느냐”며 고마워했다는 후문이다.

영상미디어산업 성공으로 재계 일각에서는 앞으로 엔터미디어 분야의 계열 분리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3세 경영 체제에 들어갈 경우 이 부회장이 조카 아래서 일하기는 껄끄러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부회장의 CJ그룹 내 지분은 거의 없는 편이다. CJ그룹 미디어&엔터테인먼트 부회장이란 직함도 그룹의 결재라인에 있는 공식 직함은 아니다. CJ그룹의 2009년 9월 말 현재 동 기업집단에 소속돼 있는 회사(국내기준)는 CJ㈜, CJ제일제당㈜, CJ CGV㈜, ㈜CJ오쇼핑 등 상장사 8개사와 CJ건설㈜,CJ미디어㈜, CJ지엘에스㈜, CJ푸드빌㈜, ㈜CJ헬로비전 등 비상장사 43개사로 구성돼 있다.

엔터미디어분야 계열 분리 전망
CJ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CJ㈜의 경우 이재현 회장이 1193만7813주로 지분율 42.01%에 이르고 이 회장의 딸 이경후씨(25)가 3만7485주(지분율 0.13%), CJ나눔재단 28만9685주(1.2%)로 구성돼 있다. CJ그룹의 경우 등기임원인 손경식(비상근), 이재현, 하대중 대표이사와 비등기임원(전원 상근)인 부사장 5명, 상무 13명으로 구성돼 있는 가운데 이 부회장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다른 계열사에도 이 부회장은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실제 이미경 부회장의 CJ 지분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 부회장이 갖고 있는 지분은 자회사로 비상자상사인 CJ미디어의 주식 24만7500주를 갖고 있는 게 전부이며, 지분율은 1.32%에 불과하다. 이 회장의 아들 이선호(19)군이 114만1965주(6.11%), 이경후씨가 45만2968주(2.42%)를 보유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10대와 20대의 어린 조카들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수치이다.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인맥은 알려진 것이 별로 없지만 ‘측근’이라 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인물은 하대중 현 ㈜CJ 사장이다. 하 사장은 1990년대 중반에 이 부회장을 도와 CJ엔터테인먼트와 극장 CGV를 탄생시킨 주역이지만 메가박스 인수 실패로 그룹 밖으로 물러나 있다가 2004년 이 부회장이 미국에서 돌아오면서 회사로 복귀했다. 그는 2008년 9월에 터진 ‘이재현 회장 비자금 의혹 사건’을 수습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고, 이후 사장으로 승진했다. 최근 물러난 김주성 CJ미디어 전 대표이사도 이 부회장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된다. CJ엔터테인먼트 대표를 맡으면서 이 부회장을 도와 영화 및 방송 사업을 진두지휘했고, 역시 이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수습하는데 있어 막후에서 큰 역할을 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이 부회장의 그룹 내 입지가 강화됐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비자금 의혹 사건이 이 부회장으로 하여금 전면에서 맹활약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CJ 이미경 vs 오리온 이화경
‘여걸 라이벌’

CJ 이미경 부회장(왼쪽),오리온그룹 이화경 사장.

CJ 이미경 부회장(왼쪽),오리온그룹 이화경 사장.

CJ에 이미경 부회장이 있다면 오리온그룹에는 이화경 사장이 있다. 이미경 부회장과 이화경 사장은 영화 업계의 대표적인 ‘여걸 라이벌’로,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치열한 승부를 벌여 왔다. CJ가 이번에 인수한 온미디어는 이화경 사장이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던 회사로 알려져 있다. 오리온그룹의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담당 최고경영자(CEO)였던 이화경 사장은 이양구 동양그룹 창업주의 둘째딸이다. 이 사장은 베니건스(외식업), 영화사업인 메가박스(복합상영관), 쇼박스(투자배급사), 온미디어(케이블채널) 등 오리온그룹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이 남편이다. 이미경 부회장이 초반에 영화 사업에서 부진할 때 오리온의 이화경 사장이 투자한 <말아톤> <웰컴투동막골> <가문의위기>는 공전의 히트를 쳤다. 

재계에서는 영화 업계에서 지금까지는 이화경 사장이 이 부회장과 굳이 비교한다면 다소 앞서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동안 온미디어가 CJ미디어에 비해 한 수 위라는 평가가 뒤따른 것도 사실이다. 이미경 부회장은 그동안 “온미디어를 따라잡고 업계 1위가 되겠다”며 여러 차례 포부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CJ미디어가 매출에서 온미디어를 앞질렀고, 최근 인수까지 하면서 결과는 이미경 부회장의 ‘한판승’으로 끝났다. 이 부회장으로서는 라이벌인 이화경 사장의 자존심이 배어 있는 온미디어를 ‘인수’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또 있다. 이재현 회장과 이미경 부회장이 재계에서 보기 드문 ‘남매경영’ 사례라면 오리온그룹 담철곤 회장과 이화경 사장은 재계에서 보기 드문 ‘부부경영’ 사례이다. CJ의 온미디어 인수로 ‘남매의 힘’이 ‘부부의 힘’을 이긴 셈이다.


<김태열 기자 yol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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