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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공무원노조, 단체행동권 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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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다른 외국의 노사관계, 국제사회 “한국의 노동 탄압” 우려

지난 2002년 11월 프랑스 공공부문이 파업에 들어갔을 당시 남부 마르세유에서 공무원들이 정부의 봉급 및 퇴직급여 감축과 민영화 계획에 반대하는 구호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2년 11월 프랑스 공공부문이 파업에 들어갔을 당시 남부 마르세유에서 공무원들이 정부의 봉급 및 퇴직급여 감축과 민영화 계획에 반대하는 구호가 새겨진 플래카드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연합뉴스>

2009년 공공부문 노사관계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정부가 공공부문 노조를 전면적으로 압박하고 나선 탓이다.

12월 1일에는 경찰이 파업 중인 철도노조 사무실과 전국공무원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같은 날 한국노동연구원은 국책연구 기관으로는 처음으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철도 노조는 파업 초기부터 ‘불법 파업’으로 규정하고 나온 정부의 고강도 압박에 밀려 결국 12월 3일 파업을 철회했다. 노동부는 경찰이 전국공무원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날 공무원 노조의 조합 설립 신고를 보류했다. 발전 5개사와 가스공사도 사측이 단체협약을 일방적으로 해지하고 노조에 전면 수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의 활동 범위를 크게 제한할 법 개정도 이미 준비가 끝났다. 정부와 여당은 복수노조 허용을 유예하고 노조 전임자에 대해서는 교섭 및 고충처리 등 극히 제한된 활동에 대해서만 임금을 지급하는 쪽으로 노동조합법 개정안의 가닥을 잡아놨다. 이 과정에서 공공부문 노조가 몰려 있는 민주노총의 견해는 배제됐다.

국제노동기구 ‘지적’ 받아
정부와 여당의 이 같은 강공 드라이브는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명분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 ‘선진국’의 노사관계는 국가별로 차이가 나기는 하지만 모두 한국 같지는 않다.

한국은 이미 지난 2006년 공무원 노조의 파업이나 노조 전임자 임금과 관련해 국제노동기구(ILO)의 지적을 받은 바 있다. 2006년 3월 ILO는 제295차 이사회에서 권고문을 채택했다. 권고문은 5급 이상 공무원의 노조 결성권을 보장하고, 공무원의 파업권에 대한 모든 제약을 제한하라고 촉구했다. 현행 공무원노조법은 공무원 노조에 단결권과 단체교섭권을 부여하고 있지만 단체행동권은 허용하지 않고 있다. 5급 이상 공무원은 노조에 가입할 수 없고, 6급 이하 공무원도 일부 직무와 직종으로만 가입 자격이 한정돼 있다. ILO는 또 노조 전임자 임금 지급은 교섭 당사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한국처럼 노조전임자 임금을 법적으로 결정하려는 것은 ILO 기준에는 위배되는 셈이다.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스웨덴, 네덜란드, 벨기에 등 유럽 선진국들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공무원 노조의 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다. 경찰관, 법관, 소방관, 교도관 등도 노조를 만들 수 있는 프랑스의 경우 공무원의 파업권을 일반 노동자와 별도로 구분해 제한하는 법률이 없다. 공무원 노조는 사전 예고를 통해 파업을 개시할 수 있다. 다만 행정명령에 의해 일부 파업권이 제한될 수는 있다. 영국 공무원의 경우도 단체행동권을 포함한 노동 3권이 모두 보장되며, 사전 예고를 통해 파업할 수 있다.

