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공예 ‘내공’ 쌓아 새 길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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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개발·마케팅에 벤처기법 도입… 국제전시회 등 해외 진출 본격화

‘2009 공예트렌드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신재료를 둘러보고 있다.

‘2009 공예트렌드페어’를 찾은 관람객들이 신재료를 둘러보고 있다.

활공예 전수자 권오정씨(33)는 지난해 10월부터 매달 넷째주 주말에 1박2일 동안 진행되는 한국벤처공예대학 강의를 듣고 있다. 경북 예천에서 13대째 가업으로 이어온 전통활의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그의 아버지 권무석씨(68)는 서울시 무형문화재로서 30년 동안 활을 만들어 왔다. 그러나 최고 기술을 지녔음에도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진다. 우리 전통활은 나무와 물소뿔 등 10가지 이상의 재료를 어교(민어 부레로 만든 풀)로 붙여서 만드는 ‘복합궁’으로, 습도가 높으면 풀이 붙지 않아서 12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년에 4개월만 작업할 수 있다. 게다가 워낙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장인 한 명이 만들 수 있는 활의 수는 1년에 50개밖에 안된다. 활 가격을 평균 60만원으로 잡을 때 전부 팔린다고 해도 1년 수입은 3000만원. 여기서 재료비와 경비를 빼면 남는 돈은 2000만원 남짓이다. 설상가상으로 광우병 사태 이후 가공되지 않은 소의 부위를 들여올 수 없도록 규정이 바뀌는 바람에 물소뿔을 들여오려면 직접 중국에 가 어느 정도 가공해서 수입해야 한다. 권씨는 “우리는 동이족이라고 불릴 만큼 활 문화가 발달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업을 잇기 어렵다”면서 “활의 역사, 활 쏘는 법, 활쏘기 정신 등 활 문화 관련 콘텐츠를 개발하기 위해 벤처공예대학에 나가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꿈은 활 페스티벌을 열고 교육사업을 하는 것이다.

한국벤처공예대학 문 열어
권씨처럼 공예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이가 늘고 있다. 한국공예문화진흥원이 2009년 10월에 문을 연 한국벤처공예대학(학장 천호선·쌈지길 대표)에는 40명의 수강생들이 1년 과정으로 제품 개발과 마케팅, 경영기법 등을 공부한다. 이곳은 민승규 농림수산식품부 제1차관이 민간전문가 시절인 10년 전부터 이끌어 오면서 많은 성공 사례를 배출한 한국벤처농업대학의 운영 방식을 벤치마킹했다. 농업과 마찬가지로 공예 역시 전통적 방식으로는 성장과 발전에 한계가 있는 만큼 새로운 아이디어와 접목돼야 한다는 것이다. 수강생들은 자신이 지닌 공예기술을 바탕으로 현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과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가며 강의를 듣고 있다.

정해조씨의 옻칠 작품.

정해조씨의 옻칠 작품.

예술품이면서 상품인 공예의 발전은 국민소득과 비례한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면 1인당 소득이 3만달러에 이르면 문화상품과 공예품의 소비가 크게 늘어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공예에 대한 인식이 낮고 소비자층이 한정되다 보니 가격은 비싸면서 질적 발전을 이루지 못하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제작구조의 영세성, 인력구조의 취약성, 지역 편중, 유통구조의 낙후성, 유통인력의 비전문성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06년 기준으로 공예품 수입은 5억1300만달러인데 비해 수출은 3억760만달러로 무역역조 현상도 빚고 있다.

