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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식’ 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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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미래의 좌표 설정과 직결… 정권 교체마다 해석 흔들려 ‘논란’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2008년 8월 15일 경복궁 앞에서 열린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이명박 대통령 내외가 2008년 8월 15일 경복궁 앞에서 열린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 60년’ 경축식에서 참석자들과 함께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역사적 사실은 동일하다. 해석은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난다. 문제는 최근 몇 년 사이 역사적 사실에 대한 해석이 정권 교체에 따라 심하게 요동치면서 역사 해석의 큰 줄기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역사적 사실을 대하는 해석의 태도 차이는 정권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지문이 됐다. 역사가 과거의 지층에 묻혀 있는 화석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의 연료가 된 것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한국 근현대사는 가장 뜨거운 화두 가운데 하나였다. 논쟁의 불씨를 던진 것은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이 주축이 된 교과서포럼이 펴낸 근현대사 교과서였다. 2008년 3월 교과서포럼은 <대안교과서 한국 근현대사>(이하 ‘대안교과서’)를 출간했다. 대안교과서는 2004년 기준으로 전국 고등학교 중 49.5%가 채택한 금성출판사 <고등학교 한국 근현대사>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보수 진영은 그동안 금성출판사 근현대사 교과서가 ‘좌파 편향적’이라고 비판해 왔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2002년 검정을 통과한 뒤 2003년부터 교실에서 사용됐다.

대안교과서 근현대사 논쟁
대안교과서를 떠받치는 해석의 두 기둥은 ‘근대화’와 ‘선진화’다. 이러한 인식은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서술에 또렷하게 나타나 있다. 책은 이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의 기틀을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 경제 체제로 바로잡는 데 동시대 어느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커다란 공훈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교과서포럼의 좌장 격인 이영훈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2008년 4월 2일자 경향신문 ‘흐름과 소통’에서 “이승만에 대해서는 사실 의식적으로 부각하려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일정한 ‘의도’가 개입돼 있음을 인정한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주도한 5·16 쿠데타에 대해서는 “그들은 합법적인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했다는 점에서 이후 민주화 세력의 지속적인 도전과 비판의 대상이 됐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합법 정부를 무력으로 전복한 사건’은 순식간에 근대화의 출발점으로 변신한다. “그러한 도덕적 멍에를 안은 채, 그들은 군인 특유의 추진력과 실용주의적 방식으로 경제 발전을 추진했다. … 이는 세계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전례가 드문 기적적인 성장이었다. … 그 점에서 5·16 쿠데타는 근대화 혁명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근대화를 산업화와 같은 위치에 올려 놓음으로써 쿠데타를 근대화 혁명으로 바꿔치기한 것이다.

2008년 3월 25일 서울시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간 기자회견에서 교과서포럼의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2008년 3월 25일 서울시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열린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출간 기자회견에서 교과서포럼의 이영훈 서울대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195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를 근대화와 선진화 관점으로 보는 해석은 일제 강점기도 근대화의 씨앗을 뿌린 시기로 보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대안교과서 필자들은 식민지 시기를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된 시기’로 봤다. “이 같은 사회간접자본의 확충은 식민지 한국에서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활성화했다”라고 평가했다.

해방 공간에 대한 서술에서는 친일 청산의 문제보다는 ‘반공’에 방점이 찍혔다. 금성출판사 교과서는 반민특위 해체에 대해 “민족 정신에 토대를 둔 새로운 나라의 출발은 수포로 돌아갔다”면서 이승만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반면에 대안교과서는 같은 사안을 두고 “이승만 대통령을 위시한 우파 집권 세력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끊임없이 체제를 위협하는 상황에서 친일파 청산보다 내부 단결과 반공 태세가 더 급하다고 생각했다”고 서술했다. 공권력에 의한 대량 양민 학살인 제주 4·3사건은 아예 ‘좌익 반란’으로 규정됐다.

이승만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초를 놓았다고 보는 대안교과서의 관점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 역사를 바라보는 태도와 거의 고스란히 겹친다. 정부는 2008년 8월 15일을 광복절 행사가 아니라 ‘건국절’ 행사로 치렀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의 뿌리를 1919년 임시정부 수립이 아니라 이승만 정부 수립에서 찾은 것이다. 기존 역사학계가 1948년 8월 15일을 ‘정부수립’이라는 중립적 용어로 지칭하던 관행에 견주면 대단한 파격이다.

광복절인가, 건국절인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에 대한 미화로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에 대한 미화로 논란을 일으킨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

건국절 담론은 참여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11월 뉴라이트 학자들을 중심으로 결성된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군불을 지폈다. 이명박 정부는 출범 3개월 만인 2008년 5월 국무총리 산하에 ‘건국 60주년 기념사업위원회’를 발족시키면서 장작불로 키웠다. 위원회 발족 후 정부는 현대사 박물관 건립, ‘국가의 거리’ 조성, 건국 60년 기록물 전시회, 역대 정부 수반 가옥 방문, 건국 60년 기념우표와 기념주화 발행 등 여러 행사를 추진했다.

