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 소수자를 위한 변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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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쓰릴 미>.

뮤지컬 <쓰릴 미>.

문화산업 종사자들은 늘 솔깃한 이야기 찾기에 골몰한다. 그래서 유행이 등장한다. TV에서는 ‘막장’ 드라마가 판을 치는가 하면 온통 사극으로 점령되거나 반대로 트렌디 드라마가 대세인 경우도 있다. 한때 우리나라 영화계에서는 ‘조폭’이 없으면 아예 영화 만들기가 불가능해 보이던 때가 있었다. 지나치게 유행에 민감해지면 다양성이 사라지는 문제점이 있지만 대중의 기호와 성향을 민감하게 반영하고 활용한다는 측면에서는 바람직한 면도 없지 않다.

물론 뮤지컬도 예외가 아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창작 뮤지컬 대부분은 달콤 짜릿한 사랑 찾기 스토리가 대부분이었다. 공연의 주 소비층이 젊은 관객인 탓에 제작자들은 순정만화나 연애소설 같은 ‘솜사탕’ 만들기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 공연가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한층 다양해진 소재, 별나고 독특한 캐릭터들이 관객의 발길을 유혹한다. 주류에서 벗어나 일탈과 실험, 혁신과 파격을 선보이는 콘텐츠가 흥행에서도 좋은 성적을 보이는 양상이다.

뮤지컬 <헤드윅>.

뮤지컬 <헤드윅>.

최근 목격하게 되는 성적 소수자의 이야기는 그래서 이색적이고 흥미롭다. 얼마 전 1000회 공연을 돌파하며 연말 공연가에 큰 인기를 누리는 소극장 뮤지컬 <헤드윅-분노의 1인치 살덩이(Hedwig and the angry inch)>가 대표적인 사례다. 주인공은 공산 정권 아래의 동베를린을 벗어나기 위해 트랜스젠더의 삶을 선택하지만 잘못된 싸구려 성전환 수술로 사타구니에 1인치 살덩어리를 안고 살아가는 ‘이도저도 아닌’ 존재다. 처음에는 신기한 듯 헤드윅의 넋두리에 귀를 기울이던 사람들은 점차 트렌스젠더가 아닌 인간 헤드윅을 이해하게 되고 감동을 느끼게 되는 것이 묘미다. 조승우나 오만석, 조정석, 김다현 등 간판급 꽃미남 배우들이 거쳐간 작품으로도 유명하다.

또 다른 성적 소수자에 대한 작품으로는 <쓰릴 미(Thrill me)>가 있다. 스스로를 니체의 초인이라 여길 만큼 똑똑하고 장래가 촉망받던 두 청년이 이유 없는 유괴와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다. 한 명은 파괴를 통한 자극을 위해서였고, 다른 한 명은 그런 그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류정한, 김무열 등 ‘오빠 부대’를 몰고 다니는 미남 배우들이 등장하지만 극중에서 사실 이들은 모두 동성애자이다. 키스신도 등장하고 남성끼리 애정행각도 벌이는 등 게이들의 모습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성적 소수자의 등장을 단순히 충격적인 캐릭터를 통한 별난 자극쯤으로만 여긴다면 절반짜리 이해에 불과하다. 이런 작품의 진정한 묘미는 성 정체성 자체보다 이들이 겪는 인격적 성숙이나 휴머니즘의 공감대에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무대에서는 이들 성적 소수자의 모습을 통해 스스로를 ‘정상’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위선과 이중성을 풍자하는 경우가 많다. 자극 뒤에 숨겨진 보편적 감동의 원리를 찾아낼 때 비로소 작품에 대한 이해가 완성된다는 점은 간과해선 안 될 감상 포인트다.

원종원<순천향대 신방과 교수·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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