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두 대통령은 죽어서 책을 남겼다
  • 인쇄
  • |
  • 목록
  • |
  • 복사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밴드

서거 이후 관련 서적 쏟아져… 글과 책에 대한 욕심 남달라

[커버스토리]두 대통령은 죽어서 책을 남겼다

김대중과 노무현. 두 사람은 스물 한 살 터울이다. 노 전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이 결혼하던 해에 태어났다. 세상을 떠난 건 노무현 전 대통령이 먼저였다. 

스스로 목숨을 던진 비극적 죽음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3개월 뒤에 큰 강을 건넜다. 표면적인 사인은 오랜 지병이었지만 또한 천수를 누렸다고 보기는 힘든 죽음이었다. 언론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충격과 잇따른 대외적 활동이 그의 기력을 예정보다 훨씬 앞당겨 소진시켰다고 봤다.

김대중 정권과 노무현 정권이 정책 기조를 상당 부분 공유했다는 점과 비근한 죽음의 시차 때문에 역사 속에서 한쌍으로 엮여지게 됐다는 사정 말고도 생전의 두 사람은 글과 책에 대한 욕심에서도 함께 거론될 만했다. 학력 콤플렉스 때문이었다는 분석도 있지만 두 사람은 역대 다른 대통령들과는 달리 타고난 독서가의 면모를 보였다. 두 사람 모두 어려운 시절과 마주했을 때 책에서 길을 찾았고, 분야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 그리고 논쟁을 즐겼다.

김 전 대통령 저서 40여 권이나 남겨
김 전 대통령은 치열한 독서가였다. 감옥에서도 10시간 이상 책을 읽었고, 무려 3만 권이나 되는 장서 가운데 손때가 묻지 않은 책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김 전 대통령은 박람강기(博覽强記)의 독서인이자 다산성의 저술가이기도 했다. 정치인으로서는 드물게 40여 권이나 되는 저서를 남겼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사람사는 세상’과 ‘민주주의 2.0’ 인터넷 사이트에서 식지 않은 열정으로 누리꾼들과 의견을 나눴다. 지난해 12월 형 노건평씨가 구속된 뒤에는 봉하마을 관광객들을 만나거나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일도 중단하고 측근들과 책을 읽고 토론하는 데 몰두했다. 이 기간에 보았다고 알려진 책이 <미래를 말하다>(폴 크루그먼), <슈퍼 자본주의>(로버트 라이시), <유러피안 드림>(제레미 러프킨), <문명의 붕괴>(제레드 다이아몬드) 등이다.

두 전직 대통령 서거 이후 서점가에는 관련 서적이 쏟아졌다. 노 전 대통령 사후 가장 먼저 출간된 책은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노 전 대통령 퇴임 전인 2007년 가을 청와대에서 사흘 동안 진행한 인터뷰를 정리한 책이다.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참여정부 5년의 성과와 한계를 솔직하게 털어놨다. 책 머리에는 노 전 대통령이 “천재급 정치인”이라 상찬한 김 전 대통령의 추천사가 실렸다. 저자가 올해 6월 27일 김 전 대통령의 구술을 받아 적은 것이다. 추천사에서 김 전 대통령은 “우리가 깨어 있으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죽지 않는다”면서 시민들에게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가 인터뷰라는 매개를 통해 들여다본 노무현이라면 <성공과 좌절>은 육필원고와 미공개 육성기록을 통해 고인의 내면을 좀 더 직접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1부와 2부로 나뉜 이 책에서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회고록의 구성을 밝힌 글과 비공개 카페에 올린 글이 소개된 1부다. 서거 전 그를 옥죄던 상황에 대한 참담한 심경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서거 사흘 전인 5월 20일 쓴 글에서 그는 “마침내 피의자가 되었다. 이제는 일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지난 이야기를 쓰는 일뿐인 것 같다”라고 썼다. 그는 또 이보다 앞서 쓴 글에서 “저의 집은 감옥입니다. 집 바깥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습니다. 저의 집에는 아무도 올 수가 없습니다”라며 고통을 토로했다.