그러나 최근 희망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지난해 11월 11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제33회 필라델피아크래프트쇼에 한국의 공예작가 26명이 참가해 많은 관심을 모았을 뿐만 아니라 강웅기씨가 금속 부문 작가상을 받은 것이다. 미국에서 최고 명성을 자랑하는 필라델피아쇼는 관람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10년 전부터 주빈국 형식으로 외국작가 부스를 마련했다. 그러나 수상작은 늘 자국 작가에게 돌아갔다. 강씨는 221명의 참여 작가 가운데 부문별로 10명을 뽑는 자리에 외국인으로는 처음 선정돼 1000달러의 상금을 받았다. 또 한국작가 가운데 최우수작가상은 옻칠공예를 하는 정해조씨에게 돌아갔다. 정씨는 2만달러 이상의 최고 판매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전시·판매라는 상업적 성격이 강한 이 행사에서 한국 작가들은 20만달러(약 2억4000만원)가 넘는 기대 이상의 판매고를 올렸다.

해외 전문가 초청 수출전략 모색
필라델피아의 성과에 고무된 공예문화진흥원은 지난해 12월 17일부터 20일까지 서울 코엑스홀에서 열린 ‘2009 공예트렌드페어’에 해외 전문가를 초청하고 구체적인 수출전략 노하우를 들었다. 이 행사에 참석한 말린 리스 전 뉴욕 메트로폴리탄박물관 문화상품 총책임자는 한국 공예에 대해 “안목 있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미적 품격이 있다”면서 “특히 한지사(絲)는 미국 소비자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웰빙과 아시아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몇년 전 해조류를 넣은 섬유가 요가복 등의 재료로 큰 성공을 거둔 적이 있다는 것이다. 또 일본 나라현의 대표적인 컬렉터이자 럭셔리 제품 머천다이저인 이시무라 유키코는 한국의 백자와 옻칠공예에 큰 관심을 나타내면서 “가격에 비해 품질이 좋기 때문에 일본의 고급시장에서 승산이 있다”며 새해 6월과 10월 나라현에서 전시회를 열겠다는 약속을 하고 돌아갔다.

조희숙 공예문화진흥원 산업진흥부장은 “공예는 문화상품과 작가공예로 나눠진다”면서 “세계시장에서 한국공예를 부각시키고 국내의 잠재적 소비계층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작가공예가 먼저 치고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예진흥원은 이런 취지에서 2010년 국제조각공예박람회(SOFA)에 지속적으로 작가들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SOFA는 작가들의 작품을 취합해 갤러리 자격으로 참가할 수 있는 박람회로 4월 뉴욕, 8월 샌타페이, 11월 시카고에서 각각 열린다.

해외서 주목받은 한국주전자

[문화]한국공예 ‘내공’ 쌓아 새 길 찾는다

“제 작품이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가 섞여 있다고 봐주신 것 같아요.”
2009년 11월에 열린 필라델피아크래프트쇼에서 금속 부문 작가상을 받은 강웅기씨(35)는 대학원(서울대 공예과) 시절부터 10년 동안 주전자만 만들어 왔다. “주전자에 금속공예의 모든 것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아한 형태에서 풍겨 나오는 멋도 중요하지만 물 주둥이와 주전자의 높이, 주둥이의 굵기, 손잡이 위치, 뚜껑의 높이 등 역학적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만큼 작가로서의 도전의식을 높여 준다.

강씨의 주전자는 주 재료인 은을 길게는 1년 가량 망치로 두들겨서 만든 것이다. 거기에 손잡이는 주목 등 나무를 쓰고, 잔이나 주전자의 음료를 데우는 화로 및 받침접시는 도자기를 매치하기도 한다. 그의 주전자 세트는 3000~5000달러에 이르는 고가품이지만 수상자로 선정되고 나니 미국 내 동양미술 전문 갤러리나 사케 주전자를 수집하는 컬렉터들의 문의와 판매가 이어졌다.

그는 경기 광주에서 작업하면서 대학 강의도 나가기 때문에 작품을 많이 만들지 못한다. “국내 시장만으로는 작가 활동을 하기가 어렵다”면서 “내수가 두터워지고 해외 진출도 늘어야 한다”고 말한다. 차분한 은빛과 짙은 밤색의 나무, 백자가 어우러진 선(禪)적 분위기의 작품을 만드는 그는 “앞으로 조형성에 더욱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글·사진 한윤정 기자 yjha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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