독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독일은 형식적으로는 공무원들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독일 기본법에 단체행동권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독일은 공무원들이 근로 조건과 관련된 입법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보장한다. 일본은 한국과 매우 흡사하다. 일본의 국가공무원법과 지방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쟁의 행위를 전면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파업·태업 및 기타 정상적인 업무를 저해하는 행위 일체가 금지돼 있고, 이를 공모하거나 교사·선동하는 행위도 금지한다. 미국은 공무원의 직무에 따라 다르고, 경찰이나 소방 등 필수공익 서비스인 경우에는 단체행동권이 보장되지 않는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12월 1일 과천정부종합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룸에서 철도 파업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담화문에서 장·차관들은 철도 노조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김문석 기자>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 등 5개 부처 장·차관이 12월 1일 과천정부종합청사 기획재정부 브리핑룸에서 철도 파업과 관련한 정부 입장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담화문에서 장·차관들은 철도 노조 파업을 불법이라고 규정했다. <김문석 기자>

정부는 공무원 노조의 정치활동을 법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한다. 미국에서는 공무원의 정당 참여나 선거활동까지 허용한다. 프랑스의 경우 공무원의 선거 출마까지 허용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공무원의 정치 활동을 제한하는 규정을 두고 있기는 하지만 정당 가입과 정치자금 후원에 대해서는 엄격한 제재를 하지 않고 있다.

복수노조 허용 문제는 어떨까. 미국의 경우 단체교섭 대상은 노동자 다수를 대변하는 노조다. 그러나 노동자 다수를 대표하는 노조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바뀔 수 있다. 다만 한 번 대표노조가 정해지면 3년 동안 그 지위를 유지한다. 유럽 국가들은 단체교섭을 대부분 산별노조 차원에서 진행한다. 다수의 노조가 경합할 경우 교섭에 나설 노조 대표를 구성하는 건 노조 자율에 맡긴다. 이 때문에 수적으로 다수인 노조가 교섭에 나서기도 하고, 노조들이 위원회를 구성하기도 한다.

코레일은 노조집행부 등 182명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소했다. 업무방해죄는 1980년대 후반부터 우리나라에서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법률 조항으로 사용돼 왔다. 업무방해죄(형법 314조)는 ‘위력’에 의해 업무를 방해했을 경우 징역 5년 이하 또는 벌금 1500만원 이하 벌금형을 선고하도록 돼 있다. 이 조항은 1864년 프랑스에서 쟁의행위를 억제할 조항으로 만들어진 것이지만 결국 사문화됐다. 일본도 1907년 이 업무방해죄 조항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파업이 일어나더라도 이 조항을 적용하지 않는다.

프랑스·일본 ‘업무방해죄’ 사문화
한국의 노동 탄압은 이미 국제사회 노동단체로부터 반갑지 않은 관심을 끌고 있다. 올해 2월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조합 자문위원회(TUAC) 등 국제 노동단체 간부 4명은 민주노총에서 열린 기자회견 자리에서 “한국의 노동권 탄압이 이전보다 악화됐다”면서 “국제적 압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ITUC는 150여 개국 300여 노동조합이 가입한 단체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도 소속돼 있다.

지난 11월에는 필리핀 세부에서 열린 국제노총 아시아 태평양지역본부(ITUC-AP) 일반이사회에서 한국의 노동 상황을 우려하는 결의문이 채택됐다. 결의문은 “한국정부는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을 부정하면서 사용자에 의한 전임자 지급을 금지하고 있는 노동악법을 강행 실시하려 하고 있으며,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허용으로 교섭창구를 강제로 단일화하려 하고 있다”면서 “전임자 임금 지급 문제는 노사 자율교섭으로 결정할 문제이고 교섭창구 단일화는 대다수 노조의 단체교섭권을 박탈하는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 뿐만이 아니다. TUAC도 11월 12일 123차 총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고 노조법상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조항 폐지, 사업장별 복수노조 허용시 단체교섭 보장, 공무원노조에 대한 탄압 중단을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11월에 채택된 ITUC-AP 결의문은 “ILO와 ITUC 등 국제 노동단체의 수 차례에 걸친 권고를 철저히 무시하면서도 노사관계 선진화를 내세우고 있는 한국정부의 노동 탄압에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탄식했다. 국제사회의 우려에 아랑곳없이 노동 탄압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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