11월에 출간된 <진보의 미래>는 노 전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몰두했던 진보주의 연구의 얼개를 보여 준다. 노 전 대통령은 퇴임 이후 “민주주의든 진보든 국민이 생각하고 행동하는 만큼만 가는 것 같다”는 생각에서 진보주의에 대한 ‘대중적 교양서’ 출간에 정력을 쏟았다. 고인은 진보와 보수는 결국 ‘먹고사는 이야기’라며 이를 위해 국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자고 제안했다. 참여정부 보좌진 출신 학자와 진보진영 학자 등 30여 명과 공동으로 토론하고 집필해 책을 낼 생각이었지만 이른 죽음으로 이 또한 미완의 작업으로 남게 됐다. 책은 이 때문에 완성된 원고가 아니라 육필 원고와 육성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고인과의 토론과 집필 작업에 참여한 이들은 내년 출간을 목표로 <진보의 미래> 2권과 3권을 준비하고 있다.

노 전대통령 ‘대중적 교양서’ 출간
노 전 대통령이 직접 집필해 완성한 책으로는 <여보, 나좀 도와줘>가 독자들의 지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이던 1994년에 출간된 이 책은 출간 당시 꽤 호응을 얻었지만 그 이후 서거 전까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러다가 서거 이후 한동안 하루 500권 이상 팔렸고, 지금까지도 앞에서 소개한 책들과 함께 노 전 대통령 관련 서적으로는 가장 많이 팔리는 다섯 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

김 전 대통령 사후에 가장 많이 팔린 관련 서적으로는 <배움>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옥중서신> <반걸음만 앞서가라> <만화 김대중>을 꼽을 수 있다. 2007년에 출간된 <배움>은 김 전 대통령의 잠언집이다. “학문이나 지식을 습득할 때는 권위를 맹종해서는 안 된다” “(삶에서의 성공은) 무엇이 되느냐에 목표를 두지 않고 어떻게 사느냐에 목표를 두는 삶의 길을 택할 때 가능해진다”와 같은 짤막한 단상들을 모았다. <다시,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는 대선 패배 후 정계를 은퇴하고 영국에서 체류하던 1993년에 출간된 김 전 대통령 최초의 에세이집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를 1998년에 다시 고치고 다듬은 것으로,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것은 2005년 개정판이다. 올해 9월에 출간된 <옥중서신> 1권과 2권은 김 전 대통령이 옥중에서 가족들과 주고받은 서신과 메모를 담은 책이다. 애초 1984년에 나온 <김대중 옥중서신>에 수록하지 못한 기록을 보충해 나온 완결판이라 할 수 있다. 1권은 고인이 가족들에게 보낸 전언들이고, 2권은 이희호 여사가 옥중의 남편에게 보낸 편지들이다. 김 전 대통령의 독서편력은 <옥중서신> 2권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이 여사는 1981년 5월 1일 <문화의 패턴>, 사흘 뒤에 <비교한국문화>와 <빠삐용>을 교도소로 차입했다. 5월 4일부터 5월 20일까지 보름 남짓 동안에만 9권의 책을 교도소로 보냈다. 9월에 출간된 <행동하는 양심으로>는 절판됐다가 서거 이후 다시 출간된 경우다. 이 책은 1972년 유신 직후 일본 망명 생활 도중 일본에서 <독재와 나의 투쟁>이란 이름으로 출간됐다. 한국어판은 1985년에 처음 나왔다.

2005년부터 준비를 시작한 김 전 대통령의 자서전 출간은 내년으로 예정돼 있다. 자서전 초고는 김택근 경향신문 논설위원과 유시춘 전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썼다. 자서전은 전·후반부로 나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한 고인의 삶을 담았다. 원고지 5500여 장 분량이다. 장옥추 김대중평화센터 홍보기획국장은 “마지막 원고 정리 작업을 하고 있다”면서 “이르면 6·15 10주년을 맞는 내년 6월께 출간될 것”이라고 밝혔다.

두 전직 대통령은 몇달 간격으로 불귀의 객이 됐다. 두 사람 모두 불꽃처럼 살았다. 그 불꽃의 미열이나마 감지해 보려는 시민들에게는 이제 책이 남았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관련기사

바로가기

주간경향 댓글 정책에 따라
이 기사에서는 댓글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