‘건국절’ 행사가 치러진 이후에도 논란은 계속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08년 10월 건국60주년기념사업위원회와 공동으로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홍보책자를 발간해 전국 중·고등학교와 공공기관, 지방자치단체에 배포했다. 이 같은 ‘건국절’ 밀어붙이기는 결국 김영일 회장을 비롯한 광복회 회원들이 훈장을 반납하겠다고 결의하는 사태를 낳기도 했다.

근현대사를 ‘성공’ 관점에서 보려는 정권의 시각은 결국 참여정부 시기에 만들어진 과거사위원회의 위축으로 귀결됐다. 정부는 출범 이후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에 대한 정리 방침을 세우고 예산 삭감, 인력 감축 등 조처를 단행했다. 정부는 ‘예산 절감’과 ‘효율화’를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은 그동안의 과거사 청산을 ‘자학사관’이라면서 비판해 왔다.

2010년 과거사 관련 위원회들은 사실상 식물인간 상태에 빠질 전망이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와 군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각기 2009년 11월과 12월 활동시한이 만료됐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와 태평양전쟁전후국외강제동원희생자지원위원회는 각기 오는 4월과 6월에 활동이 끝난다. 활동 시한이 연장될 가망은 없다.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이 속속 위원회에 투입됐다. 지난해 4월에는 뉴라이트 성향 이재교 인하대 교수가 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임명됐다. 교과서포럼 운영위원인 강규형 명지대 교수도 이 교수와 함께 진실화해위 위원으로 임명됐다.

정부는 이미 중·고교 학생들의 역사관을 대안교과서가 주장하는 근대화와 선진화 사관으로 바꿀 채비를 마쳤다. 교육과학기술부는 2009년 8월 4일 새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교과서 집필 기준은 교과서 저자들이 집필할 때 반드시 따라야 하는 규정이다. 집필 기준은 ‘이승만 정부의 역할을 서술할 때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기여한 긍정적인 면과 독재화와 관련한 비판적인 점을 객관적으로 서술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발췌개현, 사사오입 개헌을 통해 장기 집권 획책과 독재화 과정을 설명할 수 있다’고 한 이전 내용보다 비판의 수위를 낮췄다. 또 ‘초대 정부가 친일파 청산에 노력했음을 서술한다’는 내용도 추가했다.

현 정부 출범 후 ‘논란’ 더욱 부각
박정희 정부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교육 과정에서는 ‘장기집권에 따른 유신체제 성립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큰 시련에 직면하였다’고 서술했다. 그러나 새 기준은 ‘두 차례 헌법 개정을 통해 1인 장기집권 체제가 성립되었음을 다룬다’로 한정했다. 교과부는 새 기준에 따라 각 출판사 교과서를 검정심사한다. 검정을 통과한 새 교과서는 2011년부터 차례로 사용될 계획이다.

역사 해석을 둘러싼 논란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크게 부각됐지만 논란의 불씨는 이미 참여정부 시기부터 마련돼 있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역사 해석 논란의 도화선을 잡아당긴 교과서포럼의 대안교과서도 교과서포럼이 이미 2006년부터 출간 준비를 한 것이다. 교과서포럼은 2005년 1월 출범할 때부터 기존의 중·고등학교 역사교과서가 ‘이념적으로 편향돼 있다’면서 교과서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5년 1월 25일 교과서포럼 창립식 행사와 함께 열린 심포지엄에서 박효종 서울대 교수는 교과서포럼 기존 역사교과서가 ‘북한에 호의적’이라면서 한국을 실패한 국가로 규정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교과서포럼은 2006년에 공개한 교과서 시안에서 이미 4·19를 ‘혁명’이 아닌 ‘운동’으로 축소했고, 5·16은 ‘쿠데타’가 아닌 ‘혁명’이라고 규정해 격렬한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왜 참여정부 시기에 이러한 역사 해석 논쟁이 일어났을까. 박한용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부를 색깔론에 입각해 바라보았기 때문”이라면서 “김대중 정부의 뒤를 이어 들어선 노무현 정부를 좌익 정부로 규정함으로써 자신들이 말하는 기득권을 되찾는 수단으로 색깔론을 들고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연이은 민주정부의 집권으로 위기 의식을 느낀 기득권 세력의 이해관계를 교과서포럼이 대변했다는 설명이다. 박 연구실장은 “뉴라이트의 역사 인식은 옛 우파와 마찬가지로 냉전적 사고 방식에 사로잡혀 있다”면서 “그러다 보니 남북한 체제 경쟁을 강조하게 되고, 남한을 성공한 국가로 만들기 위해 반공국가와 시장경제를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역사 인식은 결국 한 사회가 과거에 대한 재검토를 통해 현재와 미래의 좌표를 설정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박 연구실장은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 사회가 이제는 과거의 기억과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야 우리 사회는 사춘기에 들어섰다. 앞만 보고 전진하고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시대를 넘어 비로소 근현대사의 부끄러운 기억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기를 맞은 것이다. 뉴라이트와 현 정부의 역사 인식은 결국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것이다. 외형적 경제 성장과 내면적 성찰이 함께 가야 이른바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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